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실질적 창업 군주, 그 냉정과 열정 사이

[역사 다시보기(1)]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

등록 2005.11.25 19:26수정 2005.11.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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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왕권중심의 정치로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돌파해온 태종의 치세를 어떻게 재평가할 것인가?
강력한 왕권중심의 정치로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돌파해온 태종의 치세를 어떻게 재평가할 것인가?해냄
공식적인 역사상 조선왕조의 개국 군주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태조 이성계이지만, 막후의 실세로서 왕조 개창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500년 역사의 터전을 완성한 실질적인 창업군주는 태종 이방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태종에 대한 이미지는 호의적인 편이 아니다.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몰아내는 골육상쟁을 비극을 통해 집권한 냉혈한이라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대중에게 가장 강하게 보편화되어있는 태종의 이미지는, 97년작 드라마 <용의 눈물>을 통해 형성된 면이 크다. 고려 말에서 조선 집권 초기의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태종은 권력쟁탈전의 한가운데 있는 냉철한 야심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에 대하여 호의적인 의견이라고 해봐야 기껏 후세의 명군으로 기억되는 아들 세종의 치세 덕분에 선왕 태종이 악역을 맡았다는 정도였다.


사실 그의 일생은 언제나 정적들과의 경쟁에 둘러싸인 '피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려말기 대표적인 무신 강경파로서, 포은 정몽주같은 고려의 충신들을 제거하는 궂은일에 앞장서며 조선 개국을 주도한 경력이나,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이복형제들과 개국 공신 정도전 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집권하는 과정, 또 말기에 왕권 강화를 빌미로 충신들을 잇달아 토사구팽하는 등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함이 태종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료로서 남아있다.

그러나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저자 이한우/해냄출판사)는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두른 전제군주의 이미지로 알려진 태종에 대한 복권을 조심스럽게 시도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태종을 조선왕조의 역대 군주 가운데서도 가장 정치적 인간(호모폴리티쿠스)의 전형에 가까운 인물로 규정한다. 조선 초기를 피의 역사로 물들였던 정도전과의 대립은, 신권주의를 지향했던 정도전 세력과 왕권주의를 지향했던 이방원, 공존 불가능한 양대 집단간의 피할수 없는 정치적 충돌이었고, 패배는 곧 몰락을 의미하는 혹독한 생존투쟁 속에서 태종이 승리자였을 뿐임을 드러낸다.

흔히 1류 권력자는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2류 권력자는 권력 그 자체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데 급급하다는 말이 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의 사료를 통하여 그가 단순히 권력욕심에 눈이 먼 야심가가 아니라,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개국 초기의 어려움을 헤쳐 나온 탁월한 추진력의 소유자로 평가한다. 저자는 집권 과정의 정통성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집권 이후 정책 위주의 평가를 통하여 태종 시대를 조명한다.

태종은 비록 개국 세력의 중심이었던 정도전 일파를 정치적인 대립으로 제거하기는 했으나, 태종 스스로가 조선 왕조의 사상적 바탕이었던 성리학적 이념에 충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가 안정된 이후 상당부분 정도전의 개혁 노선을 이어받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오만하고 잔인한 독재 군주의 모습과 달리, 태종은 인재를 구하는데 있어서 때에 따라서는 '몸을 굽혀 선비들에게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기록이나, 백성들의 곤궁한 어려움을 살펴 수도 천도를 연기하고, 신문고 설치를 통해 억울한 백성을 구제하며, 노비 개혁으로 양민의 수를 늘리는 민심 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사회통합을 추구한 내용은 대범한 정치가로서 태종의 또 다른 모습을 살펴보게 한다.


외교에서도 철저한 실리주의 노선을 통하여 떠오르는 신흥 강국 명나라와의 대립을 줄이고 일본 정벌을 주도하는 등, 국익을 우선하여 냉철하게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주도해나갔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이처럼 단순히 정치사적인 관점으로만 조명되던 것과 달리 태종은 후임 세종 시대의 사회적 안정과 성취는 모두 태종이 이루어놓은 안정된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태종의 정치적 업적을 예찬하는 저자의 시선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통제로 상징되는 권위적 지도자상에 대한 동경으로 비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정치적 업적으로 인하여 과연 조선 개국초기의 암울하고 추악한 권력투쟁의 과정이나, 반윤리성이 모두 미화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인류 역사에 있어서 정권의 탄생은 모두 승자와 패자, 반역과 살육의 역사였다는 현실도 부정하긴 어렵다.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시대의 악역을 맡은 인물로 기억되는 태종 이방원, 그의 역할을 청나라 전성시대의 가교 역할을 했던 독재군주 옹정제(1678.12.13 ~ 1735.10.8/ 강희제의 아들이자 건륭제의 아버지)와 비교한다면 무리일까? 결국 역사를 해석하는 마지막 답안은 독자들의 몫이다.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이한우 지음,
해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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