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살아있는 교육 아니겠어"

아이들과 만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등록 2005.12.12 12:22수정 2005.12.12 16: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요일 아침, 아이들이 눈을 뜨자마자 만두 타령에 들어갔다. 요는 지난밤 TV에서 제 또래의 아이가 만두를 만들어서 직접 시식하는 장면을 너무도 진지하게 보길래 무심결에 "우리도 만두 만들어볼까?" 한 내 말때문이다.


그 말 한 마디에 빨리 자야지 빨리 아침이 오고, 만두도 빨리 만들 수 있다면서 8시가 되기도 전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니, 떠오르는 아침 태양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후회막급이지만, 어쩌랴. 어린 아이들과 한 약속이니 죽었다 깨어나도 지키는 수밖에. 어차피 만두를 만들고나면 다시 치워야할테니 청소도 대충 먼지만을 걷어낸 뒤 수퍼로 향했다. 평상시 같으면 엄마 없으면 못 산다고, 아득바득 따라붙었을 작은애도 만두 재료를 사러간다고 하니 군말없이 집에서 기다리겠단다.

두부 한 모, 대파 한 단, 만두피!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뭐가 이렇게 간단해?" 싶다. 이걸로 과연 만두가 만들어지긴 할까 의구심이 앞섰지만, 어쩌랴. 나로서도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만두이니, TV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퓨전 만두!!
퓨전 만두!!주경심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불려두었던 당면을 자르고, 물을 짜낸 두부를 으깨고, 묵은 김치를 송송 썰고, 대파를 썰어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비장한 각오로 만두피를 뜯고 있는 아이들 앞에 재료를 버무려서 내 놓았다. 저 좋아라하는 표정.

'맞아. 이게 살아 있는 교육 아니겠어. 현장 학습이 따로 있나. 이게 바로 현장학습이지.'


귀찮음도 물리치고 아이들을 위해 만두 재료를 만들어낸 나를 칭찬하느라고 머릿속에선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드디어 작업 시작. 상 위에 만두피를 한 장 깔고, 그 위에 속을 넣고 다음은 만두피 가장자리게 물을 발라가며 접는 순서이건만, 아이들에게는 그깟 순서같은 건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양쪽을 접고, 또 나머지를 접고….

쌈을 싸듯, 전병을 만들 듯 그렇게 만두 하나를 뚝딱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작은 아이는 더 가관이다. 만두피 두 장에다 속을 개미눈물만큼 넣더니, 주먹밥 뭉치듯이 힘껏 주먹을 쥐었다 펴더니 "다 됐다!"고 외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만두를 일차로 몇 개 쪘다.


덩어리가 되어버린 만두!!
덩어리가 되어버린 만두!!주경심
그런데 찜솥에서 십여분 쪄진 만두가 갑자기 왜 이렇게 불어버리는 건지. 뭣 모르고 다닥다닥 붙여앉힌 만두가 퍼지고 보니, 그야말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먹어보겠다고 아우성인 아이들에게 찜솥 째 갖다 줬더니 수저로 벅벅 긁어서 기어기 한솥을 다 먹어버렸다.

"와~~ 맛있다."

물론 내 입에도 맛있었다. 나머지는 두 솥에 나눠서 쪘다. 하지만 "엄마 우리 만두 장사 해도 되겠지" 하는 아이의 말에는 선뜻 대답해주지 못했다. 과연 돈을 주고도 이런 희한한 모양의 만두를 사먹어주는 희한한 손님이 계실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점심에 저녁까지 만두로 때우고 나니 당분간은 만두 생각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아침 눈을 뜨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또 외쳤다.

"엄마! 오늘도 만두 만들까?"

이럴 때 나는 외치고 싶다

"얘들아, 만두부인 이미 속 터졌단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