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6일 오후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한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이희열
도대체 판단의 기준들이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두 전직 원장의 구속 이후 정치권이 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바탕에는 'DJ의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DJ의 분노'가 국정원 도청파문에 대한 판단과 가치기준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무엇이 본질적인 문제인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사이의 갈등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전·현 정권 사이의 갈등은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의 문제일 뿐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가기관에 의한 반(反) 인권적 도청행위의 실상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같은 범죄행위를 어떻게 근절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선적인 의제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역사적 견지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이라면, 지금의 상황에서 무엇이 본질인가를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
이 핵심적인 문제를 젖혀놓고 전개되고 있는 전·현 정권 사이의 갈등론은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일 뿐이다. 또한 양쪽의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노림수가 작용하는 경우까지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반발을 이해못할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와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충분히 근거있고, 꼭 두 사람 모두 구속시켜야 했느냐는 이의제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항의표시에 앞서 그가 해야할 것은, 당시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정원 도청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일이다. 자신의 재임기간 중 일어난 잘못된 일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이의제기도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도청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대단히 구체적인 도청의 실상들이 드러났고, 임동원 전 원장 조차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김 전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두 전직 원장을 신뢰한다는 이유로, 드러난 도청의 실상을 부정하는 것은 억지주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DJ, 더이상 논란의 원인 제공자 되어서는 안된다
김 전 대통령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해주어야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DJ의 분노'에 노심초사하며 동교동 대변인이 된 듯한 말만 쏟아내는 집권여당의 모습, 그리고 도청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가지고 '정치적 음모' 운운하며 나서는 민주당의 모습이 얼마나 보기 민망한지를 생각한다면, 김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논란의 원인제공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켰고 노벨평화상에 빛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 아들과 측근들의 문제로 난맥을 빚기는 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와 한반도평화를 위해 한생을 바친 거목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한 정파의 좁은 지도자처럼 처신할 이유가 무엇인가. 국정원 도청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보편적 상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과오가 발견되었다면 겸허히 인정하고, 큰 흐름 속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일 때 그는 변함없이 거목으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