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표지다산초당
어린시절 눈이 오는 밤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기 화투를 곧잘 치시곤 하셨다. 그런 뒤엔 으레 동생과 내가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군것질 거리를 사왔다. 그 시절은 참 행복했다. 간혹 주위에서 집나간 자식들과 소식을 끊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커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라며 내심 굳은 맹세를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반성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전화를 드리지 못한 점, 생신 한 번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점, 나를 생각해주는 것의 반의 반도 생각하지 못한 점, 매번 근심과 걱정거리만을 안겨드린 점 등등.
'부모란 자식에게 당연히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나. 그 '당연히'란 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든 것이 신간 <집으로 가는 길>이다. 올 겨울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30여 년간 카메라와 캠코더로 부모의 모습을 담은 기록의 산물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부모님의 모습을 담아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저자의 얘기를 들으면 모두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늙어 가시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두 분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든 두 분을 붙잡고 싶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왜 나는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렇게 변했을까, 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중국 산동 지역의 한 노부부와 그 가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배경이 우리네 옛 삶과 너무도 닮아있다.
얼굴도 모르고 만나 결혼해 자식을 낳고, 가난과 무지로 먼저 자식들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남은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모든 고통을 묵묵히 참아내는 모습들이 우리 부모들의 모습 그대로다.
병상에 누워있는 부인이 안쓰러워 열을 잰다는 핑계로 이마에 뽀뽀를 하는 남편, 한 번도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한 할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아버지의 영정을 목에 걸고 만리장성을 넘는 아버지, 평소에는 과묵한 남편이지만 둘만 있을 때는 거칠어진 손을 만지며 "사랑해요. 나 보다 먼저 가면 절대 안되요"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감동은 결코 만만치 않다. 잔잔한 문체와 사진들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통해 잘 알려진 고 전우익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친구 부르고 좋은 책 읽으면 친구한테 권하지요. 지아오 보가 쓴 <집으로 가는 길>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 가슴 뭉클한 책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숭늉 같은 구수함이 서리는 책이고요. 읽은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립고 아련하기만 합니다. 지아오 보가 말하듯 가슴으로 읽는 책입니다. 못 박힌 아버지의 손, 험한 고비를 맞을수록 빛나는 어머니, 너그러운 할아버지와 할머니, 밥과 꿈을 함께 나눈 형제자매들의 삶이 가슴을 적셔줍니다. 좋은 책이란 읽을수록 씹을수록 더 새로운 맛이 나나 봅니다."
기실, 그 추천사가 이 책을 만들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이 출간된 후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은 느낌이다.
가끔 잊고 살아왔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고, 그 분들과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만들었다. 해묵은 숙제를 해치운 느낌과도 같다.
지금쯤, 아버지 어머니는 뭘 하고 계실까. 눈이 많이 내렸다는 데 별 일 없으신 걸까. 오늘은, 모처럼 어린 아이로 돌아가 "아빠 엄마, 잘 계시죠"라고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그리고 참, 이 말도 빼먹지 말아야지.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전화도 드리고 효도할게요."
갑자기 눈물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채성 기자는 다산초당의 홍보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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