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섯살인가 일곱살 때의 어느 더운 여름날입니다. 어머니께서 한강을 "왕복"하시다가, 지나가던 사진사를 불렀습니다.정병태
아버지 정호. 아명 순엽. 1901년생. 평안북도 철산 태생.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하면서 고학으로 와세다대 상과 졸업. 그 후 귀국하여 일제하에서 관리의 길을 걸음. 고위 관료에게서 볼 수 있는 우월감과 자존심이 강했음. 다소 괴팍한 성격이며 유학에 심취했던 전형적인 보수 성향의 지식인. 전 부인과의 사이에 1남2녀를 뒀음. (기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형 일웅은 그곳에서 사고로 죽음. 어머니보다 몇 살 어린 두 누이는 생존.)
어머니 문무생. 아명 해전. 1926년생. 제주도 애월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물질을 했음. 애월 초등학교 1학년 중퇴. 18살에 제주 3성의 하나인 양씨에게 시집가서 재칠, 태수 형제를 뒀음. (작은형 태수는 열아홉쯤엔가 자살. 기자보다 열 살 위인 큰형 재칠은 광부로 독일에 가서 현재는 병원 의료기술자로 근무 중.) 4·3 사태 때 빨갱이로 몰렸던 남편이 제주를 떠나 목포에서 전전하다가 일본으로 밀항한 후에는 홀로 두 아들을 키우다가 아버님을 만남.
1901년생과 1926년생, 와세다대 졸업과 애월 초등학교 1학년 중퇴, 평안북도 철산과 제주도 애월 - 도저히 맺어지려야 맺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이 맺어진 것은,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만, 전쟁이라는 혼란 상황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워낙 나이 차가 나다 보니,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저희 식구를 시아버지-과부며느리-손자로 보기도 했습니다. 씨를 의심하는 큰시누이(저에게는 큰고모님)의 구박도 심했답니다.
당시 육군훈련소에 부식을 조달하는 작은 회사를 했던 아버님은 난리중에 임시 훈련소를 따라 제주도로 갔고, 어머님이 그 사무실의 사환으로 들어간 것이 인연의 실마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중퇴라는 짧은 학력이었지만 상당히 영민했고 성실하셨던지,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엉망이었던 일을 전부 바로잡아 놓았고, 나중에는 일을 도맡다시피했답니다. (당시 어머니는 일본으로 도망간 전 남편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젊은 과부에게, 힘든 것이라면 어려운 살림에 두 아들 키우는 것이고, 한이라면 못 배운 것이었는지,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빌자면 "두 자식 잘 키워주고 공부도 시켜주겠다"는 말만 믿고 서울로 따라왔답니다. 아버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서울로 올라오긴 했는데, 서울에 있다던 "몇 채의 기와집"은 아버지의 소실이었던 기생첩이 이미 날려버린 후였습니다. 그나마 노량진에 남아 있던 "작은 땅쪼가리"가 집이 허름한 바람에 팔리지 않고 남아 있었답니다.
어머니는 공부고 뭐고 다 포기하고, 두 자식마저 제주 이모할머니께 보내놓고, 우선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습니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이모할머니 손에서 크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어머니께 "그때 제주로 가버리지 그랬어요?" 하고 물으니까, 어머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때는 너도 젖을 떼고 빽빽 울고 있었는데, 기왕 일부종사 못한 거, 너까지 애비없는 자식으로 만들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어머니는 서울역 앞에 작은 가게를 얻어 국밥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화폐개혁이 있던 너댓 살 때라고 기억하는데, 전차표가 2원50전, 버스비가 5원이던 시절에, 뚝배기에 담긴 푸짐한 선지해장국 한 그릇에 10원(100환)이었습니다. 새벽 네 시 조금 지나 첫 기차가 도착할 때부터 목포행 완행 막차가 떠날 때까지 장사를 하셨으니, 노량진 집에도 못 들어오고 가게에서 쓰러져 잠깐 눈을 붙이시는 정도였습니다.
제 어렸을 적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나 정을 느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국밥 장사부터 '야미 담배' 마는 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하셨기 때문에 거의 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오죽했으면 세수도 잘 안하고 다니는 저를 담임 선생님께서는 "의붓자식이라 저러는가보다"하고 생각하셨다네요.
(야미 담배 : 당시에는 전매청에서도 담배를 사람 손으로 만들었는데, 담배 만드는 직공들이 몰래 빼내온 재료로 만든 담배를 말합니다. 그것으로 담배를 말아서 팔았는데, 요즘 기계로 만든 담배와 똑같은 것이, 지금 생각해봐도 참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