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3김윤섭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기관으로는 동사무소(67.1%)를 가장 많이 꼽았다. 또한 빈곤가정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경제적인 어려움, 자녀양육, 보건의료, 고용 문제, 주택 문제, 노인 문제, 의욕상실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주거형태는 41%가 월세, 25.2%가 전세집으로 차상위계층의 열악한 환경이 그대로 입증되었다. 평균 전세보증금은 1758만원이고 하위 70%가 전세보증금 2000만원 이하였다. 평균 주거 공간 11평, 방수 2.03개로 주거공간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청소년들에 영향을 끼쳐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별도의 공부방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림의 떡'이었다. 취학자녀를 둔 119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인 52.9%가 취학 자녀에게 독립적인 방을 주지 못한 채 다른 식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차상위계층의 일자리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사대상 가구주의 절반에 가까운 48.1%(101가구)가 직업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일자리를 구하는 데 걸림돌로 건강(33%), 나이(32.7%), 학력(12.7%) 등을 꼽았다.
특히 이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 정부나 자치단체 등 공식 조직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경우가 75.8%를 차지했고, 38.7%는 일자리를 구하는 데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고용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가구주들도 48%가 정리해고를 당할까봐 걱정하고 있었고, 66.9%는 자신이 1년 이내에 해고되거나 직장에서 떠나야 될 것이라고 응답해 일자리 불안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차상위계층은 공공의료와 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에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비 마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49.5%가 '전혀 없다'고 응답했고, 가구주 혹은 주 소득원이 질병으로 근로능력을 상실할 경우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응답이 85.8%에 달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공적지원 부족으로 자녀 양육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응답자의 62.9%가 최근 한 달 동안 자녀가 학원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대답했고, 고등학교 이하 자녀를 둔 133가구 중 51.9%는 자녀의 대학진학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4. 정책 대안은 없는가
빈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자원 즉, 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한 봉사와 희생 정신만 갖고서는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자원이 필요하다. 예산을 틀어쥔 정부는 가장 막강한 자원공급자이기 때문에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역할과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정부 총 예산 117조 중 사회복지 관련 예산은 10%선이고, 이중 3조6000억원 정도가 국민기초생활보장에 사용된다. 선진국에 비해 사회복지 예산의 비중이 크게 낮고, 예산의 대부분은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 및 의료급여 즉, 직접적인 현금지원 형태로 이루어진다.
'보호된 시장'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차상위계층에 일자리를 직접 제공하고, 민간기업 등에도 이 같은 분위기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빈곤계층을 위한 일자리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공공근로사업과 자활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공근로사업은 시간 때우기 식으로 진행되는 데다 일시적인 일자리에 그쳤고, 자활사업도 수혜대상에서 차상위계층이 사실상 제외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기보다는 기금 형태로 적립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우선적으로 '보호된 시장'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예를 들면 시청의 청소업무, 우편물 봉투 업무 등을 빈곤계층에 할애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 예산이 빈약해 복지 정책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방정부는 분권을 외치면서도 사회복지 관련 예산확보 및 실행 프로젝트가 부족한 실정이다. 차상위계층 문제에서 조기경보체제의 도입과 지역 네트워크 구축 등은 지방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다.
전문 상담센터 및 복지서비스기관 등 민간기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통해 차상위계층이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지역복지협의체' 등의 차상위계층을 위한 네트워크 구성을 주도하는 것도 지방정부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기업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빈곤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빈곤계층의 바람이다. 이미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에 이르렀고, 기업이나 개인 등 사회의 다른 계층이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기업도 사회 복지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경우 이미지 개선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궁극적으로 이윤확대를 꾀할 수 있다.
차상위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참여도 중요하다. 정부나 기업의 역할과 지원만으로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의 기부와 자원봉사 참여수준은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다.
2003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에 내는 기부금은 평균 10만8000원 정도. 1년 동안 단 한 번도 기부하지 않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기부문화가 척박한 현실이다. 그나마 한 해 기부금의 70~80%는 연말 불우이웃돕기에 집중되고 있다.
선진국의 민간복지기관은 오래 전부터 빈곤 예방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 네트워크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차상위계층이 안정된 직업을 갖고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이웃과 함께 인간관계를 쌓아갈 수 있도록 민간 복지기관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민간 복지기관의 역할을 '수용시설' 또는 '생활시설' 개념으로만 파악해 왔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고아원, 양로원, 요양원 등 민간 복지기관이 단순히 숙식을 해결해 주는 역할만 담당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야 수용이나 생활개념을 벗어나 '이용시설'로 개념이 확대됐지만, 여전히 극빈곤층을 위한 시설 중심의 운영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 구축'도 시급하다. 각종 사회복지협의회와 공동모금회 등 민간자원을 끌어들일 수 있는 사회복지의 핵심적인 기구가 '유기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민간 복지기관의 경우 노인시설, 아동시설, 장애아시설 등으로 그 역할이 서로 분리돼 있어서 차상위계층에 대한 체계적인 서비스 제공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유기적 연결고리를 만들고 시민 스스로 민간 복지기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차상위계층에게 더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은 개별적이고 일회성이 아닌,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지역사회의 역할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지역사회는 해당 지역의 빈곤 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 기관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효과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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