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도 제2외국어라고 생각해주세요"

<취업도전기⑮> 집 근처 농인들을 찾아갔습니다

등록 2005.12.10 16:13수정 2005.12.1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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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도 외국어처럼 생각하면 되는 것이겠군요."


7일 농아인협회 노원지부를 찾아갔을 때,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꽤 많았다. 취업 준비라고 하면 대부분 '토익이나 중국어, 컴퓨터 능력' 등을 떠올리는 게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해 찾아가긴 했지만, '취업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를 다루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 우려는 저 한 마디로 말끔히 사라졌다. 생각을 달리 하면, 수화도 배워두어야 할 외국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화는 의외로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어 어느 업종에 있든 익혀두어서 나쁠 것은 없을 듯했다. 특히나 서비스업에 취업할 젊은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a 왼쪽부터 한현숙, 박미숙, 반은경, 유경옥, 조애현씨.

왼쪽부터 한현숙, 박미숙, 반은경, 유경옥, 조애현씨. ⓒ 양중모

취업 강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이미지 컨설팅'이다. 어떻게 인사하며, 어떻게 웃을까를 열심히 교육받는다. 물론 그런 행동들이 때로는 마음까지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교육에 앞서서 스스로 마음가짐을 한 번 돌아보자. 교육을 받는 이유가 취업 면접만을 위해서인가? 서비스업에 지원했다면, 그런 교육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을 위해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농인'(귀가 들리는 이는 건청인이나 청인, 청각장애인은 농인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들도 언제든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지구촌 한 가족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이 시대에는 외국어는 필수인 세상이 되었다. 미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들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적어도 상품을 팔 수 있는 몇 마디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농인들도 그런 외국인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인터뷰에 참가한 4명의 농인 하현숙(35·농아인협회 직원), 반은경(40·농아인협회 직원), 조애현(43·주부), 유경옥(30·주부)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겉으로는 이미지 컨설팅을 받은 대로 행동해도, 불친절한 속마음을 농인들에게는 감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인은 시각장애인이 청각쪽이 발달하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발달해 인지능력이 빠르다고 한다. 게다가 수화에서 얼굴 표정은 청인(비장애인)에게 있어 목소리 억양이나 태도와 같다고 하니, 억지로 웃는 얼굴을 알아채는 게 결코 어렵지는 않을 듯했다.


그들에게 극장, 백화점 등을 이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택시 등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불편한 점을 말해주었다. 아래는 각종 불편한 점을 정리한 것이다.

a 이런 정도 수화는 알아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한다. 한현숙(35)씨.

이런 정도 수화는 알아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한다. 한현숙(35)씨. ⓒ 양중모

유경옥: "백화점 할인 행사 때 정확한 가격을 물어보면, 직원들 말이 빨라 입 모양을 알아챌 수 없어 의사소통이 힘들다. 일반 상점에는 그나마 가격표가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더 힘들다.

조애현: "극장에 갔을 때는 한국 영화는 자막이 없어, 대부분 외화를 본다. 새로 개봉하는 한국 영화를 보고 싶은데 아쉬운 경우가 많다."

하현숙: "식당에서는 종업원을 부를 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주먹으로 탁자를 꽝 치거나, 직접 가서 불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은경: "택시를 탈 때는 글로 써줘도, 나이 든 기사들은 잘 못 보는 경우도 있고, 빠른 길을 두고 다른 길로 돌아가서 바가지요금을 내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맨 앞에 앉아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가야 한다."


인터뷰가 진행이 되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에도, 수화 통역사와 농인들이 나누는 수화를 못 알아들어 답답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게 일상인 농인들에게 생활 속의 불편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장애인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회 탓인지, 사회는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부족한 듯싶었다.

a '감사합니다'를 할 때는 꼭 웃으면서, 반은경(40)씨.

'감사합니다'를 할 때는 꼭 웃으면서, 반은경(40)씨. ⓒ 양중모

가장 서비스가 좋았던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유경옥씨는 '이비인후과'라고 말했다. 귀를 다루는 분야인지라 어느 정도는 수화를 할 줄 알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수화를 할 줄 아는 의사는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그 이비인후과를 어떻게든 홍보를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분명 어떻게 개선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터. 하현숙씨는 아주 '간단한 수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만이라도 직원들이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특히 '백화점 같은 경우 얼마에요?라는 표현 정도를 알아듣거나, 계산기 등을 이용해서 할인 행사 때 가격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반은경씨가 거들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 물건을 어떻게 사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어떤 뜻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또 하현숙씨는 '더 많은 식당에 식탁용 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종업원들이 농인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더라도 귀찮은 표정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라는 말을 할 때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기업들이 요새 사회봉사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는데, 농인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청인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문제'라고 반씨가 말해주었다. '농인이기에 무조건 안 된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농인이 청인보다 시각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해 일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시각 장애인이 귀가 발달한 것처럼 '농인들은 시각적으로 발달되어 인지능력이 굉장히 빠르다'고 한다. '그런 부분들을 감안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a 노원지부장 허정훈(43)씨가 사진촬영을 위해 특별출연해 주었다.

노원지부장 허정훈(43)씨가 사진촬영을 위해 특별출연해 주었다. ⓒ 양중모

그러고 보니, 농인을 대할 때도 외국인에게 대하는 것처럼 예의를 갖춰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러면 수화 강사가 되려면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 강사는 대부분 협회측에선 농인이 직접 하는 경우를 권장한다고 한다. 영어나 중국어를 원어민 강사가 맡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열심히 통역해주던 박미숙 통역사에게 드디어 질문을 던져보았다.

"저기 그러면 수화를 배우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농아인협회 등에서 하는 수화교실을 이용하면 됩니다. 저희 노원지부도 이번 12월 19일부터 수화교실을 개강할 예정입니다."

부끄럽지만, 그 이야기를 듣다가 몰랐던 사실을 또 하나 듣게 되었다. 그냥 수화교실이겠거니 생각했건만, 영어처럼 초급, 중급, 고급 등 레벨이 나누어지며, 수화도 나라별로 다르며 국제 수화는 따로 있다고 한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듣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려고 하자, 방금 전 보았음에도 '감사한다'는 수화가 잘 나오지 않았다. 원어민 앞에서 외국어가 잘 안 나오는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서는 내게 따뜻한 웃음을 보내주는 그들을 보니, 나부터라도 혹시 서비스업에 진출하게 된다면 농인을 위한 서비스를 강화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이 들었다. 자, 이제 토익에만 미쳐있을 게 아니라, 간단한 몇 마디라도 수화라는 외국어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노원지부에서는 2005년 12월 19일~2006년 3월 16일까지 수화반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문의는 02-931-6107, 02-931-5710로 해주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노원지부에서는 2005년 12월 19일~2006년 3월 16일까지 수화반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문의는 02-931-6107, 02-931-5710로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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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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