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김삿갓 숨진 곳 유적지 본격 조성

화순군, 2008년까지 14억원 들여 '김삿갓 종명초분 유적지 조성사업' 전개

등록 2005.11.22 14:28수정 2005.11.2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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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화순 동복면 구암마을 종명가 앞에 세운 김삿갓 친필시비.

화순 동복면 구암마을 종명가 앞에 세운 김삿갓 친필시비. ⓒ 최연종

전남 화순 동복에서 15년간 머물며 주옥같은 시를 남긴 난고(蘭皐) 김병연(김삿갓)을 기리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김삿갓 브랜드'가 화순문화관광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화순군은 김삿갓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이를 문화관광자원으로 삼기 위해 난고 선생이 숨을 거둔 동복 구암리 일대에 '김삿갓 종명초분(終命初賁) 유적지'를 조성해 '김삿갓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다.


'김삿갓 종명초분 유적지' 조성사업은 크게 3가지.

김삿갓이 57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곳으로 알려진 창원 정씨 사랑채(종명가)를 복원하는 것을 비롯해 삿갓동산 조성, 망미대(望美臺) 정비사업 등이다. 화순군이 총 사업비 14억여 원을 들여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한다.

a 망미대에서 바라본 동산(동뫼). 신분이 천한 사람들이 이곳에 묻혔다.

망미대에서 바라본 동산(동뫼). 신분이 천한 사람들이 이곳에 묻혔다. ⓒ 최연종

군은 1단계 사업으로 지난 7월 구암 마을 입구에 난고 김병연 종명초분 유적지 표석을, 종명가 입구에는 유적지 안내비, 시비, 종명가 표석을 세웠다. 김삿갓이 숨을 거둔 뒤 묻혔던 초장지(初葬址)에는 '지명 유래비'를, 마을 건너편에 있는 '와우봉'에는 '망미대 유래비'를 세웠다.

군은 올해 안에 망미대에 정자, 진입다리, 부대시설 등을 설치하는 한편 내년부터 종명가를 복원하는 것을 비롯해 마을 앞에 삿갓 동산을 가꾸는 등 2단계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a 종명가 앞에 세운 안내비, 친필시비, 종명가 표석.

종명가 앞에 세운 안내비, 친필시비, 종명가 표석. ⓒ 최연종

김삿갓이 숨을 거둔 창원 정씨 사랑채 앞에는 유적지 안내비, 난고 선생 친필 시비, 종명가 표석이 세워졌다. 맨 앞에 세워진 유적지 안내도는 김삿갓의 생애와 유적지 약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향토사연구가 송암(松岩) 문제선(文濟善) 선생이 짓고 서예가 설헌(雪軒) 나창호(羅昌浩) 선생이 새겼다.

가운데에는 김삿갓 친필시비가 서있다. 난고 선생이 운명한 정씨 서재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묵향에 스스로 취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내용의 친필 시로 동복향토문화보존회(회장 문제선)의 도움을 받았다.


a 김삿갓 시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문제선 동복향토문화보존회장.

김삿갓 시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문제선 동복향토문화보존회장. ⓒ 최연종

시비 바로 뒤에 있는 종명가는 내년에 복원된다. 27평 규모의 전통한옥으로 안채를, 12평 규모로 종명가(사랑채)를 복원한다. 이 밖에도 헛간채(2평)와 담장 복원, 사당 및 우물 보수 등의 부대사업이 펼쳐진다.

마을 건너편에 있는 와우봉 중턱에는 망미대 유래비를 세웠다. 와우봉(蛙牛峯)은 개구리 머리와 소 '구시' 형상의 아담한 동산으로 인근에는 둔동 숲정이가 있고 적벽산(옹성산)과 백아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 경관이 빼어난 곳.


1850년께 와우봉 머리에 '망미대'란 정자를 지어 시인묵객들이 많아 찾았는데 김병연도 이 마을에서 묵어가며 풍월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이서 적벽 주변에 1650년께 망미정(望美亭)이란 정자가 이미 세워져 '망미대'라 이름 붙었다고 전한다.

a 정씨 후손인 정시룡이 망미대 암벽에 새긴 글귀.

정씨 후손인 정시룡이 망미대 암벽에 새긴 글귀. ⓒ 최연종

이 곳에 난고 선생이 망미대에서 떠오르는 시상을 노래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시구로 시비를 세운 것이다. 시비 바로 앞에 있는 암벽에는 망미대(望美臺)글귀가 선명하다. 정씨 후손인 정시룡(丁時龍 1837~1909))이 1882년 새겼다.

문제선 회장은 "정시룡은 120년 전 김삿갓이 머물던 정씨 집안의 아들로서 정시룡이 14살 때 김삿갓이 사랑채로 왔으니 정시룡이 난고 선생의 장례를 치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시비 옆에는 올 안에 삿갓을 상징하는 육각 정자를 세운다. 와우봉 중턱은 백아산 옹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구암 마을 뒤로 '시루봉'과 '노청골'이 펼쳐지는 전망이 좋은 곳으로 편백나와 삼나무숲이 운치를 더한다. 2곳에 탐방로를 만들고 주차장을 건립해 탐방객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로 조성된다.

a '동뫼' 앞에 세운 지명유래비. 난고 선생이 이곳에 묻힌 내용이 소개돼 있다

'동뫼' 앞에 세운 지명유래비. 난고 선생이 이곳에 묻힌 내용이 소개돼 있다 ⓒ 최연종

마을 앞에는 삿갓동산을 가꾼다. 잔디광장과 관람로를 만들고 주변에는 정자와 시비를 세운다.

김삿갓이 숨을 거둔 뒤 묻혔던 초장지(初葬址)에도 지명유래비가 세워졌다. 마을 남쪽 기슭에는 동뫼등(洞山)으로 불리는 아담한 동산이 있다. 마을에서 관리하는 국유지로서 무연고 사망자가 생기면 이 곳에 매장했다. 이 동산은 '천한 송장이 묻혀 있어 더럽다'는 뜻으로 비하돼 '똥묏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1863년 난고 선생이 숨을 거뒀을 때도 정씨 문중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 곳에 장사 지냈다. 난고 선생 후손들이 3년 뒤 영월로 이장, 현재 묘터를 가리키는 초장지 비문만 남았다.

a 난고 선생이 처음으로 묻혔던 초장지. 후손들이 3년뒤 영월로 이장했다.

난고 선생이 처음으로 묻혔던 초장지. 후손들이 3년뒤 영월로 이장했다. ⓒ 최연종

동복면 구암리(龜岩里)는 마을 옆으로 이어지는 산등이 자라(거북)가 엎드려 있는 형국을 하고 있다 해서 붙은 이름(속칭 자라바위). 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3km 쯤 떨어져 있으며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김삿갓은 방랑생활을 하며 1850년께 동복현에 내려와 적벽 등 동복 8경의 명승지를 구경하며 동복 구암리 창원 정씨 사랑채에 머문다. 이 때 15년간 동복에 머물면서 주옥같은 4편의 시를 남겼으며 병이 들어 의지할 곳이 없자 정씨 집에서 투병중 1863년 3월 29일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a 동복면 구암마을 전경. 산등이 자라가 누워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동복면 구암마을 전경. 산등이 자라가 누워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 최연종

동복 구암리 창원 정씨 사랑채가 김삿갓 종명지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문제선 동복향토문화보존회장의 공이 컸다.

문 회장은 1999년 7월 '김삿갓 선생 동복에서의 고찰'이란 글을 발표했고, 2000년에는 '제1회 전라남도 향토문화 연구논문 공모전'에 '김삿갓 초분지에 대한 고찰'이란 제하의 논문을 발표해 난고 선생이 창원정씨 사랑채에서 숨을 거둔 사실과 초분지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문 회장은"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김삿갓을 기리는 사업을 펼치게 돼 다행"이라며 " 김삿갓 유적지 조성 사업이 마무리되면 옹성산을 비롯해 둔동 숲정이, 오지호기념관, 오지호 생가, 만경대 등과 연계한 문화관광벨트화가 가능해 '오지호 브랜드'와 함께 '김삿갓 브랜드'가 화순 문화관광산업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www.namdonews.co.k)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남도뉴스(www.namdonews.co.k)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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