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제대로 보기'의 첫 시작을 열다

한국방송의 '에이치디 역사스페셜'을 해저한 책 나왔다

등록 2005.11.26 09:13수정 2005.11.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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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 책 표지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 책 표지 ⓒ 효형출판

우리의 역사는 그동안 '식민사관'이란 말에 자유롭지 못했다. 식민사관(植民史觀)이란 "일제가 한국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역사관"을 말한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한국사 연구는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공왕후의 신라정복설과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한국역사를 만주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만선사(滿鮮史) 이론, 당시의 한국 경제를 일본 고대의 촌락경제수준으로 보는 이론 등을 내세웠는데, 이러한 논리는 20세기 초 조선침략이 본격화되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정체성론, 타율성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의 토대가 되었다."

문제는 일제에 의해 시작된 식민사관이 해방 이후에도 우리 사학계를 지배했다는 데 있었다. 친일 사학자들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교과서까지 점령해버린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의 나라 세움 설화도 모두 단순한 설화로 치부해버리고, 단군조선 등 상고사의 대부분을 지워버리는 데까지 와버렸던 것.


그런데 이와 관련 기쁜 소식이 들린다. 식민사관을 획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과 그 방송을 글로 풀어낸 책이 나온다고 한다. 바로 한국방송(KBS)의 '에이치디(HD) 역사스페셜'과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란 제목의 책(표정훈 해저, 효형출판)이 그것.

나는 예전에 이 에이치디 역사스페셜 이전 프로그램인 '역사스페셜'을 자주 보았고, 그 몇 편을 <오마이뉴스>에 소개하기도 했었다. 프로그램 시청률은 낮은 편이었지만 훌륭한 프로그램이란 칭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 '역사스페셜'이 에이치디 역사스페셜로 거듭난 것이다.

a (왼쪽)영상으로 복원해본 로마와 고구려의 기병, (오른쪽)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창과 칼을 든 로마와 고구려의 보병

(왼쪽)영상으로 복원해본 로마와 고구려의 기병, (오른쪽)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창과 칼을 든 로마와 고구려의 보병 ⓒ 한국방송

광복 60년 특별 프로젝트로 방영중인 65부작 역사 다큐멘터리인 이 '에이치디 역사스페셜'을 바탕으로 펴낸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란 책에 대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우리 역사 제대로 보기'의 첫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의 핵심은 선사시대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차례대로 조명하며 나라의 정체성을 찾자는 것에 있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할 것 중의 하나는 고구려는 세계 최강의 정예부대를 가졌다는 것이다. 책은 고구려군과 당시 서양의 대제국 로마의 군대를 비교하고 있다.

보병 무기만으로는 양쪽이 비슷하지만 갑옷을 보면 고구려의 분명한 우위를 얘기할 수 있다고 한다. 로마의 병사들은 대부분 판갑을 입었는데 판갑은 무거운데다가 병사가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들이 실제 전투에 임하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고구려의 갑옷은 철 조각들을 촘촘히 이어 만든 철갑으로 유연성이 높아 훨씬 유리하다고 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구려 기병은 말에도 갑옷을 입혔으며, 긴 창과 칼과 함께 징이 박힌 신발도 신었다고 한다. 또 로마 군대엔 없는 병사가 말을 탈 때 두 발을 고정하는 '등자(橙子)'라는 장치가 있었는데 이는 기병이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음은 물론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칼을 휘두를 때도 자세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a (왼쪽 위)우물 표지석이 있던 장소에서 4~5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새로운 우물터, (왼쪽아래)우물 보호용 도랑 흔적, (오른쪽위)나정 유적지 내의 우물 터 분포도, (오른쪽아래)새로 확인된 우물터의 전체적인 구조

(왼쪽 위)우물 표지석이 있던 장소에서 4~5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새로운 우물터, (왼쪽아래)우물 보호용 도랑 흔적, (오른쪽위)나정 유적지 내의 우물 터 분포도, (오른쪽아래)새로 확인된 우물터의 전체적인 구조 ⓒ 한국방송

고구려는 육군만이 아니라 수군도 서해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광개토대왕은 한강유역은 물론 동쪽으로는 동부여, 북쪽으로는 숙신을 굴복시켰으며, 서북쪽으로는 몽골에가지 이를 만큼 광대한 땅을 차지했다고 하니 과연 '광개토(廣開土)'라는 이름에 걸맞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또 있다. 그동안 신빙성이 없다고 여겨 무시해왔던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이 책은 요구한다. 7장의 '잃어버린 백제의 왕성, 풍납토성', 8장 '신라 건국의 수수께끼, 나정은 알고 있다'를 통해 신라의 나라 세움 실화가 사실임을 증명하고, 백제가 일찍부터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왕권을 확립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첫 나라 고조선의 수도가 어디인가를 찾아보고, 한반도에서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 책의 장점은 이렇게 나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에만 있지 않다. 상세한 보충설명, 다양한 사진자료, 지도, 복원도 등 오랜 옛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친절함이 돋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동시대 서양과의 비교도 곁들임은 물론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바위그림의 분석과 각종 실험 따위도 성실히 덧붙이고 있어 역사서의 바람직하고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하겠다.

a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화도 고인돌, 북한 은율군 관산리 고인돌, 중국 가이저우 스펑 산 고인돌, 중국 하이청 고인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화도 고인돌, 북한 은율군 관산리 고인돌, 중국 가이저우 스펑 산 고인돌, 중국 하이청 고인돌 ⓒ 한국방송

다만, 이 책도 역시 옥에 티가 있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간다라 불상' 등 이 책의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보충설명이 간간이 있다는 점과 자료를 많이 보여주겠다는 지나친 친절함 때문에 작은 사진들을 틈이 없이 붙여놓아 이해가 어렵게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종종 어려운 낱말을 설명없이 쓰거나 주석을 같은 쪽이 아닌 다음 쪽에 쓴 점 등도 문제점이라 하겠다.

또 충분히 문장 속에 소화시켜도 될 내용을 별도의 주석으로 처리하고, 별도의 보충 설명이 지나치게 많아 글의 흐름을 끊어버리곤 하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 국민에게 감히 추천하고픈 책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잃어버렸던 우리의 역사,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란 점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는 감정이 아닌 분명한 역사적 논리로 대응해야 하겠기에 정체성을 확고히 해줄 이 책은 정말 소중하다 할 것이다.

역사를 쉽게, 솔직담백하게 알려낼 것
[인터뷰] 한국방송 우종택 피디

▲ 반구대 바위그림과 실제 고래 사진(위부터 긴수염고래, 흰긴수염고래, 범고래, 향유고래, 새끼를 등에 업은 어미고래
ⓒ한국방송
- 새롭게 에이치디 역사스페셜을 기획한 뜻과 프로그램의 중심은?
"역사스페셜이 아쉽게 끝난 지 1년이 되었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 맞게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18억 원을 투자하여 가상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예전 역사스페셜은 주제별로 이야기를 진행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은 통사(전 시대나 지역에 걸쳐 개괄적으로 서술한 역사)로 만들려는 생각인데 구석기 시대를 시작으로 1945년까지 65편이 방송될 것이다."

- 기존 역사스페셜이 훌륭한 프로그램이었음에도 어렵다는 점 때문에 시청률이 낮았는데 이에 대한 방안은?
"시청자들이 역사 프로그램을 쉽게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도 일반 시청자가 쉽게 접근할 방법이 없을까 계속 고민했다. 진행자를 고두심씨로 한 것도 좀 더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 수 있도록 하려는 뜻이었다."

- 프로그램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나갈 것인가?
"통사는 조그만 사실도 알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대별로 주제를 가지고 당시의 문화적 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 또 솔직담백한 자세로 어두웠던 과거까지도 보여줄 것이며, 지난번 을사늑약 10년처럼 어떤 시점에 맞게 내용특집을 다루어 놓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우 피디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훈민정음’처럼 문화적으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달라는 요청에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는 다짐을 해주었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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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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