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청년 사형수 장례식에 2천여명 몰려

[해외리포트] 응웬 장례식, 7일 멜버른에서 열려

등록 2005.12.08 20:43수정 2005.12.0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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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반입죄로 지난 2일 새벽 6시(현지시각) 싱가포르 창이 감옥에서 끝내 교수형 당한 베트남계 호주청년 응웬 투옹 반의 장례식이 가족과 지인들의 애도 속에 7일 오전 11시 고향 멜버른에서 치러졌다.

조객 2천여명, 청년 사형수 죽음 애도

멜버른 성 패트릭 성당에서 치러진 응웬 장례식장의 쌍둥이 형제 코아와 엄마(왼쪽 첫번째와 네번째). 사진은 응웬 장례식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판
멜버른 성 패트릭 성당에서 치러진 응웬 장례식장의 쌍둥이 형제 코아와 엄마(왼쪽 첫번째와 네번째). 사진은 응웬 장례식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판
멜버른의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당초 1천명 가량의 조객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우고도 수백 명의 조문객들이 복도와 밖에 선 채 25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청년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장례 미사를 집례한 피터 한센 신부는 "응웬은 순교자나 영웅이 아니지만 자신의 생애에 가장 힘든 시련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진정으로 참회하고 타인과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깨닫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랑을 나누려 했다"며 그의 생을 기렸다.

그는 또 "갈렙(응웬의 가톨릭 세례명)의 생이 전적으로 올바른 일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으며 후회스런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는 살 권리가 있었다"는 말로, 한 번의 실수에 대한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청년 사형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반인간적인 사형제도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항거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응웬이 죽기 2시간 전에 감옥에서 써내려간, 조객들에게 띄우는 편지가 공개되어 안타까움과 숙연함을 더했다.

응웬은 옆에 있는 사람과 다정하게 포옹하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손을 가슴에 대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토록 당부하며, 조곡으로 '아베 마리아'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장례미사를 위해 저승과 이승 문턱에서 쓴 옥중편지는 '구명을 위해 노력해 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자신의 행위에 대해 마음 깊이 속죄하고 진정으로 반성하며, 응분의 죗값을 치루고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내용의 참회록을 담고 있어 2천여 조객들의 눈시울을 젖게 했다.

응웬은 사형이 확정된 이후 처형되기 직전까지 자신의 구명을 기원하는 수백 통의 격려 편지에 답장을 하고 자신의 생을 정리하는 일기를 비롯하여, 어머니와 쌍둥이 형제, 친구들과 싱가포르와 호주의 몇몇 정치인들에게도 속죄와 사랑을 전하는 편지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응웬의 법정 변호인은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싱가포르 창이 교도소에 압수되어 있던 편지들을 곧 건네받아 조만간 당사자들 앞으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편지와 옥중 일기의 일부는 일반에게도 공개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응웬에 대한 연민은 사형제도에 대한 저항"

응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를 둘러싸고 애도하는 조객들. 사진은 <디 에이지> 인터넷판.
응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를 둘러싸고 애도하는 조객들. 사진은 <디 에이지> 인터넷판.
이에 앞서 응웬의 유해는 처형 4시간 만에 가족들에게 인계된 뒤 싱가포르에서 약식으로 장례 절차를 치르고, 3일 밤 3년 전 살아서 체포되었던 창이 공항을 죽어서야 빠져나와 이튿날 새벽 5시 30분 비로소 고향 멜버른의 품에 안겼다.

응웬의 어머니는 아들이 처형되기 하루 전 날 싱가포르 교정당국에서 아들의 손만 만질 수 있도록 허용 받았으나 쇠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얼굴과 머리까지 쓰다듬으면서 모자간의 마지막 체온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치권 일부와 경찰 관계자, 보수여론은 감옥에서 사형을 당한 자의 장례를 가톨릭 성당에서 치르는 것은 적합한 처사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마약 범죄자에 대한 매스컴의 지나친 미화로 장례식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과열된 감이 없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응웬의 변호인단은 "응웬이 중범죄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가를 목숨으로 치르게 하는 사형제도는 공권력에 의한 살해 행위"라고 공박하며 "응웬의 희생이 사형제를 존속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전 세계인의 저항을 응집하는 신호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 패트릭 성당의 피터 한센 신부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형벌로서의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로 그의 장례를 주관키로 했다"며 성당에서 치러지는 응웬의 장례식에 대한 일부의 불만을 일축했다.

대다수 호주인들이 응웬의 사형집행에 분노하고 그 가족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낸 이유 역시 응웬의 범죄를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라 사형제도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다.

응웬의 교수형 집행을 앞두고 시드니에만 1천 명 이상의 군중들이 촛불 추모 집회를 열고 1분간 묵념 시간을 마련, 애도를 표하면서 사형제도의 야만성과 잔인성에 대한 저항감을 드러냈다.

호주에선 67년 이후 사형 집행 안돼

응웬은 싱가포르에서 사형을 당한 첫 호주인이자 지난 1993년 말레이시아에서 마약관련 혐의로 교수형을 받은 퀸즐랜드 주 출신 마이클 맥올리프 이후 12년 만에 외국에서 행해진 처형이라는 점에서 호주인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호주는 지난 67년 빅토리아 주에서 행해진 교수형을 마지막으로 84년까지 각 주에서 점차로 사형제도를 폐지할 동안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에 대해 더 이상 집행은 없었다.

퀸즐랜드 주정부가 1922년 사형제도를 폐지한 것을 선두로 서부 호주에서 1984년 마지막으로 사형제도가 없어지면서 대신 자연사할 때까지 징역에 처하는 종신형 제도를 도입했다.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호주에서 마지막 사형 선고를 받은 서부 호주의 한 여성은 그 해 법이 바뀌어 사형제가 폐지되자 종신형으로 감형된 후 다시 형기가 줄어 12년간 복역한 후 석방되었다.

응웬의 비극적인 종말을 계기로 종교계와 인권단체들이 사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높이자는 결의를 다지는 가운데, 응웬 구명을 위해 싱가포르 총리에게 다섯 차례나 직접 호소했던 존 하워드 총리는 지난 4일 ABC-TV를 통해 "사형제 폐지에는 찬성하지만 사형제가 존속하는 나라에 정부차원에서 외교적 대항이나 경제적 압력, 불매운동 따위는 전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매를 얻지 못할 불필요한 행위는 무의미하며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서, 호주와 싱가포르 양국은 당분간 불편한 관계에 놓이긴 하겠지만 앞으로 싱가포르를 향한 호주 정부의 여하한 대응 조치는 없을 것임을 드러냈다.

존 하워드 총리는 응웬이 죽음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너무도 명백하다고 강조하면서 " 호주의 젊은이들은 마약을 사용하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소지하지도, 거래하지도, 심지어 생각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만약 아시아 국가에서 그리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각별한 당부를 했다.

응웬 투옹 반은 지난 2002년 12월 캄보디아에서 헤로인 396g을 가지고 호주로 들어오다 경유지인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체포되어 싱가포르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싱가포르는 마약관련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면 판사의 정상참작 여지없이 사형을 선고하는 의무사형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싱가포르의 교수형 집행 건수는 미국보다 7배가 많고 쿠웨이트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사형집행이 많은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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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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