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훈
가수 권진원은 이렇게 노래했다. "살다 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살다 보면 괜시리 서글픈 날 너무도 많"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라고 바라지 않겠는가. 성적 소수자라고 다르겠는가. 성적 소수자도 "행복했으면"이라는 바람으로 살지만, 성적 소수자로 '살다 보면' "괜시리 서글픈"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2005년의 늦가을 혹은 초겨울, 그들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들의 일주일을 실화에 바탕을 두고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재구성했다.
일요일, 극장에서 비웃음을 사다
서른다섯 살의 노총각, 윤도형씨는 홀어머니에게 미안했다. 동성애자여서 결혼을 하지 못하는 죄.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드리지 못하는 죄. 주말이면 이태원 밤나들이에 여념이 없는 아들은, 모처럼 일요일 오후 어머니께 효도하기로 작심했다. '그래, 엄마랑 영화를 보는 거야.' 어머니는 '괜찮다'고 마다하다가, 설레는 얼굴로 따라나섰다.
그들의 선택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시작은 좋았다. 일곱 커플의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가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 그도 발랄한 이혼녀와 숙맥 총각의 좌충우돌 연애담에 웃고, 가난한 젊은 부부의 서글픈 사랑 이야기에 울었다. 어머니도 즐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요일'은 짧게 끝나버렸다. 영화 중반에 드러난, 이혼남과 남자 도우미의 '동성애'가 그와 관객 사이를 갈라놓았다. 영화에 순연하게 몰입하던 관객은 남성 커플이 나올 때마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 도우미가 중년의 이혼남의 넥타이를 바로잡아 줄 때 '어?' 했다가, 이혼남이 청년에게 선물을 건네자 "허걱!" 하다가, 이혼남이 떠나려는 청년을 붙잡자 "에이 씨!"라고 짜증을 냈다.
그는 짜증내는 관객의 반응이 짜증스러웠다. 그것은 극장의 어둠 속에서 드러난 적나라한 동성애혐오증이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한국의 동성애 인권지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관객의 비웃음을 자신의 코웃음으로 받아쳤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이성애에 혐오스러운 동성애가 끼어들어서 죄송함다~.' 그래도 솔직히 서글펐다. 그는 그들의 사랑에 가슴 아프고, 좋아하는 배우 천호진이 동성애자 역할을 한다는 것에 마음이 설레었지만, 남들처럼 편하게 울지도 못했다. 그의 옆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하긴, 처음도 아니었다. 1년 전 가을, 한국 영화 <주홍글씨>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홍글씨>에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던 부인과 애인이 알고 보니 대학 시절 연인이었다는 레즈비언의 반전이 들어 있었다. 관객이 어찌나 개탄해 마지않던지, 그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첼로를 연주하던 두 여성이 서로 애무하는 에로틱한 장면에서도 여성 관객은 "어머!", 남성은 "참!"이라고 추임새를 잊지 않았다.
'쳇, 아직도 동성애자에게는 주홍글씨가 찍혀 있다는 확인 사살이군.'
극장을 나서며 그는 씁쓸했다.
월요일, 경찰이 협박하다
서른 살의 '잘나가는' 남성 동성애자 김아무개씨, 그는 지방 출장 중이었다. 한참 일을 보고 있는데, 휴대 전화에 낯선 번호가 찍혔다.
"이 번호 주인이시죠?"
"네, 그런데요."
"여기 ××경찰서인데요. 한번 나와 주셔야겠습니다."
"예?"
"××마사지에 가신 적이 있으시죠?"
"무슨 말씀이세요?"
"왜 이러세요. 고객 명단에 나와 있는데…."
"지금 바쁘거든요.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당황스러웠다. '××마사지', 몇 달 전 인터넷에서 발견한 마사지 업소였다. 그 지방에 가면 한번 들러볼까, 인터넷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더랬다. 주인인 듯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고, 찾아가는 방법을 물어보고 끊었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다.
'이런, 그때 주인이 장부에 내 번호를 적어두었나 보군.'
경찰에 전화를 했다. 경찰은 그 업소가 남성동성애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됐고, 압수한 명단에 그의 전호번호가 적혀 있다고 했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히려 경찰은 협박조로 말했다.
"이거 왜 이러세요. 다 알고 있습니다. 빨리 와서 조사 받으세요."
졸지에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입건될 처지였다. 혹시 경찰이 회사로 전화라도 한다면? 설마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아… 어쩌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핀잔부터 줬다.
"그러니까 그런 데는 왜 다니고 그래."
친구는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경찰이 압수한 고객 명단에 오른 사람이 수백 명이라고 했다. 일일이 불러서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당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심한' 경찰이 피의자를 추궁하는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주변 사람들이 피의자의 '신분'을 모두 알게 된 모양이었다. 더욱 두려웠다. 친구는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경찰 조사 과정의 인권 침해를 문제삼을 작정이라고 했다.
"야, 그런데 안 가면, 경찰이 집으로 출두 명령서를 보내지 않을까?"
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으로 경찰이 보낸 통지서라도 날아 온다면?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경찰에 갈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화요일과 수요일, 하느님이 너희를 심판하리라
그것은 테러였다. 대자보는 찢기고, 무지개 깃발은 사라졌다. 한국여대 레즈비언 모임은 레즈비언 문화제를 열었다. 공들여 전시물을 만들고, 대자보를 붙였다. 테러는 미국에 반대하는 이슬람근본주의자가 아닌,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보였다.
테러의 위험은 문화제 첫날부터 느껴졌다. 한국여대 기독교단체는 자신의 선전물로 레즈비언 문화제를 포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레즈비언 모임의 새내기 이소연씨는 더욱 충격이 컸다. 자신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에,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교회 친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화가 났지만, 나서기 어려웠다. 아우팅의 위험 탓이었다. 레즈비언 문화제를 지지하는 이성애자들이 행사 방해에 항의하자 그들은 "당신도 레즈비언이냐?"라고 추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