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형님 물동이 여 봤을까?

바다에 부치는 편지 3

등록 2005.11.25 12:31수정 2005.11.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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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연평 조기파시

연평 조기파시

"너 지게질 해봤냐."

시골에서 일이나 하고 자랐냐 하는 말입니다. 지게질이라는 것이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중학교 때 솔가지와 아카시아 나무를 한 짐씩 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어나기만 하면 가는데 지고 일어나는 일이 여간 어려웠습니다. 늘 아버지가 뒤에서 밀어주면 뒤뚱거리며 저수지를 지나 둑 아래 손수레가 있는 곳까지 몇 차례를 쉬어가야 했습니다. 지게질을 하기 전에는 할머니가 헌 옷을 연결해 만들어준 멜빵으로 져 날랐었죠.


당시 생솔가지를 베면 '큰 일'이 나기 때문에 죽은 나뭇가지로 한 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소나무 밑에 떨어진 솔잎도 긁어서는 안 되는 시절이었지요. 당시 시골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상감'과 밀주단속 나온 사람들이었죠. 상감은 동구 밖이나 외통수 길목에서 기다리다 한 짐씩 지고 오는 나뭇짐을 내팽개치듯 내려 속을 뒤집어 보고 혹시 생솔가지 하나라도 나오면 지게는 물론 리어카까지 압수해가곤 했었죠.

a 전남 신안 압해도 갯벌(2005)

전남 신안 압해도 갯벌(2005) ⓒ 김준

그런데 갯일을 많이 하는 바다에서는 일찍부터 지게질보다는 '물동이'를 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여자들의 일이 많았다는 뜻이겠지요. 배를 부리는 일은 지금처럼 어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배를 짓는 다는 것은 마치 집안에 성주를 하는 것처럼 중한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뭍에서 최고의 굿이 성주굿이라면 섬에서 최고에 굿은 당연히 '진수굿'이었으니까요.

고기를 잡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평생 뭍에 한번 나가보지 못하고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결혼하고 섬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40여 년 전의 섬생활입니다. 어쩌다 외지에서 배라도 들어오면 섬 주민들은 선원들에게 나무도 팔고, 물도 길어다 주고 생선도 받고, 몇 푼의 돈벌이도 하였습니다.

특히 흑산도나 위도 그리고 연평도처럼 파시가 섰던 섬은 조기를 잡는 배들이 한 번 들어오면 조기가 이동할 때까지 머물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짭짤한 벌이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여성들의 '동우질', 물동이를 이고 물을 나르고 생선을 받아 이고 나오는 것은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요긴한 도구가 '물동이'였답니다.

"저 형님 물동이 여 봤을까."


조기파시로 유명한 위도의 '파장금'에서 들은 말입니다. 섬은 어디나 물이 매우 귀합니다. 섬뿐만 아니라 농촌의 시골에도 집집마다 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우물을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굿을 하거나, 마을의례를 하면 언제나 샘굿은 빠뜨리지 않고 했었지요. 그만큼 마을에서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a 충남 서천(2005)

충남 서천(2005) ⓒ 김준

시골에 살던 시절에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20여 분 거리의 마을공동우물에서 부엌에 물을 길어다 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부엌에 물이 마르는 것은 집안에 망할 징조, 혹은 재복이 달아날 징조라는 할머니의 귀에 닳는 잔소리는 시집살의 시작이었죠. 섬 마을에 우물은 바다와 접한 낮은 곳에 위치하지만 집들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육지에 비해서 물을 길러 이고 오는 길이 편치 않습니다. 게다가 골목길도 좁고 구불구불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a 전남 진도 관매도 관매리(2004)

전남 진도 관매도 관매리(2004) ⓒ 김준


지금이야 작은 섬들도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고 그렇지 않는 곳은 무인도로 변해버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육지로 나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큰 섬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섬 주민 여성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물동이', 육지의 남성들의 '지게질'처럼 삶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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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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