<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71

심양으로

등록 2005.11.14 17:11수정 2005.11.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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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서 왔다는 장똘뱅이는 어디갔수?"

다음날 아침, 배를 대어 놓았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방 서방은 방안에 장판수 혼자 누워 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암만해도 심양까지 발품 팔긴 싫은 모양입네다."

방 서방은 속으로 잘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장판수를 서둘러 배로 데려가 장대 노를 저어 조용히 강을 건넜다.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오."

방 서방은 짐에서 낡은 청나라 복색을 꺼내었지만 장판수는 손을 내저었다.

"굳이 그런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이유는 뭡네까?"
"행여 청나라 병사들이 보면 탈주한 조선 포로라 여길지도 모르지 않소?"
"상관없소!"


방 서방은 한 번 더 옷을 갈아입을 것을 권하려다가 그냥 옷을 도로 넣어두었다. 장판수는 방 서방의 뒤에 쳐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새 짚신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좀 쉬어 갑세다! 이거 짚신에 발이 쓸려 걸어갈 수가 없습네다! 이거 밥은 언제 먹습네까?"


걸핏하면 길에 주저앉아 불평을 늘어 놓는 장판수에게 방 서방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로서는 어쨌거나 반나절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뭐 저런 놈을 조심하라고 그렇게도 이른 것이야?'

장판수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반나절이 더 지나서야 방 서방은 객잔이 있는 마을까지 장판수를 데려갈 수 있었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갑시다."

객잔은 텅 비어 있었고 장판수는 한 가운데 위치한 탁자에 기대어 앉았다. 방 서방은 주인을 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서는 밖으로 나갔다. 한참 동안 장판수는 무료히 밖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바람이 흙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장판수는 방 서방이 이곳에서 어떤 농간을 부릴 것이라 직감하고 있었다. 방 서방이 청과 연관되어 있다면 배를 타기도 전에 의주에서 장판수를 제지하고 심양으로 압송해 갔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런 모략을 꾸밀 이는 뻔한 것이었다.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이게 누구신가! 오래간 만이외다. 장초관!"

문 앞에는 두청을 위시하여 서흔남, 방 서방, 객잔 주인과 객잔의 하인들, 그리고 차예량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장판수는 별로 놀라지는 않은 표정이었지만 차예량을 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해서 뭘 얻어가려는 것이네?"

두청은 사람들을 뒤에 세워놓고 장판수 앞에 마주 앉았다. 하인이 재빠르게 식탁위에 술과 돼지비계 안주를 차려 놓았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외다. 무엇하러 심양까지 간 단 말이오? 조정에서 장초관이 하고 있는 일을 기꺼워 할 것 같소이까?"
"그 얘기는 끝나지 않았네? 신소리 그만하고 날 여기서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결판이나 지으라우."

예전의 만남과는 달리 이번에는 장판수가 툭툭 던지는 말투로 하대를 하고 두청이 장판수에게 공손한 말투를 유지하려 애를 썼다. 두청은 손수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벌컥 들이킨 후 장판수에게도 한잔을 권했지만 장판수는 이를 받지 않았다.

"내 얘기는 이제 듣기 싫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한 차선달의 얘기를 한번 들어 보시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차예량은 밑으로 내려트렸던 고개를 천천히 들고서 두청과 장판수가 마주보는 사이에 위치해 앉았다. 그리고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장판수를 설득했다.

"장형, 이 들은 결코 역적들이 아니오. 부디 열린 마음으로 같이 뜻을 합쳐 봅시다."

장판수는 자신의 잔에 술을 조금 따라 마신 후 인상을 쓰며 돼지비계를 하나 집어 들어 천천히 씹었다. 차예량은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음식을 씹느라 오물거리는 장판수의 입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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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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