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로 가는 길에 무엇이 있나

[서평] 최정동의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를 읽고

등록 2005.12.08 17:52수정 2006.01.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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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최정동 지음, 푸른역사, 2005.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최정동 지음, 푸른역사, 2005.푸른역사
일찍이 국어교과서에서 마주치고선 천둥과 같은 충격을 받았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연암이 내 머리 속에 새겨 놓은 이미지는 '단번에 본질을 꿰뚫어버리는 직관'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글을 풍요롭게 하는 유머도, 날카로운 시대 인식도, 정세 판별도 모두 '단번에 본질을 포착해내는 직관'에서 창출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연암을 따라가는 '2002년 연행단'


연암 박지원 서거 200주년이 되는 올해, 유쾌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책의 시작은 이러하다. 중앙일보는 "한중수교 10주년 기획의 하나로 조선시대 사신들의 발길을 따라 중국 현지를 답사해보고, 두 나라 교류의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보는 연재물을 싣기로 한 것"이다. 이때 저자 최정동 기자가 기라성 같은 학자들로 꾸려진 '2002년 연행단' 답사팀의 사진 기록 담당으로 끼게 된다.

단동에서 출발하여 산해관을 지나 북경을 거쳐 열하에 이르는 열흘간의 연행 기록이 바로 이 책,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이다. 연암이 열하를 다녀오고서 3년을 다듬어 <열하일기>를 완성해낸 것처럼 저자는 3년 동안 답사기록을 어루만지고 깎아 완성도 높은 책을 펴냈다.

세계화된 세상을 들여다보는 '오늘의 연행'

이 책의 미덕 가운데 으뜸은 읽는 재미이다. 웬만한 소설 뺨치는 읽는 재미는 손에서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흘이 걸려서야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불행하게도 분초를 다투는 월간지 마감 기간. 새벽과 한밤중의 출퇴근 시간 전철 안에서 20분씩 쪼개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결과이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버린 때가 여럿 있었을 만큼 책에 흠뻑 빠져들었다.

읽는 재미는 발견의 재미로도 연결된다. 연행록의 본의를 곳곳에 포진시켜 놓았기 때문. 연행(燕行)이란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燕京)에 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연행록이란 "연경을 다녀와서 쓴 기행문"이다.


신(新) 연행록이라 할 수 있을 이 책에는 답사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상세히 써놓았다. 이는 당대 현지의 문화와 인식을 파악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하여 자신과 우리와 나라와 사회 전반에 걸쳐 비교 분석하여 장려 혹은 반성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연암에 위축되지 않고, 고만고만한 답사기행문으로 전락시키지도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연암을 포함하여 250명에 이르는 건륭제 고희 축하 특별사행단 일행은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넌 후 8월 1일 북경에 도착하고, 다시 닷새 후 북경을 출발 무박5일만에 열하에 이른다. 열흘간 열하에 머무른 후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말에야 서울에 도착한다.

그로부터 222년 후에 그 길을 따라 가는 일은 222년 저쪽과의 대화이며, 역사의 숨결을 더듬는 것이며, 고금(古今)의 소통길을 여는 일이다. 이러한 넘나듦이 저자가 보여주는 날카로운 분석과 엄정한 비판정신, 해박한 지식에서 기인한다면, 이를 풀어내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꼼꼼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장기록이 이 책의 근골(筋骨)을 형성시켰다면, 답사 후 3년에 걸쳐 수많은 자료와 책을 찾아 한 공부와 숙성이 육혈(肉血)을 더하여 책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끝까지 다 읽은 나는 예민하게 작동하는 신경을 얻어올 수 있었다.

현재의 길을 가다

출판사 리뷰 말마따나 이 책은 연암이 포함되었던 222년 전 연행단이나 저자가 포함된 222년 후의 연행단 모두 시종 현재의 상태로 전개된다. 책을 읽는 내내 동행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게 했던 스타급 연행단 일행 또한 현재형으로 연행을 나선다. 배를 잡는 에피소드는 물론, 헛걸음하기 일쑤인 밤 연행, 일반인이면 갖지 않을 법한 것에 대한 호기심 등을 입체화시켜 주었다.

출발할 때부터 '움직이는 강의실'을 표방한 '2002년 연행단' 팀원들의 면면은 가히 놀랍다. 조선시대 3대 연행록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담헌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노가제 김창업의 <노가제연행록>을 연구한 학자들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박태근 명지대 LG연암문고 연구위원, 김태준 동국대 교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유홍준 명지대 교수, 이광호 연세대 교수, 박지선 박사, 임옥상 화백, 김혈조 영남대 교수, 한명기 명지대 교수 등이 그들이다.

전문가들은 적확한 분석과 그것이 지닌 현재의 의미를 추적해 들어가는 데 환한 전조등 역할을 해준다.

이 책이 주는 마지막 재미는 보는 재미이다. '사진 기록 담당'이었던 저자의 직무답게 '오늘의 열하일기'에는 풍부한 사진도판들을 곳곳에 실었다.

새벽에 홀로 깨어나 북한과 중국의 국경 압록강 철교를 찍기도 하고, 요동벌의 이정표인 백탑의 장대함을 담기 위하여 아파트 문을 두드리기도 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도 셔터를 누른다. 이렇게 담아낸 도판들은 연행을 입체화시키는 데 한몫할 뿐만 아니라 안복(眼福)을 누리게도 해준다. 연암을 뒤따라, 저자의 안내를 받아가며 열하로 가는 길, 썩 괜찮다.

덧붙이는 글 | ※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최정동 지음, 푸른역사 펴냄, 2005.
※ 저자 최정동은 20년 동안 신문사 기자생활을 하며 세상 구석구석을 떠돌았고, 몇 년 전부터는 혼자서 배낭여행을 하며 글 쓰고 사진 찍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최정동 지음, 푸른역사 펴냄, 2005.
※ 저자 최정동은 20년 동안 신문사 기자생활을 하며 세상 구석구석을 떠돌았고, 몇 년 전부터는 혼자서 배낭여행을 하며 글 쓰고 사진 찍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최정동 지음,
푸른역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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