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취업 좀 시켜주세요"...속타는 부정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고용안정센터를 찾은 아들

등록 2005.12.06 20:21수정 2005.12.0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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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면접을 보기 전에 회사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있는 구직자의 모습입니다.

면접을 보기 전에 회사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있는 구직자의 모습입니다. ⓒ 이명숙

"김아무개 면접 결과 나왔어요?"
"아직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좋은 결과가 나와야 될 텐데요."


출근하자마자 지난 금요일 김아무개를 데리고 동행면접을 갔던 취업지원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아무개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저희들에게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매사에 소극적이기만 했던 아들. 군대를 다녀오면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던데,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한숨으로 변해갔습니다. 국방의 의무까지 마친 스물네 살 아들은 아버지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그저 할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시내버스 운전을 하면서도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이 녀석이 무엇을 해서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어디에 취업을 해야 할지, 장가나 갈 수 있을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제대를 한 지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 '고용안정센터에 가면 일자리를 구해준다고 그럽디다'라는 말을 듣고 아들에게 가보라고 입이 닳도록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참다못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나섰습니다.

취업지원 담당자는 김아무개를 심층상담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성격이 워낙 소극적인 데다, 자신감은 물론, 전반적인 구직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김아무개는 바로 프로그램팀에 연계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첫 날, 아버지는 한사코 가기 싫다는 아들을 달래서 데리고 왔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들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남들처럼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치 빠르게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갈 것처럼 보이지 않은 아들이 아버지 눈에는 한없이 어리게만 보였습니다.

김아무개는 의사표현을 하는데 굉장히 서툴렀습니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낌은 어떤지에 대해, 제대로 표현을 하질 못했습니다. 말을 하는 중간에 뜸을 들여도, 시간이 지체되어도, 끝을 맺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습니다.

온 마음과 온 정신을 집중해서 우리는 당신이 하고 있는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것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사소한 말일지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존중해 주는구나, 라는 느낌을 받게 되면, 말문은 열리게 됩니다. 경험을 통해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김아무개도 언젠가는 생각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들을 표현해 내리라 믿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삼일이 지나자 다른 참가자들이 놀랄 정도로 말을 이어가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역할연기를 할 때도 먼저 나서지는 않았지만, 순서가 되면, 꼬박꼬박 참가를 했습니다.

a 프로그램에 참가한 구직자들의 모습

프로그램에 참가한 구직자들의 모습 ⓒ 이명숙

마지막 날, 김아무개는 삼십 분 일찍 프로그램실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시에 면접 보러 간다고 이력서 가져오라고 해서, 이것 좀, 여기요."

인사서식 1호에 자필로 쓴 이력서를 내밀었습니다. 순서도 없이 무조건 써내려간 이력서였습니다. 2시까지 제출을 해야 한다면, 새로운 이력서 틀을 만드는 것보다 본인이 쓴 것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판단을 했습니다.

"우선 눈에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학력, 경력, 자격, 훈련, 기타로 나눠보게요."

이력사항 중에서 같이 묶을 수 있는 것들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경력난에는 입사, 퇴사만 써 놓으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 지 인사담당자가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써 놓게요. 어떤 일을 했어요."
"스팟용접이요."
"자 그럼, 입사, 퇴사만 쓰지 말고 그 옆에다 스팟용접을 했다고 적어놓으면 더 좋겠죠."

이력서 틀을 잡아주자, 또박또박 써 내려 갔습니다.

김아무개는 2시에 취업지원담당자와 함께 면접이 예정되어 있는 구인업체에 동행면접을 했습니다. 일곱 명의 구직자를 두 명의 직업상담원들이 각자의 차에 태워 사업체에 면접을 보러 간 것입니다.

동행면접은 주로 취업이 힘든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집니다. 담당자들은 동행면접을 가는 도중에도 면접 시 주의사항 등에 대해 구직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구인업체와 구직자간의 근로조건 등을 조율하기도 합니다.

결과가 궁금해 동행면접을 다녀온 담당자가 돌아오자마자 물었습니다.

"어때요?"
"이력서도 그 중에서 가장 괜찮았고, 스팟용접을 한 경력이 있어서 될 것 같기도 해요. 조만간에 연락을 해 주기로 했어요."
"되면 좋겠네요. 취업이 되면 다니겠다고 하던가요."

용접을 해야 할 일이기에 걱정이 되어서 물어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했어요. 만약에 취업이 되면 하루나 이틀 해보고 힘들다고 나오지 말고 적어도 3개월 정도는 다니라고, 그래야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은지 알지 바로 나와 버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버지가 어찌나 걱정을 하시던지,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꼭 됐으면 좋겠어요."

근심이 가득했던 아버지와 순하기만 한 김아무개의 얼굴이 번갈아 떠오릅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도 취업이 될까 말까한 세상에 야무지고 다부진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는 아들 걱정에 손수 고용안정센터를 찾아 온 아버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에 뒷바라지를 해줄 수도 없는, 아버지의 삭은 홍어 속 같은 심정을 잘 알기에 김 아무개의 취업소식을 저희들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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