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속보이는 '구속 형평성' 주장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임동원·신건의 경우

등록 2005.11.15 09:46수정 2005.11.1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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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사전구속 영장이 청구된 신건 전 국정원장(왼쪽)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 정치권은 이번 경우처럼 이해득실을 셈해야 하는 사안을 두곤 정치적 판단을 하고 정치적 주문을 한다.
지난 14일 사전구속 영장이 청구된 신건 전 국정원장(왼쪽)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 정치권은 이번 경우처럼 이해득실을 셈해야 하는 사안을 두곤 정치적 판단을 하고 정치적 주문을 한다.연합뉴스·오마이뉴스
동교동이 화났다. 검찰이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 "무모하고 무도한 일"이라며 영장 청구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열린우리당도 거들고 나섰다. 전병헌 대변인은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데다 불법 도청 본류인 미림팀 수사의 형평성과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천정배 법무장관은 검찰의 조치가 정당하다고 했다.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있고 도청개입 정도가 심한 것 아니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쟁점은 구속이다. 사전구속영장 청구를 취소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동교동도 "법에 따라 사필귀정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기소 자체에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지만 구속은 심하다는 것이다. 전병헌 대변인은 "검찰이 두산그룹 총수들도 불구속 수사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그런데 왜 두 전직 국정원장만 구속하려 하느냐는 반문이다.

천정배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이후 국가적 의제로 떠오른 불구속 수사 논란이 이 사안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또다시 떠오른 구속-불구속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천정배 장관의 말이 옳다. 두 전직 원장이 혐의를 한사코 부인했다면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김은성 전 2차장은 어제 열린 재판에서 신건 전 원장이 김병두 과학보안국장에게 진술 번복을 요구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증거인멸 우려는 가능성을 넘어 실제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구속은 불가피했다는 천정배 장관의 말은 옳다.

동교동은 두 전직 원장이 도청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고 밝혔지만 그건 동교동만의 확신이다. 동교동의 확신을 일반화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믿는 건 자유지만 범죄 혐의를 조사하고 수사하는 건 검찰의 권한이다. 나머지는 법정에서 가리면 되는 일이다.


남는 문제가 있긴 하다. 동교동과 열린우리당 모두 형평성을 제기했다. '도청 본류' 안기부 미림팀과의 형평성이다. 국정원 원장은 두 사람이나 구속하려 하면서 왜 안기부 부장들은 내버려두느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 감정으로 보거나 검찰 수사로 드러난 도청행각으로 보거나 능히 나올 수 있는 주장이고 항변이지만 검찰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공소시효 때문이다. 물론 검찰이 전직 안기부장들을 사법처리할 법적 근거가 있는데도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공소시효에만 기대 면죄부를 주려 하는 것인지는 따질 일이지만, 현재로선 검찰의 "부득이하다"는 말을 뒤집을 지렛대도 없다. 그래서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켜볼 의사가 별로 없어 보인다. 여야 가릴 것 없다. 모두가 형평성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곤혹스러워서, 한나라당은 싫지 않아서다.

열린우리당의 전병헌 대변인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배경은 호남 민심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언론의 분석도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 발언으로 호남 민심을 되잡을 계기를 잡았는데 검찰이 재를 뿌리려 하니 맘이 편할 수가 없다. 동교동이 검찰 조치에 수긍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은 곤혹스럽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느긋하다. 한나라당의 어제 논평 내용은 이런 것이다. "이번 수사가 어떤 특정 정권에 대한 흠집 내기가 돼선 안된다."

얼핏 봐선 이례적이다. "거 봐라" 할 줄 알았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국민의 정부를 감싸는 듯한 논평을 내놓았으니까 그렇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가 않다. 한나라당은 "특정 정권"을 염려함으로써 다른 특정 정권, 즉 참여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검찰 수사를 "특정 정권 흠집 내기"로 규정함으로써 참여정부와 호남의 간극을 벌리는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점점 다가오는 한나라당 전현직 의원 조사

이처럼 여야의 접근법은 정치적이다. 한쪽은 좁히기 위해, 다른 한쪽은 벌리기 위해 검찰 수사를 덧칠하고 있다.

여야 모두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지만 그건 구두선이다. 이해득실을 셈해야 하는 사안을 두곤 정치적 판단을 하고 정치적 주문을 한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재연될 것이다. 검찰은 두 전직 원장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한나라당 전·현직 의원들을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의 김영일·이부영·정형근 당시 의원 등이 국정원 도청문건을 공개한 배경과 입수과정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지켜볼 일이다. 검찰은 일관되게 '법대로'를 외칠 수 있는지, 열린우리당은 불구속 수사 원칙을 어떻게 각색할지, 한나라당은 특정 정권을 뛰어넘은 검찰에 박수를 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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