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누었던 필담입니다.^^양중모
"야 이 녀석아. 니가 메모지에 써 놓고 가는 글 보면 무슨 글씨인지 도저히 못 알아보겠더라. 그래 가지구 어디 가서 취직도 못해."
요즘은 컴퓨터로 작업하는 시대라며 바로 반격에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예상하셨는지 미리 방어막을 치는 아버지에 의해 시도조차 해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요새는 물론 컴퓨터로 이력서 넣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글씨 쓸 일이 있는데 그렇게 글씨를 못 써서 되겠냐. 글씨가 그 사람을 나타내 준다는데."
아버지 얘기처럼 나는 글씨를 정말 못 쓴다. 중고교 시절 숙제를 정성껏 해 갔는데 이런 억울한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야, 너 누가 숙제를 동생한테 시키라고 했어?"
동생은 있지도 않다고 항변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 쓴 듯 '날라가는' 글씨체를 보면 그런 오해를 살 만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고칠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이미 습관이 되어 빠르게 쓰다보면 다시 엉망인 원래의 글씨체가 나오곤 했다.
그래도 별탈 없이 살아왔는데 아버지는 더 늦으면 영영 고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나 보다. 어머니가 아프신 후부터 아버지와 나는 종종 필담을 주고 받았다. 어머니가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셨기에 아버지는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내게 메모로 남기곤 했다.
당시 난 새벽에 중국어 학원에 다녔고 지금도 새벽에는 헬스를 다니기 때문에 아버지 볼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는 여전히 할 말이 있으면 메모지에 써 놓으신다. 그리고 나 역시 집에 늦게 들어올 것 같은 날 아버지께 메모를 남긴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아버지는 이 메모지를 마치 암호해독 하듯 읽어야 했고 일차적으로는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명령에 가까운 권유(?)를 하신 셈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글씨 쓰는 공책을 사러 간다는 게 무척이나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