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에 위치한 서점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고시 관련 헌책들.최육상
"자신이 판사고 검사고 변호사인 줄 알죠. 보통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신문이나 뉴스 잘 안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폐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사회문제에 아주 훤해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가 어쨌다 저쨌다 말들이 많죠. 합격만 안 했다 뿐이지 아주 판검사가 따로 없어요."
"고시 준비하다 '깨달은 바' 있어 '퇴촌'하는 경우도"
고시 공부 7년차 송선규(36·가명)씨도 시험에 '달관'한 케이스다. 물론 꿈을 접지는 않았다. "처음엔 굉장히 쫓겼지요. 솔직히 이 곳에 들어올 때는 3년만 딱 해보자고 마음 먹었거든요. 그런데 3년 동안 내내 떨어졌어요. 낭패감이 들면서 동시에 '쫄지 말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초조함을 없애고 좀 길게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고시생들처럼 방에만 처박혀 공부하던 송씨는 이때부터 TV 시사프로그램도 시청하고 운동도 시작했다고 한다. 시사 전문잡지도 구독하고 있다.
"얼마 전 발표한 사시 2차 시험, 또 떨어졌죠.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도 보고 세상도 보는 거라는 걸 믿기 때문이죠. 전 반드시 합격할 것이라는 믿음 있어요. 그것 없으면 정말 막 살게 될지도 모르죠."
송씨는 친구 얘기도 덧붙였다. "정말 고시촌에서 '득도'해서 퇴촌한 친구가 있었어요.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이 곳에 들어와서 치열하게 잘 살았어요. 잘 안 잡힐 것 같은 법전에 재미 붙이더니 자기 가능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발견했나봐요. 하루를 빠듯이 사용하는 노하우도 습득했다고 하더니 결국 나갔어요.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쾌감을 느끼는 경우, 많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 종종 있어요."
그 친구는 지금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이름깨나 날리고 있다 한다.
그러나 '폐인'과 '득도' 사이가 결코 멀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시 5년차 김홍중(31·가명)씨는 "솔직히 신림동에서 '득도'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면서 "'득도'하기 전에 빨리 붙어서 나가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김씨는 "생각해 봐라. 외로운 고시촌 골방에서 '득도'한 사람들이 어떻겠냐. 대부분 오만하고 자기독선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나도 계속 낙방하고 있는데 무서운 건 시험에 떨어지는 것보다 그 횟수만큼 거만해지고 성격이 내 뜻과는 다르게 변할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신림 9동에 위치한 한 고시원. 인터넷 전용선, 고급의자, 냉장고 등 편의시설을 홍보하고 있다.최육상
"후회하고 싶지 않다, 결과가 어떻든"
그렇다면 이들의 하루 일과는 어떨까. 공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 년 동안 같은 생활방식으로 지낸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하루 밥 세 끼를 제외하고는 독서실에서 그리고 자취방에서 각종 법전을 들여다 보는 게 이들의 공통적인 일과다.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에겐 서른 번 아니 삼백 번의 참을 인 자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 젊은 혈기가 넘쳐나는 이들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동연씨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죠. 비디오방에서 몇 편이고 계속 비디오만 보는 경우도 있고 게임이나 만화책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요. 술도 한잔씩 하고 이성친구가 있는 경우 때론 데이트도 하죠. 하지만 고시촌 바깥의 사람들이 즐기는 그런 평온함과 즐거움은 아닐 거예요. 살기 위한 발악에 가까운 몸짓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내려오는 신림 9동 고갯길 너머로 보름에 가까워진 달이 휘엉~청 떠올랐다. 문득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모습이 달무리에 겹쳐졌다. 어둠을 밟고 가야 별이 빛난다고 했던가.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했던가. 이들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은 분명 어둡고 힘겨운 길일 것이다. 하지만 고단한 삶의 문턱에서, 순간을 즐길 줄 아는 것을 깨닫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송씨의 말이 생각났다. "고시에 합격한 뒤에 '이 지긋지긋한 생활 끝내서 좋지만 스스로 좁아지고 어두워져서 세상에 나갈 자신이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시에 합격하든 아니면 중도에 포기하고 나가든, 어떤 순간이든 후회하지 않고 싶다. 그게 내가 고시촌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다."
| | 고시생들과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에게 듣다 | | | |
| | ▲ 신림동 한 선술집 벽에 씌여진 이런저런 낙서들. 사연이 많다. | ⓒ최육상 | | 신림 9동은 가파른 고갯길에 놓여 있다. 대로변에서부터 멀어질수록 경사는 심해진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대로변 쪽에는 젊은 학생들이, 고갯길로 올라갈수록 오래 공부한 일명 '장수생'들이 자리한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과 멀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세상을 참되게 바라보는 것일까?
고시 9단을 꿈꾸는 이들이 사는 신림 9동은 아무래도 낯설다. 낯선 그 곳을 지키는 몇몇 사람들에게 신림 9동의 풍경을 들어봤다.
'마포갈비' 주인 아주머니는 "요즘 장수생들은 많이 사라졌어. 예전에나 장수생, 장수생 했지, 지금은 아니야. 그 바람에 장사가 잘 안 돼. 아무래도 술은 장수생들이 진득하니 잘 마셔댔는데…"라고 말했다.
통닭을 전문으로 파는 '딱한잔만' 주인 아저씨는 "예전 같으면 하루에 80~90마리를 팔았는데 지금은 한 60마리나 팔까? 여기도 경기를 타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 먹고 살기 힘드니까 고시생들의 주머니도 점점 가벼워지는 게 영…"이라며 혀를 찼다. 그래도 자신은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고.
대륭독서실의 한 총무는 인터뷰 할 고시생을 소개시켜 줄 수 있느냐는 요청에 "여기는 젊은 학생들밖에 없어요. 장수생들은 여기서 두 블럭 뒤 고시촌에 있어요. 거기로 가 봐요"라며 어린 친구들이 누가 선뜻 나서서 인터뷰를 응하겠냐고 고개를 흔들었다.
신림 9동 파출소의 한 경찰관은 "인터뷰 날짜 잘못 잡았네. 합격자 발표 날 와 봐. 녹두거리? 아주 가관이라고. 어찌나 할 말들이 많은지, 그날만큼은 조용하던 이 동네도 시끌시끌하거든. 그 날 다시 와"하며 합격을 사이에 두고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날의 풍경은 말 못 할 아픔과 고뇌가 넘쳐난다고 귀띔했다.
인터뷰 대상을 찾아 여기저기 드나들다 보게 된 한 술집 벽면은 온통 낙서투성이였다. 낙서에 낙서가 겹치면서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국의 수많은 고시생들의 가슴 속도 그러하겠지. 하지만 몇 년이고 속을 시커멓게 태우며 '심지(心志)'를 질기게 만들어야 '정의'로운 사회를 밝히는 불꽃이 되지 않을까? 그들의 희망을 함께 빌어본다. / 최육상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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