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가르칠 수 있는 눈

[이 사람이 살아가는 법] 시각장애인 교사 송광우씨

등록 2005.12.02 16:28수정 2005.12.0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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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송광우씨

송광우씨 ⓒ 인권위 김윤섭

전화를 받는 송광우(34)씨의 목소리는 왠지 내키지 않는다는 투였다. "요즘 학예회 준비 때문에 아주 바쁜데…."


5년 전 아주 드문 유전자 이상의 결과로 시력을 잃기 시작한 송광우씨는,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비장애인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는 이유로 몇 차례 언론매체들을 통해 소개된 바 있었다.

분명히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선생님의 일상 하나하나가 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는 만큼, 꼭 만나야 되겠다고 떼를 썼다. 잠자코 듣고 있던 그는 적이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학교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실제 이유를 밝힌다. 조건반사적으로 '왜요?'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고, 그러면 아이들을 데리고 학예회 준비상황을 참관하러 온 학부형 노릇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남산초등학교 전교생이 45명이에요. 모든 선생님이 모든 학부형을 알고 있죠."

그렇다면 시골학교를 견학하러 온 도시 학부형이 되겠다고 했다.

험하고 고단한 당진 가는 길


약속은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졌다. 살고 있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충남 당진까지, 열두 살, 열한 살, 두 딸을 동반한 1박 2일 인터뷰 여행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현장에서 지켜보고, 또 자신들이 취미삼아 집에서만 발행하고 있는 '지상신문', '크로바 신문' 기사거리를 나름 취재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엄마를 따라 나선 두 딸은 막상 인터뷰 자체보다 당진까지의 여정에서 더 많은 기사거리를 얻었다.

진주에서 당진까지 바로 가는 기차편이 없어 대전까지 차표를 끊고 황급히 올라탄 무궁화호는 그러나 천하태평의 굽이굽이 완행이었다. 정말이지 버스보다 기차가 요금은 더 비싸고 시간은 곱절로 걸린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승용차나 버스로 진주에서 두 시간 거리인 대전은 기차편으로는 네 시간 반 거리였고, 인터뷰 약속 시간인 오후 6시까지 당진에 도착할 가능성은 제로였다.


에라, 이렇게 된 김에 딸들하고 무전여행이나 한번 해보자, 동대구에서 내려 화물터미널을 찾았다. 이런, 시간이 늦어서 상행편의 트럭이 없단다. 설상가상, 큰딸은 설사병에 걸려 다 죽어간다. 기차 안에서도 벌써 몇 번을 토하고 설사를 했는지 모르는 아이를 바람 부는 추운 길거리에 주저앉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만나기로 한 사진작가 김윤섭씨에게 전화를 걸어 중간에 길 잃은 세 모녀를 태우러 와 달라고 '배 째라' 식의 부탁을 했다. 다행히도 김윤섭씨는 대전역까지 긴 우회로를 달려와 주었고, 이렇게 해서 구성된 네 명의 송광우씨 취재진이 당진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넘은 시각.

사위는 깜깜한데 송광우씨가 일러준 대로 좁은 길 달려가도 학교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길을 두 차례 왕복한 끝에, 결국 송광우씨가 길가에 나와서 헤매는 우리를 구원해 주어야 했다. 그렇게 첫 대면한 그는 너무도 '시각장애인' 같지 않아서, 일행을 당황하게 했다.

"안 그래도 남보기 너무 멀쩡해서 문제라니까요."

쓸데없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한번은 기차를 타고 가는데, 좌석번호가 보이지 않아 어느 여성에게 좌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가 '작업 거는 추근남'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단다.

a 송광우씨와 아이들

송광우씨와 아이들 ⓒ 인권위 김윤섭

11시 30분이 가까워오는 그 시각까지, 선생님은 학교에서 같은 주 토요일 예정된 학예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 키만한 국화 화분이 줄지어 도열한 복도를 지나, 그가 가르치는 4학년 1반 교실로 들어서자, 또 하나의 별천지가 열렸다. 각종 공작물들 틈으로 수북한 우유곽들이 보이고, 그 복판에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는 미완성 우유곽 건축물이 있었다.

"우유곽으로 첨성대를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이 일 때문에, 자정이 가깝도록 교실을 지켰던 것이다. 눈이 보이는 사람도 엄두를 못 낼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생각을 읽었는지,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 보여요"라고 말한다. 남산초등학교 급식 우유의 개수만으로는 모자라, 인근의 보다 큰 규모 초등학교에 부탁해 우유곽을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우유곽으로 만드는 첨성대

혹시 학교에 사택이 있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여기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교직원 임대아파트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일행은 캄캄한 시골길을, 앞 못 보는 송광우씨의 정확한 내비게이션 안내에 의지해, 어딘지 방향 모를 곳에 있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 20분간의 드라이브 동안, 그는 마치 당진지역 초등학교 교육현장을 시찰하러 나온 장학사 일행에게 브리핑을 하듯, 일목요연하게 이곳 현황을 알려주었다.

많은 시골학교들이 그렇듯이 남산초등학교도 통폐합에 따른 폐교조처의 1차 대상이라는 것, 폐교에 대한 학부형 대상 설문조사 결과 70% 정도가 '모르겠다'이고 나머지는 찬성으로 나왔다는 것, 가난한 촌사람들일 거라는 도시인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시골학급 학부형의 80% 정도는 시설작물이나 특용작물을 생산하는 부농이라는 것,

하지만 한부모 또는 조손 가정의 학생도 15% 안팎은 된다는 것을 이 때에 알았다. 부모의 이혼이나 직장일 때문에 할머니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가장 많고, 개중에는 이모나 고모가 맡아 키우는 아이들도 있다.

자정이 넘어 우르르 들어선 17평짜리 아파트에서는 그가 시력을 잃은 뒤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 이광옥씨와, 손님들을 위해 시켜놓은 퓨전 탕수육이 함께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바로 곯아떨어지고 송광우씨와 이광옥씨, 사진작가와 내가 탕수육을 안주로 한 간단한 맥주상 앞에 마주 앉았다.

"왜 인터뷰를 안 하려고 하셨어요?"

일전에 한 방송사에서 연락이 와서 먼저 교장선생님 허락을 받으라고 했더니,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장애를 가진 교사가 언론의 조명을 지나치게 받는 게 학교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유에 대해서는 송씨 본인도 모르겠다며 입을 다문다.

시력을 잃고 난 뒤 휴직, 그리고 기나긴 투쟁 끝에 일반학교로의 복직에 성공한 이야기를 들을 차례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투쟁 과정에 대해 다시 말하기도 진저리쳐지는 눈치였다.

"끊임없이 싸워야 돼요. 지금도 싸우고 있고요."

시력을 잃고 1년 휴직했던 그는, 그러나 그냥 쉬지 않았다. 점자를 배우는 동시에 대구대 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때로 마지막 방법까지 떠올리는 절망 속에서, 스승 임안수 교수는 그에게 일반학교 교사로 복직하라고 그 자신, 상상하지 못한 갈 길을 제시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나은 법!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도리질치는 교육관료들 앞에서, 수없이 좌절을 맛보면서, 장애인 인권단체와 용감무쌍한 선배 교사들의 도움에 힘입어 복직을 하는 과정에서는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바로 결혼! 이광옥씨는 송광우씨의 복직을 제일 앞장서 도운 선배 여교사의 동생이었다. 복직투쟁을 하면서 선배의 집을 자주 드나든 송광우씨는 이광옥씨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투병할 때 지극정성으로 이광옥씨를 돌보았고, 둘째언니의 사업실패로 본의 아니게 신용불량자가 됐던 이광옥씨 치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류상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서 이들의 부부관계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인연인 것 같아요."

자신들의 이름도 비슷할 뿐 아니라, 장모와 시어머니의 이름도 똑같은 '금순'씨다.

초등학교 교사는 5년마다 전근을 가야 한다. 송씨에게 그 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교무주임까지 겸하는 그의 성실성은 그에게 높은 고과점수를 안겨 주었다. 따라서 그는 벽지 학교 한 곳을 제외한 도내 어느 초등학교든 자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합리적이지 않다. '갈 데는 많아도 오라는 곳은 없는' 상황에, 지금 그는 처해 있다. 교육행정 상층부의 어느 누구도, 장애인 교사 한 명을 위해 가외의 신경을 쓰기를 원치 않는다. 그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그가 지금 교실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문자 확대기도 사비를 들여 구해야 했다.

a 작업하는 송광우씨

작업하는 송광우씨 ⓒ 인권위 김윤섭


장애인이라서 외로운, 오로지 외로운…

이제 잘 시간이다. 방 두 칸짜리 아파트의 한 칸을 세 모녀가 차지하고 나자, 사진작가는 싱크대 앞 빈 공간에 드러눕는다. 침실이 따로 있고, 잠자리가 따로 있나. 여관에 가겠다는 사진기자를 일찍이 인터뷰어의 어린 두 딸이 붙잡았더랬다.

"왜 쓸데없는 돈을 써요?"

그러잖아도 세 모녀를 구조하느라 긴 운전에 지친 김윤섭씨는 틀림없이, 연인들의 체취가 눅눅하게 묻어 있을 모텔에서보다, 21개월짜리 딸 혜빈이를 중심으로 한 송광우씨 세 가족의 바지런한 발냄새가 스며 있을 싱크대 앞에서 훨씬 더 달콤한 잠이 들었을 것이다.

밤은 짧았고, 잠은 죽음처럼 평온했고, 아침은 싱그러웠다. 눈 비비고 일어나자 아침이 돼서야 심야의 침입자들을 발견한 혜빈이가 '니들은 누구냐?'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세상사 모든 것이 그저 장난감일 뿐인 혜빈이에게 기꺼이 장난감이 되어주면서, 어른들과 좀더 작은 어른들은 새 아침의 보람을 맛보았다.

그리고 출발이다! 이광옥씨가 차린 밥상 위의 콩나물국과 따뜻한 밥, 기름기와 군더더기 없는 반찬들로 포식한 일행은 사진작가의 아담한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내비게이션이 조금 이상하다. 남산초등학교 쪽이 아니라, 당진 어느 모퉁이의 아파트다. 이곳에서 선생님은 일곱 살 계집아이 하나를 태운다.

"다른 학교에서 시간제 교사로 일하는 아이 엄마의 부탁으로 날마다 아이를 태우고 남산초등학교에 갑니다."

평소 선생님의 출퇴근을 책임지는 아내의 손발이 얼마나 분주했으랴.

a 밝게 웃는 아이들

밝게 웃는 아이들 ⓒ 인권위 김윤섭

운동장에서는 벌써 공을 차는 아이들의 발길질이 씩씩한 먼지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4학년 1반 열 명의 학생들이 속속 제 자리에 들어와 앉는다. 쌍둥이 형제도 있고, 이름이 같은 여학생들도 있고, 사촌간도 있다.

"저 여자 누구지?"

듣든 말든 개의치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저 여자'라고 부른다. 바로 그거야. 난 너희들에게 저 여자일 뿐, 하나도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이 공간 안에서는 너희들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너희들을 가르치는 송광우 선생님이 중요하지.

빨강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조수진 어린이에게 물었다.

"너네 선생님 어때?"
"좋아요", "잘 가르쳐 주세요", 속사포 같은 대답이 튀어 나온다.
"뭐가 좋은데?"

가르치는 데 선생님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단다. 어떤 비법?

"예를 들어 나눗셈을 가르칠 때…… 에이, 안 가르쳐줘요. 못 가르쳐줘요."

그렇담 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송광우씨에겐 아이들에게 쉬운 것을 쉽게 가르치는 비법이 있다는 사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눈

교무실로 갔다. 중후한 학자풍의 조남종 교감이 명함도 없는 불청의 방문객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신다. 선생님 자신, 특수학교 교사자격증이 있는, 특수학교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교사이다. 조남종 선생은 언론을 믿지 않으셨다. 국가인권위에서 발행하는 월간지라고 해도, 여전히 그러셨다. 이해가 갔다. 송광우씨를 감싸안아 주느라고, 얼마나 상부에서 시달렸겠는가. 자고로 언론이란, 무책임하기 짝이 없어서 자기들 필요할 때 써먹다가 아님 말고, 하는 식이라서 그 뒷감당 다 해야 하니 말이다.

조남종 선생께 굳이 송광우 후배교사에 대한 평을 부탁드렸더니 "듬직하죠" 간단한 답을 돌려주신다. 앞을 못 봐도 남에게 듬직하기란 어디 쉬운가.

다시 교실로 갔다. 선생님은 교육청이 시키는 대로 아이들 저금액수 챙기고, 토요일 학예회에 참관하실 부모님 숫자를 점검하고 학예회 때 발표할 리코더 합주를 주문하셨다. 열 명의 아이들이 어디선가 나타난 '저 여자'와 사진작가 아저씨에게 본때 있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합심하여 하나의 멜로디를 향해 호흡을 모아간다.

여자는 이제 더 무슨 취재가 필요할 것이냐는 생각과 함께, 국화 화분이 주랑처럼 늘어선 복도로 빠져나와 너른 운동장으로 내려선다. 문득 송광우 선생의 우유곽 첨성대 속에 들어가 하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서면, 별들 전체가 보일 것만 같았다. 눈을 감아도. 지금 송광우 선생이 안 보이는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듯이, 말이다.

a 연주하는 송광우씨와 아이들

연주하는 송광우씨와 아이들 ⓒ 인권위 김윤섭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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