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계 쌍둥이 곤경에 호주가 들썩

[해외리포트] 형제 구하려 마약운반하다 적발... 2일 싱가포르서 사형 집행

등록 2005.11.25 13:44수정 2005.12.0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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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웬,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듯
호주 성당, 사형 집행일에 25회 타종 계획

호주 정부와 국민들의 구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년 사형수 응웬 투옹 반의 생명의 불꽃은 끝내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24일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기적만이 시시각각 임박해 오는 운명의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말로 허탈한 심정을 표했다. 그는 또 "누구든 그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을 달라"며 싱가포르의 강경입장을 돌려보려 했던 호주 정부의 안간힘이 모두 무위로 돌아갔음을 인정했다.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그가 처형되면 우리의 삶도 비천해질 것이다"라며 응웬을 살리기 위한 국제법적 근거 마련에 부심해왔던 롭 헐스 빅토리아 주 법무장관을 비롯한 전 현직 법조인 또한 좌절감에 휩싸였다.

한편 응웬의 고향인 멜버른의 성 이냐시오(St. Ignatius) 성당에서는 응웬이 사형 당하는 순간 그의 25년 짧은 생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25회 타종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처형 당일까지 일주일간 철야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피터 노든 신부는 "성모 마리아의 자비로 싱가포르 정부가 응웬의 삶의 권리를 존중해 줄 수 있도록 전 교구민들과 기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처형일인 12월 2일, 교회는 오전 6시부터 3시간의 기도회를 가진 후 9시(싱가포르 시간 오전 6시)에 타종을 하게 된다. / 신아연

쌍둥이 반쪽을 구하려다 타국에서 사형될 위기에 처한 호주청년을 살리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 호주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오는 12월 2일 싱가포르에서 교수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인 베트남계 호주청년 응웬 투옹 반(Nguyen Tuong Van, 25)을 구하기 위해 다각도의 구명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

형제 구하려다 타국서 사형위기 처한 호주청년

응웬 구명호소 사이트에 실린 글.
응웬 구명호소 사이트에 실린 글.
응웬 투옹 반은 지난 2002년 12월, 캄보디아에서 호주로 들어오다 경유지인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헤로인 396g을 지닌 혐의로 체포됐다. 이어 싱가포르 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싱가포르는 15g이상의 마약을 소지했을 경우 자국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고 있다. 국제사면위에 따르면 1991년부터 최근까지 싱가포르에서 마약 관련 혐의로 처형된 사람은 420명에 달한다. 인구비례로 보면 세계 최고의 사형율이다.

응웬의 사형집행 통지서한은 지난 17일 응웬의 어머니 앞으로 전달됐다. 서한에는 처형당하기 전에 세 차례의 가족면회를 허용한다는 내용과 시신 인도절차 및 장례 준비 고지, 그리고 어머니의 사인요구서 등이 들어있었다.

호주인들이 싱가포르, 발리 등 아시아 지역에서 마약을 운반하다가 잡혀 사형에 처해진 전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마약 밀반입 혐의로 재판 중이거나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호주인들도 10명(2건)에 이른다.


그러나 호주인들은 이번의 경우, 응웬이 상습적인 범죄자가 아니라는 점과 무엇보다 '죄에 비해 벌이 터무니없이 과하다'는 점 때문에 선처를 베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멜버른의 세일즈맨이었던 응웬은 쌍둥이 형제인 코아가 진 빚을 대신 갚아주기 위해 마약을 운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을 전달해 주는 조건으로 시드니 밀매 브로커로부터 3만 호주 달러(2400만원)를 받기로 했다는 것. 10대 때부터 폭력 등으로 각종 전과기록을 갖게 된 코아는 급기야 도박에 손을 댔다가 큰 빚을 진 상태였다. 코아와는 대조적으로 전과도 없이 착실한 삶을 살아온 응웬은 늘 코아의 뒤치다꺼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쌍둥이 형제는 지난 1980년 단신으로 베트남을 탈출한 홀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이른바 보트 피플의 후예다. 이들은 태국 난민촌에서 출생한 지 6개월 만에 난민입국 심사를 거쳐 호주에 정착했다.

들끓는 호주, 꼼짝 않는 싱가포르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실린 엄마와 응웬의 친구들 사진과 응웬 관련 기사.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실린 엄마와 응웬의 친구들 사진과 응웬 관련 기사.
응웬의 사형이 확정되자 호주정부 등 정치권은 물론 종교계 법조계 인권 단체 및 호주사회 각계각층에서 싱가포르 정부를 상대로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호소하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호주가톨릭교회 수장인 시드니 대주교 조지 펠 추기경은 지난 19일 "교황청 명의로 두 차례에 걸쳐 응웬의 구명을 호소했지만 싱가포르 정부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다"며 "응웬의 죄에 비한다면 처벌은 완전히 도를 넘어선 수준'이라고 개탄했다.

존 하워드 총리도 네 차례에 걸쳐 싱가포르 정부에 응웬의 선처를 호소했다. 특히 지난 주 부산 에이펙회의 기간 동안 싱가로프 리셴룽 총리를 직접 만나 다시 한 번 구명을 호소할 계획이었으나 에이펙회의 전날 싱가포르 정부가 이미 사형집행일을 통보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매우 당혹스러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와의 상호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신병인도를 요구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23일 싱가포르를 방문한 빅토리아 주 법무장관도 호 펭 키 싱가포르 법무장관으로부터 거절의 답변을 들어야 했다.

호 장관은 24일, "호주 국민들에게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지만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그 가운데 하나가 마약의 폐해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며 응웬의 처형을 번복하는 것은 법 형평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호주 정부는 최후의 수단이자 마지막 노력으로 싱가포르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싱가포르의 마약 사범 극형 처벌에 대해 국제 인권 관련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결을 모색할 방침이다.

시드니의 국제법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워드는 23일 "유엔마약협약 조인국인 양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국제사법재판소의 개입에 어느 정도 희망을 걸 수 있다"고 전하며, 호주가 일방적으로 제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전망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한편 싱가포르 인권 단체 일부는 "싱가포르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며 응웬의 처형 반대운동을 자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강력한 통제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응웬의 죄에 비해 사형은 너무하다"

응웬 구명을 호소하는 기사. 엠네스티 주관 촛불시위 사진이 실려있다.
응웬 구명을 호소하는 기사. 엠네스티 주관 촛불시위 사진이 실려있다.
현재 응웬의 어머니는 아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위해 코아와 함께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면회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작별의 포옹이나 일체의 신체접촉은 허용되지 않았다.

일주일 후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자신의 분신을 2년 만에 만난 코아는 응웬이 구속된 이후 극도의 죄의식과 불안에 시달려온 그 간의 심적 고통을 잠시 뒤로 한 채 웃음 섞인 담소와 농담을 주고받기도 해 이를 지켜본 어머니의 애간장을 더욱 녹였다.

응웬의 법정 변호사 렉스 레슬리는 "응웬은 곧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두터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친구들과 마지막 작별의 키스가 오가는 순간 청년 사형수의 눈에 눈물이 맺히면서 울음바다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멜버른, 시드니, 캔버라, 퍼스, 브리즈번 등 호주 전역에서는 촛불시위를 통한 탄원서 서명 및 손바닥 지문찍기 운동이 진행 중이다. 이런 호주 시민들의 움직임은 미국 청년단체들의 공동서명운동으로까지 확산돼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호주 전학생연합과 호주가톨릭학생회 그리고 미국 뉴욕의 세계청년연맹 등 3개 단체는 'www.australiaunites.com.au'라는 이름의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25일 오후 4시까지 네티즌들의 서명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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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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