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에 올라온 단장기 307회는 착오로 308회 내용이 잘못 실렸습니다. 이에 307회 내용을 다시 올립니다. 독자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편집자주> |
“그 점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다. 오히려 이 사부의 입장에서는 누구든 그 사건을 조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들추어내면 들추어낼수록 황실의 치부만 드러난다. 자신의 부친인 주원장의 간교하고 잔악한 면모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자식된 도리로 주왕의 바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강중이 이 사부에게 실망했던 이유도 그것일지 모르지. 강중이 떠난 후에야 이 사부는 그 사건을 매우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하는데 제약이 없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주원장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던 상황.
“강중 장군은 돌아가시면서 한 글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천(天)’이라고 들었다.”
이미 사부도 알고 있었다. 그 글자로 인해 오해가 깊어질 수 있었다. 대개 ‘천(天)’의 의미는 황제를 뜻한다. 그것 역시 주왕이 우려했던 터. 담천의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주왕이 먼저 말을 이었다.
“변명하지는 않겠다. 선황께서 네 부친을 척결하라고 명을 내린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 사부가 그 동안 조사해 오면서 담가장의 혈사 역시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음모의 한 과정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 말씀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던 암중 세력에 의한 것이란 의미로 들리는군요.”
“얼마나 알고 있느냐?”
“유곡을 찾다가 표공도(表孔道)란 인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생사판관(生死判官) 표공도(表孔道)...?”
“그가 그러더군요. 갑자기 무림에서 사라진 인물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 역시 그 모종의 세력에 몸을 담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것까지 알고 있으니 이 사부가 말하기 편하구나.”
주왕은 고개를 끄떡였다. 담천의 역시 꽤 깊숙이 알고 있는 것이다.
“중원에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암중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 것은 십여 년 전이었다. 그리고 선황이 돌아가시고 정난의 사가 일어난 혼란을 틈타 움직이고 있는 그들을 확인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일찍 혼란을 종식시킨 영락제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준비가 완전치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 적멸안이 도난당하고 백련교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동안 치밀하게 조직을 확장했던 천지회 역시 움직였지.”
“그들이 천지회나 백련교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천지회나 백련교도들은 그들의 실체를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 대처방법을 강구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알던 모르던 지금 중원은 모종의 세력들이 짜 놓은 각본에 의해서 필연적인 수순으로 움직이고 있다. 모용화천이 천지회를 움켜쥐었듯이 백련교 또한 누군가에 의해 장악되었을 것이고, 분명한 것은 그 자가 동일인일 것이란 점이다.”
무서운 일이었다. 자신들도 모르는 가운데 암중의 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를 끌어내신 겁니까?”
“솔직히 그렇다. 자학하듯 살아가는 너를 위해서 라고는 변명하지 않겠다. 그들을 막을 힘이 필요했다. 황실에 불만을 품고 움직이지 않는 균대위의 힘을 끌어낼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너만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절대구마의 후인들이 천마곡에 있음을 폭로하고..... 무림인들을 움직여 천마곡을 공격하게 한 것입니까? 더구나 거창한 제마척사맹이란 이름을 걸고, 그 맹주 자리를 초혼령주로 정해놓았단 말입니까?”
천마곡에 절대구마의 후인들이 있음을 조사한 인물이 풍철한이다. 그것으로 인해 무림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절대구마의 시검사도가 확인되었고, 무림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인하지 않겠다.”
주왕은 후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담천의를 직시했다. 그는 이제 애써 변명하지 않았다. 이미 담천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담천의 역시 더 이상 추궁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비밀이란 것은 한 꺼풀 벗고 나면 또 다른 껍질을 가지고 있다. 그 껍질을 벗겨 놔도 역시 마찬가지. 그 속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비밀이란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벗겨봐야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그런 것.
“나는 지금 천마곡으로 가야겠군요.”
그는 탄식처럼 말을 뱉었다. 또 다시 이용을 당한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담가장의 혈사가 황제의 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었고, 그것을 이용한 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기다렸던 세 번째 움직임이었다. 고태(古台)는 세 번째 움직임이 감지되는 순간부터 귀식법을 풀었다. 그리고 네 마리의 개를 깨우고는 짖지 못하도록 입마개를 씌었다.
개들은 고태의 눈에 보이는 긴장감을 알아차렸는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고태는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동굴 암벽 사이로 끼여진 폭약덩이가 나무에 열매가 걸리듯 달라붙어 있었다. 굳이 도화선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몸에 매달고 있는 폭약덩이가 폭발을 일으키면 자연 폭발할 터였다. 그는 품속에서 화섭자를 꺼내들었다. 자신의 가슴 위로 삐져나온 도화선에 화섭자를 그으면 그만일 것이었다. 그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火) 하고는 지독히도 악연이었다. 부모와 형제자매를 앗아가고 자신의 삶을 망쳐버린 불은 이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자신의 몸을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낼 터였다.
(이제 시간이 된 것 같군.)
그는 조심스럽게 막아놓았던 동굴입구로 기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막아 놓았던 돌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위의 돌부터 조심스럽게 들어냈다. 어쩌면 이 절벽을 조사했던 자들이 아직 남아서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그냥 치운다면 일각이면 충분할 것이었지만 그는 아주 느릿하게, 그리고 너무 조심스럽게 치워내는 바람에 모두 치워내는데 반시진이나 걸린 것 같았다. 마지막 하나만 들어내면 개들이 빠져나갈 조그만 구멍이 날 것이었다.
그는 바닥을 살짝 두 번 두드려 개들을 불렀다. 그의 간단한 동작에 네 마리의 개가 그에게 다가들었다. 그는 한 마리 한 마리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고는 꼭 껴안았다.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이 개들은 훌륭히 임무를 완수하고 잠시 후면 자신과 같이 뼈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터였다.
그렇다고 두렵거나 슬프지 않았다. 죽은 후에는 자신도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불의 설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지막 돌 하나를 치워냈고, 네 마리의 개들은 꼬리를 살랑거리다 빠르게 빠져나갔다.
(하나....둘.... 셋....)
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스물을 셌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화섭자를 그어 자신의 가슴에 있는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