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고 희한한 국정원 예산 증액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간첩 검거는 줄었다는데...

등록 2005.11.25 10:15수정 2005.11.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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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승규 국정원장이 지난 10월 7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정원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의 국정감사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뒤는 이상업 2차장.

김승규 국정원장이 지난 10월 7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정원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의 국정감사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뒤는 이상업 2차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공교롭다. 그리고 희한하다. 어제 국정원 관련 뉴스 두 개가 동시 다발적으로 제공됐다. 하나는 업무 성과, 하나는 예산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 뉴스가 묘한 함수관계를 형성하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업무 성과' 보도와 '예산' 보도

국정원이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올해 8월 말 현재까지 총 670건의 대남 지령통신이 수신됐다고 한다. 또 이 기간 간첩 검거건수는 13명이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와 함께 일본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중국 삼합회 등 세계 3대 국제범죄조직이 한국에서의 활동 거점 확보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뉴스를 접하면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만하다. 아울러 간첩 검거와 해외 범죄조직 예방에 좀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관련 파트에 예산을 더 배정하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대남 지령통신과 세계 3대 범죄조직 뉴스가 나온 날, 국정원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4.3% 늘려 잡았다는 뉴스도 함께 나왔다. 이 뉴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2차장 예산의 경우 12.3% 늘려 잡았다는 것. 국정원 전체 증액률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럴 법하다. 세계 범죄조직의 국내 침투를 차단·단속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곳은 2차장 산하 방첩국이다. 북한이 보낸 간첩을 검거하는 곳도 역시 2차장 산하 안보수사국이다. 그렇기에 2차장 예산을 대폭 늘려 잡은 걸 뭐라 탓하기 힘들어 보인다.


정리하자면, '공교롭게도' 두 뉴스가 동시다발로 국민 앞에 선을 보임으로써 서로가 밀고 당겨주는 협력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a 국회 정보위의 국정감사가  지난 10월 7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청사에서 열렸다. 열린우리당의 임종인 의원과 장영달 의원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의 국정감사가 지난 10월 7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청사에서 열렸다. 열린우리당의 임종인 의원과 장영달 의원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간첩 검거 줄었는데 예산은 늘어...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하지만 이 관계는 어제에 한정해 봤을 때에 한정된다.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선 <오마이뉴스>가 전한 두 개의 소식부터 들여다보자.

<오마이뉴스>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2000년 6.15공동선언을 기점으로 대남전략을 '남북화해·평화공존'으로 잡았다고 한다. 국정원이 지난 3월에 작성해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의 대남전략 및 전개과정'이란 문건에 명시된 내용이다.

역시 <오마이뉴스>가 지난달 31일 보도한 국정원의 '98년 이후 연도별 간첩 검거실적’(올해 8월 현재) 문건을 보면 2001년부터 올해까지 검거한 간첩 13명 중 자수간첩이 8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울러 간첩 혐의도 대부분 '국내정세 수집보고'이고 '동조자 포섭'의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이같은 두 보도를 종합한 결과를 2차장 예산 대폭 증액 소식에 대입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북한이 간첩 등을 통한 대남 공작을 축소하고 있고 이에 따라 국정원의 북한 관련 업무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관련 예산은 줄이거나 동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연도별 자수간첩 현황

'98년

'99년

'00년

'01년

'02년

'03년

'04년

'05년

자수간첩

5

3

2

3

2

0

2

1

18

검거간첩

4

5*

1

1

0

3

1

0

15

합계

9

8

3

4

2

3

3

1

33

 

ⓒ *김영환 등 민족민주혁명당 관련자 5명(출처 : 국가정보원)

하지만 이 잠정결론은 곧장 뒤집힌다. <동아일보>는 어제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기능·조직 개편방안을 보도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포함시켰다. 국정원이 안보수사권 폐지에 강력히 반대하는데 그 이유로 "북한의 대남 침투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몰라 '엉거주춤'만 춰야 할 판이지만 그쯤 해두자. 국정원이 북한의 대남공작·간첩파견이 소멸됐다고 밝힌 적은 없으므로 방첩교육을 충실히 받아온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의 자세를 환기하는 계기로 삼도록 하자.

국정원 조정되면 국내정보 수집분야는 폐지 1순위

하지만 이것만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에서 국정원 기능 가운데 폐지 1순위로 꼽고 있는 게 국내 정보 수집 분야다.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이 현실화된다면 2차장 산하 협력단은 폐지 대상이 된다. 그곳이 바로 정치와 사회 분야 등 일반 국내정보를 수집하는 곳이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국내 정보 수집에 집중해온 2차장 산하 시도지부의 기능도 조정대상이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정원은 2차장 예산을 대폭 늘려 잡았다. 산업스파이나 해외 범죄조직을 담당하는 방첩국 등의 예산 증액이 불가피했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증액률이다. 그 이유가 뭔가? 국정원이든 국회 정보위원회든 반드시 답을 내놔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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