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산부인과>의 성공은 세대별 특징을 캐랙터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sbs
<순풍산부인과>가 방송될 무렵 난 세 살, 네 살 밖에 안 된 어린 애 둘을 키우느라 정신없고 지쳐있던 그런 아줌마였다. 별난 애들을 둘씩이나 데리고 어디 갈 데도 없어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애들하고 싸우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던 내게 유일한 구원은 <순풍산부인과>를 보는 시간이었다. 그 프로를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고, 새로운 힘을 얻곤 했었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 우연히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순풍산부인과>를 보게 됐다. <순풍산부인과>는 1998년 3월에 시작해서 2000년 12월에 막을 내렸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방송됐던 작품이라 패션이나 화장법이 지금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입술을 새빨갛게 칠하는 등 대체로 진한 화장이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수수하게 화장하는 지금의 화장법에 익숙해서인지 당시의 진한 화장이 좀 촌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캐릭터 설정이나 극의 구성 면에서는, 요즘 시트콤이 후퇴한 것 아닌가 할 만큼 전혀 촌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요즘 나오는 시트콤을 압도했다.
1998년 3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총 682회를 방송하는 동안 마니아를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시청률 면에서도 평균 21%를 유지하는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추었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시트콤은 이런 공식 안에서 이런 종류의 인물과 이런 유형의 웃음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시트콤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 시트콤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구조와 세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섹스 앤 시티>와 같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시트콤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순풍산부인과>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이런 <순풍산부인과>의 성공은 캐릭터의 창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는데, 이들은 당시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세대 차이를 보여주는 그런 캐릭터였기에 더욱 깊이 있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때 당시 우리 사회에는 세대별로 묶어서 표현하는 호칭이 유행했는데, '386세대'니 'X세대'니 하는 말들이 그런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각 세대들이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순풍산부인과>의 캐릭터는 이런 세대별로 갖고 있는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었고, 이런 세대 차이가 긴장과 갈등을 초래하면서 또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기성세대의 권위의식과 체면, 그리고 가부장적인 면모는 오지명 캐릭터를 통해서 표현됐고, 그리고 박영규를 통해서는 '386세대'라고 할 수 있는 세대의 실리주의와 가족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X세대'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 욕망에 대한 충실함, 이런 특성은 허영란 캐릭터를 통해서 표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