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합격할 팔자도 나오나요?"

엿장수에서 점쟁이까지...대목 맞은 '시험업(業)' 천태만상

등록 2005.11.18 14:45수정 2005.11.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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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엿 사세요. 울릉도에서 올라온 말캉말캉한 엿이요. 대학 덜컥 붙여주는 맛있는 호박엿입니다아!"

지난 11월 16일 오후. 서울 신도림역 앞에서 '엿판'을 벌인 이춘근(45)씨의 구성진 장단에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 섰다. 대개는 수험생을 뒀음직한 학부모들의 발걸음이다. 삼삼오오 모여들어 저마다 맛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맛있네"를 연발한다.


a 이춘근씨가 리듬에 맞춰 흥겹게 엿을 자르고 있다.

이춘근씨가 리듬에 맞춰 흥겹게 엿을 자르고 있다. ⓒ 나영준

장사가 잘 되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씨는 "그럭저럭"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표정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 환한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평소엔 전국을 돌며 잡화를 판다는 이씨는 입시철인 만큼 잠시 아이템을 바꿨다며 흥겹게 가위를 놀린다.

"아무래도 수능이 코앞이니까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맛보고, 또 사게 되지요. 이럴 때 어린 학생들도 우리 엿 맛 한번 보는 거 아니겠어요. 어린 학생들도 먹어보곤 생각보다 맛있다고 깜짝 놀라요. 얼마나 팔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능 당일에는 시험장 근처에도 한 번 가 봐야지요.(웃음)"

"시험 때가 대목... 눈코 뜰 새 없죠"

각종 온라인 경매 사이트를 통해 선물용 엿을 판매하는 M통상 이충식 대표는 수능을 앞두고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작년에 그의 회사가 온라인 경매를 통해 팔아치운 엿 선물은 무려 3만여 세트에 이른다. 시험 때가 대목인 셈이다.

a 개성시대. 엿도 예외일 수 없다. 신세대들의 감각을 고려해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개성시대. 엿도 예외일 수 없다. 신세대들의 감각을 고려해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 나영준

"정말 정신이 없지요. 많지 않은 직원들이 모든 업무를 제쳐두고 선물포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능이 끝나야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비결이요? 엿이야 공장에서 제공을 받지만 디자이너들이 상자의 도안을 짜고 적절한 가격을 맞추는 등 세심한 노력을 들인 덕분이죠."


그의 회사가 파는 엿 세트의 가격은 택배비 포함 8000원에서 1만8000원 사이. 물론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가격은 1만원 미만 가격대이다. 그 역시 까다로운 네티즌의 성향을 감안, 저가대의 상품을 집중 공략해 성공을 거둔 경우다.

신세대 네티즌들이 엿보다는 초콜릿 등을 원하지는 않느냐고 묻자 "이미 작년에 사탕이나 초콜릿 등을 혼합한 상품을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싸늘했다"며 "세월이 아무리 바뀌어도 시험 때 엿을 선호하는 경향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발길을 돌려 대학로에 있는 한 팬시 판매점을 찾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혜화역 근처에는 수능을 대비해 많은 상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을 묻자 하나같이 씁쓸한 입맛을 다신다.

a 대학로 한 팬시점. 다양한 상품을 들여 놓았지만 찾는 손길은 아직 뜸하다.

대학로 한 팬시점. 다양한 상품을 들여 놓았지만 찾는 손길은 아직 뜸하다. ⓒ 나영준

"조금만 들여 놓을 걸, 이것저것 많이 받아는 놓았는데 통 나가지를 않네요. 아무래도 인터넷 영향인 것 같아요. 하도 싼 물건들이 많다 그러니 죄다 컴퓨터 앞에만 몰려드는 것 같네요. 여기도 그리 비싸지는 않는데…. 글쎄요, 주말이나 수능 전날을 기대해 봐야지요."(배아무개씨·43)

"합격할까요?" "허허 그것 참..."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사주카페를 운영하는 민아무개(50)씨. 요즘 '난감한' 행복에 빠져 있다. 평소 그의 가게를 찾아 상담을 받는 이들은 대개 20대에서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들. 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연애와 결혼이다.

a 서울 한 대학가에 위치한 사주카페. 각종 시험 때가 되면 사주보다는 당락을 묻는 이들로 넘쳐난다.

서울 한 대학가에 위치한 사주카페. 각종 시험 때가 되면 사주보다는 당락을 묻는 이들로 넘쳐난다. ⓒ 나영준

그러나 수능 시험이 가까워지며 평소 20여 명 안팎이던 손님 수가 배로 늘었다. 여기까진 좋다. 하지만 자신의 남동생이나 재수 삼수를 한 남자친구의 당락 여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이들의 질문에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주라는 게 점 보는 거랑 다르다니까요.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풀어내는 것뿐인데 내가 채점위원도 아니고… 참, 곤란하지요. 물론 지원을 하기 전 어떤 전공을 하면 좋겠냐고 물어 온다면 조언이 가능하겠지요."

평소에도 이런저런 시험 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은가 묻자 아무래도 결혼과 직장 다음으로 많이 물어오는 것이 시험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곤란할 것 같다"는 질문을 던지자 시험의 당락 여부보다는 그 이후의 마음 대비에 대해 일러준다고 한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파도와 같아서 높낮이와 흐름이란 게 있어요. 그런 걸 모르고 사람들은 한 번 시험에 떨어지면 '죽고 싶다'란 말을 너무 쉽게 내뱉죠. 그런 이들에게 '자, 봐라. 당신 삶에 이런 굴곡의 부분이 있다. 그러니 한 번 잘 되고 못 되는 것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라고 당부를 해 주는 거죠."

그는 "당락이 궁금한 이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대기자'가 많은 관계로 이쯤에서 인터뷰를 접어야 했다.

2005년 아직도 많은 이들이 시험에 울고 웃는다. 그런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도 변치 않을 영원한 숙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좌절과 절망, 기쁨과 환호 뒤에 '시험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지난한 삶도 있다.

시험이란 단어에는 가슴 떨림과 긴장이 묻어 있다. 하지만 그 흥분은 결코 시험을 치르는 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인연 속에서 시험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자, 과연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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