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설 유서대필 검찰수사 불공정"

경찰 과거사위 "미리 결론 내놓고 무죄 증거 배척"... 검찰 "신빙성 없다" 발끈

등록 2005.12.16 19:25수정 2005.12.1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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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1년 5월 당시 <조선일보>에 실린 김씨와 강기훈씨의 필적. 가운데 붉은 테두리 안이 고 김기설씨 글씨이고 위쪽이 강기훈씨 필적.
지난 91년 5월 당시 <조선일보>에 실린 김씨와 강기훈씨의 필적. 가운데 붉은 테두리 안이 고 김기설씨 글씨이고 위쪽이 강기훈씨 필적.조선일보 PDF

경찰이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으로 알려진 1991년 김기설씨 분신자살 사건과 관련,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서 파문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즉각 "신빙성이 없다"고 경찰의 발표를 일축했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는 이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당시 검찰수사 발표와는 달리 유서의 필적은 김기설씨 본인의 것으로 보인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특히 검찰이 사건 발생 당일부터 '유서 대필'로 미리 결론을 내려 두는 등 필적 감정을 공정하게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김씨 분신 사건 당일 작성된 압수조서에 김씨의 동료 강기훈씨가 자살방조 피의자로 특정돼 있는 점으로 보아 검찰이 애초부터 미리 결론을 내놓고 이에 맞춰 무죄 증거를 배척한 것 아니냐 하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위원회는 당시 필적 감정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직원이 감정을 의뢰했던 검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어떤 감정 결과를 원하느냐'고 말했던 사실과 '감정 문건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검사와 검찰 직원이 직접 국과수를 방문했던 사실도 밝혀냈다.

위원회는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유서 원본에 대한 필적 감정이 이뤄지지 못했으나 당시 감정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았다는 의문이 있다"며 "사회 상규와 수사 관행에 어긋나는 이러한 행위는 필적 감정에서 요구되는 중립성, 객관성, 독립성을 심대하게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5월 8일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국 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하자, 검찰이 김씨의 전민련 동료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신 써주며 자살을 방조했다고 발표한 사건을 말한다. 이에 대해 당시 재야 운동권 등을 중심으로 검찰의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다.

한편 검찰은 당시 국과수의 필적 감정을 근거로 강씨를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아냈지만, 그같은 감정 결과를 내놓은 김모 전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다른 사건에 연루, 허위감정을 해주고 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열린우리당 이인영, 최규성, 우원식 의원,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등 여야 의원 113명은 지난 5월 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서대필 사건은 당시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조작한 한국판 `드레퓌스`사건"이라며 과거사위의 조사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열린우리당 이인영, 최규성, 우원식 의원,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등 여야 의원 113명은 지난 5월 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서대필 사건은 당시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조작한 한국판 `드레퓌스`사건"이라며 과거사위의 조사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불쾌한 검찰 "경찰 과거사위, 법적 권한·자격 없다"

검찰은 경찰 과거사진상규명위의 발표에 대해 "믿을 만한 결과도 아닐 뿐더러 사실도 아니다"고 발끈했다. 특히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해서 유죄까지 받아낸 사건에 대해 경찰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자 불쾌하다는 분위기다.


이날 경찰 과거사위의 발표 직후 검찰이 반박문을 만들어 기자실에 돌린 것도 이례적이지만 "경찰과거사위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의한 진상규명의 권한과 자격이 있는 위원회가 아니다"고 못박은 것도 이런 속내가 반영된 것이다.

우선 검찰은 경찰 과거사진상규명위가 수사 기록이나 재판 기록도 열람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을 지적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반박문에서 "충분한 검증도 거치지 않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은 사건에 대해 임의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공표하는 것은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성, 권위를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또 "사건 발생 당일 작성된 압수 조서에 '자살방조' 죄명이 기재된 것은 관행상 압수 당일이 아니더라도 기록 완성 단계에서 새로 계속 편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사실만 가지고 결론을 속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찰 과거사위가 '유서는 김기설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고 잠정 결론 내린 것에 대해서도 "수사과정에서 김기설의 평소 필적이라고 전민련측에서 제출한 전민련 업무일지와 수첩의 필적은 강기훈 자신도 김기설의 것이 아니라고 인정했던 점에 비추어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이 고문 및 가혹행위 자행"

한편, 경찰청 과거사위는 이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1984년 '서울대 민추위 깃발 사건'과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고문 및 가혹행위를 자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위원회는 당시 민청련 의장이던 김근태 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고문한 수사관들로부터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의 지시에 의해 고문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안기부, 검찰, 보안사 등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좌경용공분자로 몰면서 수사결과를 조작했다.

위원회는 '자주대오 사건', '남민전 사건', '46년 10월 대구 민간인 사살 의혹사건',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사건', '나주부대 사건', '진보의련 사건' 등에 대한 조사를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하고, 이후에는 불법 선거개입 의혹, 민간인 사찰 의혹, 용공조작 및 고문의혹 등에 대한 조사를 벌여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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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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