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개천에서 용 안 난다

[특집] 차상위계층, 가난의 바깥에서 떠돌다 4

등록 2005.11.25 16:09수정 2005.11.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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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구룡마을 풍경

구룡마을 풍경 ⓒ 인권위 김윤섭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이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거의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확률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다음의 연구 결과는 가난의 대물림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빈곤층 가구가 빈곤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날 확률은 6%."(한국개발원 연구결과)
"저소득층 밀집지역 학생들의 30%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지 않다고 응답."(한국교육개발원 연구 결과)
"부모의 소득수준과 자녀의 수학능력시험 점수는 비례."(김경근의 <한국사회의 교육격차>)


2004년 11월 실시된 통계청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원하는 단계까지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람이 68.5%로, 그중에서 경제적 형편을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66.5%에 달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로 인한 교육의 결핍 못지않게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바로 교육격차다.

교육격차는 개인적, 가정적, 지역적,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교육기회를 적게 보장받거나 교육과정의 여건 차이로 인해 차등적인 교육성과가 나타나는 상태를 일컫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교육 불평등을 나타내는 실제 지표다.

김경근의 <한국사회의 교육격차>(2005)를 보면 월 소득 300만 원 미만 가구 학생의 수능점수 평균은 291.12이며, 300만~500만 원 미만인 가구 학생은 305.82, 500만 원 이상인 고소득층 가구 학생은 316.86으로, 소득수준에 따라 수능점수가 올라가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현상은 고소득층 가정 자녀의 서울대학교 입학비율이 일반가정 자녀에 비해 1985년에는 1.3배에 불과하였으나, 2000년엔 16.8배로 늘어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계층별 학업성취 격차가 나는 주된 원인으로 사교육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서울 강남지역의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월평균 79.35만 원으로, 농어촌 지역의 16.13만 원의 약 5배에 달한다. 또 아버지의 학력이 높을수록, 가계의 월평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아버지의 직업 위계가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액이 증가한다.

특히 아버지가 초등학교 졸업자인 집단(9.74만 원)과 박사인 집단(56.07만 원) 사이에는 약 6배, 가구 소득수준이 300만 원 미만인 집단과 500만 원 이상인 집단 사이에는 3배 가량의 사교육비 지출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a 구룡마을 풍경

구룡마을 풍경 ⓒ 인권위 김윤섭

이러한 결과는 지역 간, 계층 간 사교육의 질과 양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교육 기회의 격차가 궁극적으로 학업성취 격차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얘기가 되어 버렸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더 심각한 것은 가난의 덫에 한번 빠져들면 평생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빈곤층의 빈곤 탈출 가능성이 낮아지는 이유 또한 교육기회의 차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김대일의 연구 <빈곤의 정의와 규모>(2004)에 따르면 소비기준 상위 10% 계층의 한 달 교육비 지출액은 100만 원 이상인 데 비해 하위 10%의 빈곤층은 한 달 10만 원 수준으로 10배 정도 차이가 나고 있다.

최근 서울 외곽의 한 시영아파트 담장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계층 간 차별과 교육권 분쟁 사태는 경제력에 따른 교육격차가 이제 빈곤층에게 극복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박탈감으로 다가서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교육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사회적 배제 계층이나 집단의 교육권 보장, 즉 교육소외의 극복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육소외란 신체, 지역, 사회 요인으로 인해 최소한의 교육수준을 보장받지 못하는 교육적 배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학업중단'이 대표적이다.

2003년 한 해 동안 약 4만 명의 중고등학생이 학업을 중단했는데 그 가운데 10.1%가 경제적 곤란 때문이며, 30.1%는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상태였다(윤여각, <학업중단 청소년 및 대안교육실태조사>, 2002). 또 학업중단이나 학업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학교의 경우 5만여 명의 학생이 수업료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빈곤층 자녀들은 학습 참여도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혜영의 <교육소외계층의 교육복지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2005)에 따르면, 잘 사는 집 자녀의 경우 34.2%가 학교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편인 데 반해 못 사는 집 자녀들은 13.8%에 그쳤다. 또 잘 사는 집 자녀의 7%가 학교수업을 잘 듣지 않는 편인 데 반해, 못 사는 집 자녀들은 21.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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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손문상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에 따르면 등교 지도와 학습준비물 점검은커녕 아침식사 여부나 등교 여부조차 모르는 경우까지 있으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결손과 학습장애는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빈곤층 자녀의 경우 대개 복합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빈곤층 자녀의 공통점은 부모의 소득이 낮고, 가정이 불안하고, 가정의 교육기능이 약하고,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질병에 쉽게 노출되거나 장애를 안고 있고, 안정적인 사회 연결망이 부족하고, 정서가 불안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어디에서 희망의 끈을 찾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교육 소외를 극복하는 데 개인의 노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빈곤층 밀집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의 참담한 고백은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져 준다. 더 늦기 전에 빈곤층 자녀에게 부족한 기초학습 능력을 보충해주고 정서적 안정감을 높여주며 안정적인 학습여건을 마련해 주는 등의 교육복지 서비스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가난의 대물림 현상은 영원히 풀지 못할 국가적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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