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밤 방송된 MBC < PD수첩 >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 화면. 이 프로그램 취재진은 황 교수팀에 난자를 제공하는 미즈메디 병원에서 황 교수팀 연구원이 난자 적출 수술을 받은 사실이 명시된 병원 진료기록이 제시됐다. 이 방송 이후 < PD수첩 >은 엄청난 역풍에 시달리고 있다.MBC 화면촬영
'광기(狂氣)'의 광야에서 외로이 선 MBC < PD수첩 >. '한국의 희망코드'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를 '쏘았다'는 이유로 광고가 다 떨어져 나가버렸다. 74년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압력으로 광고주가 동아일보에 광고를 끊은 이후 이렇게 노골적으로 광고주들이 광고를 끊은 것은 이번 'PD수첩 사태'가 처음이다.
국익과 진실의 논쟁. 진정 국익이 무엇이고 그 국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놓고 진정한 토론을 벌여볼 생각은 않고 일부 보수언론의 부추김과 일부 네티즌들의 조직적인 'PD수첩 죽이기'는 더이상 한국 사회를 이성의 사회가 아닌 광기의 사회로 변질시키고 있다. 냉정하게 문제를 살펴볼 여유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누가 이를 부추기는가이다. 일부 포털사이트가 의도적으로 PD저널리즘의 양심을 짓밟았으며, 일부 보수언론은 '지상파 혐오감'으로 일부 네티즌을 선동함으로써 '비이성적 분기탱천'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주요 과학잡지가 이미 1년 전 문제를 제기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프레시안> 등이 황 교수의 거짓말을 집요하게 추적해왔다.
그런 분위기에서 < PD수첩 >은 당연히 '진실찾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공영방송의 책무라 여겼음직하다. X파일을 일찍이 추적해서 구체적인 증거물을 입수, 보강취재까지 마치고도 보도하기를 포기했던 MBC 기자사회가 아닌, PD사회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감동적'이기까지하다.
지금 같은 정도는 아니겠지만, '한국의 희망코드' 황우석 교수를 비판했을 때 올 엄청난 압력을 충분히 각오하고 방송했을 터. IMF 외환 위기 이후 한국민들은 박찬호, 박세리 선수의 활약상을 통해 힘을 얻었다. 그리고 두 선수에 이어 지난 99년 황 교수가 복제소 영롱이를 들고 나왔을 때 그 감격이란. 그 희망에 대한 간절함이란.
그후 한국 언론은 두 선수의 성적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 하도록 국민들을 끌고갔고, 일상에서 희망을 잃은 한국민들은 언론이 끌고가는대로 무력하게 끌려다녔다. 하지만 성적이 부진하면 어김없이 한국 언론은 두 선수를 질타했고, 어떨 때는 채찍과 자극이 되어 더 좋은 성적을 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한데 황 교수와 관련해서는 그 어떤 비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99년부터 한국 언론은 매주 평균 한 꼭지씩 황 교수 관련보도를 했고, 대부분 칭찬과 찬양 일변도였음을 우리는 안다. 김수환 추기경도 비판받을 때가 있고, 한국의 그 어느 유명인사도 네티즌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절이다. 그럼에도 전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한 몸에 받아온 사람은 황 교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유일한 희망코드' 황우석 교수. 그러나 그는 결코 신이 아니었다. 다만 뛰어난 사람에 불과함을 국민들에게 한국언론은 알려주지 않았다. 적어도 PD수첩은 신 같은 존재로 하나의 미신이 되어가던 황 교수도 사람의 반열에 있음을 확인해준 것뿐이다. 이것은 국익훼손 등 보수언론의 선전선동과는 달리 중장기적으로 '국익보강' 차원에 충실하게 기여하고 있음이 지금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황 교수 주변과 보수언론은 '국익 대 진실'의 전선을 확대재생산함으로써 '변명과 옹호'의 역할분담에 집착하고 있다. 특히 일부 보수언론은 오로지 '국익 대 진실'이라는 충동적인 대립구도 확대재생산에 몰두해, 이제까지 황 교수가 거짓말 해온 '연구윤리 위반행위'를 쉬쉬하며 또다시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진리와 국익이 충돌되는 대립개념이 아님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굳이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 PD수첩 >은 국익에 기여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연구윤리의 글로벌스탠다드를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벌스탠다드를 그렇게 강조해온 보수언론은 노동자, 농민, 이 땅의 약자들을 비난할 때만 선진국형 글로벌스탠다드를 이용할 뿐 이 상황에서는 예외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30년 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말 한마디에 특정신문의 광고를 끊어버렸던 광고주들이 이제는 그 실체도 확인할 수 없는 일부 네티즌들의 '광기'에 비굴하게 굴복한다. 결국 < PD수첩 >에 붙어있던 11개 광고주들은 광고철회를 통해 또한번 한국언론의 '진실찾기' 행렬에서 배신자를 자처한 것이다.
앞으로 MBC와 < PD수첩 >은 이후 황 교수 관련이든, 기존에 편성된 프로그램이든, 정상적으로 방송해야 한다. X파일의 오욕을 PD수첩의 계속된 방송을 통해서 회복해야 한다. 지금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일과 역사를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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