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창호!"... 중국 뤄시허와 결승 진출

[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후야오위 8단에 197수 만에 불계승... 내년 1월에 결승전

등록 2005.12.17 08:23수정 2005.12.18 10:09
0
원고료로 응원
강추위 속에서도 밤거리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12월도 벌써 중순, 이제 2005년도 보름이 채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하기 위한 종종걸음으로 모두 바쁘다.

한국 바둑계 역시 2005년을 옹글게 마무리하기 위해 잰 걸음을 보여 왔다. 12월 대미를 장식할 세계바둑대회,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3번기가 바둑팬의 관심을 끈 것은 당연하다. 지난 13, 15일, 그리고 어제 16일, 드디어 결판이 났다.


인천역 언저리 파라다이스 호텔 1층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준결승 3번기의 주인공은 한국 선수 2명, 중국 선수 2명이었다. 중국의 후야오위 8단(백) 대 이창호 9단(흑), 중국 선수 뤄시허 9단(백) 대 최철한 9단(흑).

1승 1패를 뒤로 하고 마지막 제3국이 16일 오전 10시, 돌 가리기와 함께 시작되자 호텔 8층에 마련된 검토실은 긴장에 휘감겼다. 나는 제3국이 열린 날, 현장을 스케치하기 위해 파라다이스 호텔을 찾았다.

결승에서 만나게 된 이창호와 뤄시허

a 결승에 오른 이창호 9단과 뤼시허 9단. 기자의 요청에 악수를 나누는 모습.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시선 속에 숨은 전의.

결승에 오른 이창호 9단과 뤼시허 9단. 기자의 요청에 악수를 나누는 모습.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시선 속에 숨은 전의. ⓒ 이동환

제한 시간이 두 시간인 만큼 예전처럼 장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철한 9단과 뤄시허 9단은 초읽기에 몰리지 않겠다는 듯 초반부터 빠른 손놀림으로 반상에 돌을 뿌려댔다.

초반에는 최철한 9단의 우세. 흐름을 이끌며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자 검토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서로 대마가 얽힌 수상전이 벌어지자 갑자기 국면은 안개에 휩싸였다.


세계바둑대회 사상 첫 3패 빅으로 처리될 뻔했던 바둑에서 최철한 9단의 완착(흑 231수)이 나오는 바람에 결국 뤄시허 9단이 승리를 낚았다. 백이 7.5집 승을 거둠으로써 오후 두시 반에 상황 종료.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었건만 KO를 노리던 최철한 9단이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예선부터 한국의 조한승 8단, 송태곤 7단, 이세돌 9단 등 강자들을 연파하며 다크호스로 떠오른 뤄시허 9단은 세계대회 결승에 처음 진출하는 기쁨을 누렸다.


최철한 9단의 패배로 침통하게 잦아들었던 검토실은 오후 4시, 이창호 9단이 197수 만에 후야오위 8단에게 흑 불계승을 거두자 안도의 한숨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반전됐다.

삼성화재배 본선에서만 과거, 두 번이나 후야오위 8단에게 발목이 잡혔던 이창호 9단은 설욕에 성공한 셈이다. 후야오위 8단이 워낙 녹록치 않다보니 바둑은 중반에 접어들 때까지 형세를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마터면 중국 선수 두 명이 결승에 모두 진출할 뻔한, 한국 바둑계로서는 2005년 대미를 씁쓸하게 장식할 뻔했던 순간이 중반 이후까지 연출됐지만, 이창호 9단은 역시 노련했다.

돌부처, 신산(神算)이라는 별칭이 허명은 아니었다. 역시 이창호야,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3번기로 치러지는 결승전은 내년 1월 10, 12, 13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장소는 아직 미정이고 우승 상금은 2억 원이다(준우승 상금 5천만 원).

결승 진출자가 가려지기까지 현장 스케치

a 파라다이스 호텔 8층에 마련된 검토실. 열기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젊은 기사들이 열심히 검토하고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 8층에 마련된 검토실. 열기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젊은 기사들이 열심히 검토하고 있다. ⓒ 이동환

a 인터넷 생중계에 여념 없는 바둑 사이트 관계자들.

인터넷 생중계에 여념 없는 바둑 사이트 관계자들. ⓒ 이동환

a KBS에서 생중계를 하기로 했지만 특집방송 때문에 결국 녹화로 대체했다.

KBS에서 생중계를 하기로 했지만 특집방송 때문에 결국 녹화로 대체했다. ⓒ 이동환

a 일찍 끝난 뒤, 승리의 기쁨에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중국 관계자 앞에서 복기해 보이는 뤼시허 9단.

일찍 끝난 뒤, 승리의 기쁨에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중국 관계자 앞에서 복기해 보이는 뤼시허 9단. ⓒ 이동환

a 이창호 9단의 승리로 바둑이 끝난 뒤, 망연자실한 후야오위 8단과 복기하는 모습. 뤄시허 9단이 뒤에서 예리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창호 9단의 승리로 바둑이 끝난 뒤, 망연자실한 후야오위 8단과 복기하는 모습. 뤄시허 9단이 뒤에서 예리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 이동환


세계대회 결승에 처음 오른 뤄시허 9단은 누구?

ⓒ이동환
1977년 11월 23일에 태어났으며 1989년에 입단했다.

중국 내 랭킹 상위권이기는 하지만 1인자로서는 아직 멀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는 이번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에 오름으로써 이변 아닌 이변을 연출했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각광 받았던 그는 성인이 된 뒤 술을 너무 좋아해 중국 바둑팬들에게 질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이후, 근래에는 술까지 끊고 눈부실 만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의 천재성과 실력이 다시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뤄시허 9단과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준결승 3번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바둑은?
"아무래도 2국이 어려웠다. 지기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물론 3국도 힘들었지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 3패빅으로 재대결이 예상됐는데?
"백 대마를 주고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아무래도 최철한 9단이 실수한 것 같다."

- 결혼 이후 술 끊은 게 아내의 눈물 어린 호소라는 얘기가 있는데?
"누가 지어낸 말 같다. 지난 5월, 의사로부터 무시할 수 없는 경고를 받았다. 아직 젊은 나이에 체중 문제까지… 그래서 술을 끊은 것뿐이다."

-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만나게 됐는데 소감은?
"솔직히 안 만났으면 했다. 이창호 9단이 지금까지 거둔 업적은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여전히 최강자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좋은 승부를 겨루고 싶다."

- 근래 주요 대국에서 똑같은 점퍼를 입고 있는데 무슨 징크스라도? 행운을 가져다주는 옷인가? 그렇다면 결승전에서도 입고 나올 생각인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기도 하다. 결승전에도 입을지는 생각해 보겠다(웃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