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고통'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 3] 정범이가 읽은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뎌내기>

등록 2005.11.22 17:52수정 2005.11.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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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범이 읽은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뎌내기>

내게 있어서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뎌내기>란 책은 단순한 책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 삶의 지침서가 되어 주고, 희망의 길로 이끌어 준 책이기 때문이다.


헤세의 이야기보따리를 풀 게 된 계기는 이렇다. 얼마 전 부모님께서 나의 나태함과 그로 인한 나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하여 따끔한 질책을 하였다. 새벽에 방으로 들어온 나는 혼자 침대에 누워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나를 이해하기 보다는 나의 상황을 아시기도 전에 그런 가슴 아린 말로 내 가슴에 상처를 내신 것에 대한 서글픔과 우울함으로 괴로워했다.

아마 뉴스에서만 보고 나에겐 멀기만 한 일로 느껴졌던 고등학생 투신자살에 대한 생각까지 미친 것은 그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돌아선다 하더라도 끝까지 자식인 나를 감싸고, 지켜주시고, 격려해주시리라 굳게 믿었던 두 분이 제일 먼저 돌아서버리신 것처럼 느껴졌을 때의 그 서글픔은 말로 이루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아무 것도 적혀져 있지 않은 빈 공책을 펼쳤다. 혼자서 지금 나의 심정과 상황 등을 두서없이 적어 내려갔다. 한 장, 두 장… 어느 새 나의 이야기는 자살로 이어졌고, 삶의 희망을 모두 잃은 그런 메마른 한 포기의 풀처럼 천천히 써 내려갔다.

그러던 중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가 눈을 돌려 책장을 공허하게 바라보았다. <삶을 견뎌내기>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말이 적혀있을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책을 그냥 집어 들었다.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메시지였다. 옆의 그림을 봤다. 겉표지에 삽입된 자그마한 그림이었지만, 무언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유심히 쳐다봤다. 괜히 책의 겉표지에 삽입된 그림이 아니리라. 그림은 수채화였다. 주위 풍경은 알록달록 예쁜 색채의 집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푸릇푸릇한 식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풍경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그림의 가운데에는,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다 죽어가는 메마르고 볼품없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채와는 전혀 상반되는 암울한 검은 색인 그 나무로 시선이 쏠렸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도태되고, 암울한 시기에서 혼자 버려졌지만, 그래도 다 죽어가는 그 모습으로도 꼿꼿이 버티는 한 그루의 나무였으리라.

a <삶을 견뎌내기> 책표지

<삶을 견뎌내기> 책표지 ⓒ 정호갑

조심스레 책장을 펼쳤다. 저자 소개를 봤다. 신학교 중퇴, 자살 미수,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분열증, 아들의 병. 내 상황은 그의 고된 인생길엔 비할 바조차 없었다. 그의 삶이 고통에 나를 위로 해주는 것일까? 희망을 가지고 한 장을 넘겼다. 이러한 글귀가 있었다.


“고통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통해 힘이 솟구친다. 고통이 있어야 건강이 있다. 사소한 감기에 걸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푹 쓰러지는 사람은 언제나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통 받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든다.”

과연 그럴까.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문구다. 고통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 나약해지고, 아파하지 않는가. 이러한 의문점으로 책의 목차를 보았다.


다양한 부제들을 가운데 나에게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펼쳤다. ‘힘든 시절 벗에게 보내는 편지’. 한편의 짧은 시였다.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이해가 갈듯 말듯 했다. 그의 인생관을 이해하기엔 내가 아직 어린가보다. 책을 맨 첫 장으로 돌려 읽기 시작했다. 제 1장은 ‘작은 기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천천히 책상에 90도로 똑바로 앉은 채로 한 문장 한 문장씩 정독하며 읽어 내려갔다. 일상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한 번만 둘러보면 그 속에서 몇 가지씩을 찾을 수 있다는 헤세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책장 위의 즉석카메라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친구들과 함께 테마학습 갔을 때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고교 생활 마지막 여행의 대한 아련한 추억이 머릿속에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잠시 추억에 잠겨 5일 동안의 길고도 짧은 여행의 대한 기억을 곱씹어 보았다. 입가에는 작지만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랬다. 헤세의 말이 맞았다. 작은 기쁨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한 장밖에 읽지 않았지만 헤세는 벌써 내게 고통 및 시련을 이겨낼 한 가지 방법을 일러주었다. 또한 울적하고 격하던 내 감정을 식혀주고 오히려 무엇인가 가슴 따뜻함을 선사해주었다. 이 책은 한편의 일기 같은 헤세의 글 다음에는 항상 시 한 편을 선사한다. 뭔가 심오한 뜻이 담긴듯하면서도 시원시원한 헤세의 시는 매력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세상이여 안녕’이라는 제목의 시가 한 편 수록되어 있다. 그 시를 읽으며 나는 헤세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고작 이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힘들어하고, 내 자신을 원망하고, 비판했는지. 참으로 부끄러웠다. 몇 시간 전에 공허함을 채우는 듯, 빈 노트자락에 적었던 글을 찢어버렸다. 헤세의 말이 맞다. 오늘 비록 나에게 고통이었지만 내일 축복이 된다. 고통으로 인하여 사람은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강철처럼 단단해 지기도 한다.

헤세는 나의 사고방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 시련을 아픔으로써 받아들여 혼자 아파하고, 우울해 하고, 서글퍼 하기엔 나는 아직 젊다. 고통을 기회로 삼아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기에 난 아직 젊다. 그 날 새벽은 내 인생에 있어서 참 특별한 날이었다. 만에 하나, 나약한 선택으로 혼자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르는 나에게 있어서는 새롭게 다시 태어난 또 다른 탄생일이다. 왠지 모를 가슴 벅참으로 잠시 책장을 덮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벌써 한참이 지난 듯했다. 날은 이미 밝아 사람들은 분주히 자신들의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잠시 접어두고, 창 터에 걸터앉아 묵묵히 창밖을 응시했다. 참으로 활기찼다. 자전거를 바삐 몰고 가는 청년, 그 뒤에서 천천히 몰고 오는 아줌마, 늙은 노부모를 리어카에 모시고 아침 산책 나오신 중후한 아저씨, 아침 식사 하고 가라고 소리 지르는 음식점 아저씨. 어둡고 외롭고 울적하던 밤은 어느 샌가 거두어지고, 환한 해가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이 책에는 ‘꿈’이라는 헤세의 시가 있다. 그 시엔 이러한 단락이 있다.

“오! 달콤하고 밝은 낮이여 어서 오라. 그리고 밤이 나에게 주었던 고통을 치유해다오! 낮이여, 그대의 햇살을 나에게 비추어라. 그래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라! 설령 고통스러워도 이 나쁜 시간의 두려움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다오!”

정말 그랬다. 낮은 밤이 나에게 더해 준 고통 및 상처를 씻어내 주었다. 헤세의 말은 하나도 거짓된 것이 없다.

헤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자신감을 얻었다. 헤세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훨씬 더 행복한 내가, 나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은 헤세보다 더 나약한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내가 더 불행할지도 모른다. 행복과 불행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들 하기 때문이다. 헤세는 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은 나보다 불행했지만, 그 정신적인 행복에 있어서 는 나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헤세의 마음 터놓은 이 이야기보따리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 책으로 인하여 난 다시 한 번 태어났고 변모될 수 있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 더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은 사람. 이러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헤세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태어나길 바란다. 헤세의 진심어린 이야기들은 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헤세에게 자신들의 아픔을 터놓고 책을 읽었을 때, 헤세는 분명 응답해주리라 믿는다. 또한 곁에 두었다가 내가 만약 언젠가 다시 한 번 내 삶이 힘들어지고, 다시 한 번 나약해질 때, 읽고 싶은 책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 발은 고3 때이다. 내년 7월쯤엔 대입시험을 봐야 하는 나로서는 지금이 고3이나 다름없다. 그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고, 또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어느 직장인 못지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클지도 모른다. 그 첫발을 못 내딛는다면, 그대로 꺾여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고통을 다스리는 법, 고통을 축복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고3은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 단계이다. 이 책은 나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내 꽃을 피우기전까지는 그 어떠한 고통 앞에서도 비굴해지지 않고 또 준비하리라. 이러한 말도 있지 않은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2학년 고정범)


고정범이 쓴 글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난 뒤부터 10분을 함께 하기 힘들다. 화목한 가족 분위기를 위해서 시작한 대화가 10분을 못 넘겨 엉키고 부딪힌다. 부딪혀 큰 소리가 나면 개운치 않은 뒷맛이 오랫동안 간다.

그리고 대립된 문제 상황이 일어나면 윽박지를 수는 있지만 설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아이는 나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반감을 나타낼 때가 더 많다. 그래도 학교에서 꽤 오랫동안 고등학생들과 함께 한 나인데도 집에서는 왜 아이와 부딪히고, 아이를 설득할 수 없는 것일까?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을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이끌기 위해 감동적인 이야기를 준비하지만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무심코 던지는 말에 반응을 보인다. 나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다가서는 방법을 모르겠다.

정범이의 글을 읽으면서 배운 것이 있다. 아이들 세계 또한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고 그 어려움은 어른들이 겪는 어려움 못지않게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의 힘듦을 가볍게 보지 말고 힘듦으로 인정하여 주자. 그리고 그들의 힘듦을 덜어주거나 해결해 주려 섣불리 훈계도 교훈도 하지 말자. 단지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아 주고 지켜보자. 절대로 아이들을 나와 같이 만들려고 하지 말자.

정범이는 책장에 꽂혀 있는 한 권의 책으로 스스로 깨우쳤다. 아이들 책상에 한 권의 책을 놓아두자. 그리고 기다려 보자.

삶을 견뎌내기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이레,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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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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