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정성을 나누어요장옥순
"얘들아, 이 바지는 얼마에 파는 거니?"
"선생님, 아무리 좋은 것도 돈을 받고는 팔지 않고 물건끼리만 바꾸기로 했어요."
"그래? 그럼 진우가 가져온 이 청바지는 아주 새 것인데 서효가 입으면 딱 맞겠다. 서효야, 이 바지 한 번 입어볼래? 너를 좋아하는 친구 옷이잖아."
서로 물건을 바꾸어 쓰며 물건 주인의 정성과 사랑도 함께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대견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6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자치활동 시간을 통하여 규칙을 정하고 지켜가는 모습을 보며 먼 후일,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보는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점심시간에 음식을 남기지 않는 모습, 수업 시간에 연필을 깎는 일도 삼가는 모습, 좌측통행을 한다며 90도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화장실을 출입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도 나옵니다. 오히려 어른들인 우리 선생님들보다 더 깍듯이 질서를 지키는 모습 앞에서는 작은 부끄러움마저 생깁니다.
착한 행동을 한 아이를 찾아서 칭찬해 주는 모습, 잘못을 한 친구를 고치게 하면서도 마음 다치지 않게 충고하는 모습, 나이 어린 후배들을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참아주고 배려하는 형들의 모습을 보며 전교생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에 안도하게 됩니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는 것은 작은 학교만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살뜰하게 챙겨주고 다독이는 모습을 보고자 함이 교육이 추구하는 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가치를 향해, 혼자만이 아닌 어울려 살아가며 함께 그 가치를 공유하는 모습은 학교 교육의 지향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만의 개성 있는 꽃을 피우면서도 함께 무리지어 피어나는 어울림을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16명의 공동체가 자랑스럽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서로 아끼고 다독이며 아픔과 힘듦도 함께 나누는 따스한 아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나무들은 옷을 다 벗어버리고 시원스레 서서 겨울 노래를 부릅니다. 바깥 공기는 차가워도 '아나바다 시장'을 열어 마음을 나누는 아이들의 체온은 참 따스하답니다.
우리 산골 분교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작은 행사를 잘 만듭니다. 자매결연을 해서 자기들을 도와준 언니, 오빠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보내기도 하고 바이올린 강사님이 독감으로 못 나오시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위로의 편지와 그림을 그려서 선물을 해서 감동시키곤 합니다.
사랑과 정성은 꼭 물질이 아니어도 상대방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이미 삶 속에서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결코 손가락으로 계산할 수 없는 마음과 정성을 나누는 사랑을 알고 있으니 학교나 교실의 가르침은 오히려 작아지고 그들이 가진 고운 싹을 키우고 다치지 않게 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 보다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힘을 보태주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지식은 지혜를 얻는 방편에 불과하며 많이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게 하며 학교생활에서 스스로 터득할 수 있게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생긴 자그마한 일도 놓치지 않고 챙겨주는 선배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혀가는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인간관계의 문화유산까지도 배우고 익힙니다. 국화가 만발한 교정에서 어느 한 아이도 꽃을 꺾을 줄 모르며 늙어서 몸을 누인 할아버지 나무의 밑동을 보고 안쓰러워 할 줄 아는 따스한 심성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간직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이제 산골 분교에는 조용히 흐르는 계곡 물소리만 한가하게 들립니다. 가끔 찾아오는 산까치의 한적한 울림이 늦가을 하오를 실감나게 하는 계절입니다. 계절은 겨울로 향해서 서 있지만 날마다 새로움을 안고 달려오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 속에는 스산한 겨울 풍경이 없답니다.
'아나바다 시장'을 통해 친구와 바꿔 집으로 가져 간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친구 얘기로 하루를 닫을 아이들 모습이 벌써부터 생각납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우리 아이들을 기다릴지 지금부터 나는 창 밖을 보며 내일을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산골분교 아이들의 일상을 전합니다. 세상은 날마다 시끄러워도 예쁜 아이들이 자라는 땅에는 희망이 가득합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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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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