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이야기>작은박물관
최근 감사원과 문화재청이 현재 숭례문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보 1호를 다른 문화 유산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국보 1호 변경에 대한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문제는 이미 지난 1996년 일제 지정 문화재를 재평가하면서 전문가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한바탕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었던 일로 지금의 주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국보 1호의 재지정에 찬성했던 이유로는 '숭례문이 국보 1호로서 갖는 상징성이 약하다' '숭례문보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훈민정음'과 같은 문화재로 바꿔야 한다' '관리의 편의성을 기준으로 일제가 지정했던 만큼 일제의 잔재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재지정 반대의 의견으로는 '단순한 지정 순서일 뿐, 가치 순서가 아니다' '재지정에 따른 혼란을 초래한다' '숭례문도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등의 의견이 제시되었었다.
전문가들과 여론 조사 결과, 재지정 반대의 의견이 6:4 정도로 높아 현 상태 유지로 일단락되었고, 이제 다시 재지정 논란이 일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국보 1호라는 상징적 의미를 논하기 이전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같이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잠깐 눈을 돌려, 얼마 전 퇴계 이황을 배출했던 진성 이씨 가문의 대종손인 이세준씨가 종가에 대대로 내려온 고문서와 전적류, 유품 등 2500여 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여, 이중에서 110여 점의 유물을 골라 내년 2월 12일까지 '옛 종가를 찾아서'란 주제로 전시된다.
하지만 서울에서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사대부 종가의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는 즐거움 보다는 수 백 년간 어렵게 간직해 온 소중한 조상들의 유품을 고스란히 기증했다는 의아함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어이가 없다. 들끓는 문화재 절도범들 때문에 살해의 위협까지 받으면서 더 이상 조상의 유물들을 지킬 수가 없어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더 이상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식한 절도범에게만 국한할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소위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 방송국에서는 드라마 촬영을 한답시고 덕수궁 돌담에 붙인 종이들을 떼어 내는 과정에서 접착제가 잘 안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끌 등을 이용해서 무참하게 긁어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만을 비난하기 이전에 국민들 모두가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사소한(?) 행동, 길거리에서 침을 뱉고 무심코 담배꽁초나 휴지 등을 버리는 행위 또한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우리땅 우리 문화를 훼손하는 일이 아닐까?
따라서 우리 모두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의 가치와 존재를 새삼스레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간된 <국보 이야기>를 추천해 본다.
10년간 문화재 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이광표 기자가 자신의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국보 1호 숭례문부터 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좌상까지 정리한 이 책은 '국보'라는 상징성 보다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접근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기존의 도록이나 백과사전류에서도 접할 수 있었지만 딱딱하고 어려운 문체로 쓰여 접근이 쉽지 않았던 국보 문화재에 대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국보에 얽힌 사연이나 궁금했던 점들과 함께 흥미로운 이야기 식 구성으로 기록했다.
'숭례문은 국보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일까?' '국보는 어떻게 지정될까? 개인소장품도 국보로 지정될 수 있을까?' '가짜 국보였던 거북선별황자총통의 전말은 무엇일까?' 등 누구나 궁금했지만 쉽게 그 해답을 얻기 힘들었던 부분들이 이 책을 통해 말끔히 해소된다.
그리고 문화재 전문기자다운 세련된 안목을 통해 비슷한 국보 문화재를 비교 설명하면서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을 뿐 아니라 500여장이 넘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흥미를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문화재 훼손 문제 및 도난과 약탈, 심지어 가짜 국보 등장 등 국보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처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전문기자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숭례문 국보 1호 논쟁과 일제의 석굴암 팔부중상 부가(附加) 문제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일부의 비평은 무시하기로 하자. 국보를 비롯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일부 전문가들의 것이 아닌, 우리 국민들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국보 문화재를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작은박물관 / 1만 5천원)
[인문] 대담 – 도정일, 최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