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다시 위기 국면으로 들어서나

[주장] 외교안보팀의 지나친 낙관과 절대 부족한 정보·외교역량

등록 2005.12.05 11:07수정 2005.12.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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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1단계 6자회담을 고비로 북핵 문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1994년 전쟁 발발 직전의 상태까지 치달았던 최악의 상황이 재발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제4차 6자회담이 끝난 후 북핵 문제가 마치 다 해결되기라도 한 것처럼 발표했다. 하지만 제4차 6자회담 9·19 성명의 본질은 일시적으로 파국을 면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위기 국면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만성적 위기 상황'으로 인한 둔감함과 외교안보팀의 일방적 홍보에 의해 어느덧 심각해진 새로운 위기 국면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심각한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들

이는 북핵 위기의 본질을 전략적으로 심도있게 분석하고 직시하지 못하는 외교안보팀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인식과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의 정보·외교역량 탓이다.

우선 새로운 위기의 발단은 북한의 주요 대외 거래창구 역할을 하고있는 홍콩·마카오에 소재한 델타아시아은행(BDA)에 대한 금융 제재였다. 이 때문에 북한은 아예 제5차 1단계 6차회담에 불참하려 했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6자회담에 참석해 금융제재 문제를 계속 거론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금융 제재는 6자회담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은 회담 후 이 문제만을 다루는 양자대화를 희망했지만, '브리핑' 정도는 가능하지만 '회담' 자체는 있을 수 없다는 미국측의 입장에 따라 북한 대표단의 방미는 취소됐다. 이로써 북핵 6자회담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상황이 됐다.


그런데 '바로 이때다' 싶었던 일본의 강경 우익계 신문 <산케이>는 "북한이 6자회담 참가 거부 의사를 미국에 통고했다"고까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4일자에서 "북한은 북미간 위폐 접촉 무산을 들어 차기 6자회담 재개를 거부한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한국과 북한은 6자회담의 '신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만 미국은 달러 위조에 대한 대응이라며 자국의 '국내법 집행'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양안(兩岸)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강이 흐르고 있다.


경수로 사업의 종료 여부와 청산 비용 문제도 큰 원인이다. 이밖에도 미국이 줄기차게 거론하고 있는 북한 인권, 마약, 무기밀매, 불법자금 세탁 문제가 있다.

미국 측은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를 명분으로 다양한 정책적 수단들을 동시다발 내지는 단계적으로 거론할 것이다. 바로 심각한 위기 국면이 도래하고 있다는 결정적 신호이다.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의 연계성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사실 북핵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과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피상적이고 단기적인 상황 논리에 연연해왔다. 이제부터라도 북한이 핵무기 보유의 전 단계로 핵물질을 확보하려는 진정한 의도에 대한 적확한 분석과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또 우리에게는 북핵문제를 연결 고리로 21세기 동북아 전략을 수립하고있을 미국과 중국에 대한 동향과 정세 파악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울러 북핵문제 해결 과정이나 이후 전개될 한반도 상황이 자국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전략적 분석을 하고 있을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의 입장에 대한 심도있는 정보 수집과 전략적 분석이 병행돼야 한다.

북핵문제가 해결된 후에 대규모의 대북지원을 한다는 식의, 북핵문제를 주변 4강의 동북아시아의 전략과는 분리된 별도의 남북간의 문제로 혹은 민족정서의 문제로 축소해서 바라보는 단순하고도 미시적인 분석은 이미 효용을 다했음이 증명되고 있다.

제4차 6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향후 논의될 핵심 의제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핵문제는 '대량살상무기의 억제'라는 미국의 단기적 목표를 넘어 이제 향후 한반도의 운명과 직결될 주변강국들의 전략적 구상과 연계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의 북핵문제를 다루는 기본 전략이 핵물질의 제3국으로의 유출 방지라는 단순한 정책을 넘어 거시적 차원에서 동북아 전략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고, 그 틀 안에서 북핵과 한반도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근본적 문제의식을 가질 때가 됐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도를 냉전체제의 해체 과정에서 제 살길을 찾으려는 북한의 생존 전략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냉전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한반도 주변 동북아 질서의 재편 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먼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위기인데도 아무도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다. 지금은 분명 한반도에 새로운 차원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북핵문제가 전쟁 위기를 포함한 여러 갈래의 한반도 위기 상황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위기 관리가 필수적이다.

a 최재천 의원

최재천 의원

이와 관련해서는 남북간의 대화만큼이나 한미동맹에 기초한 미국과의 충분한 토론과 협의가 있어야 한다. 더욱 더 근본적으로는 주변 4강의 동북아 정세와 관련된 정보 수집, 분석, 평가에 대한 역량 강화와 이를 토대로 한 차원 높은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정보원과 외교통상부·국방부의 해외정보 수집·분석 능력, 외교부·통일부·국방부의 외교안보 정책 집행 능력, 그리고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기획·조정 능력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던지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최재천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최재천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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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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