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잡는다더니 생사람만 잡네

[해외리포트] 올랜도 남성 사살로 미 항공보안관제 '시험대'에

등록 2005.12.19 10:56수정 2005.12.1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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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연방항공보안관들에 의해 한 승객이 테러범으로 오인 사살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a 선교여행에서 귀환중이던 올랜도 남성이 지난 7일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폭탄위협 혐의로 연방항공보안관들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을 보도한 <올랜도 센티널>. 탑승객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내리는 장면이 보인다.

선교여행에서 귀환중이던 올랜도 남성이 지난 7일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폭탄위협 혐의로 연방항공보안관들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을 보도한 <올랜도 센티널>. 탑승객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내리는 장면이 보인다.

지난 12월 7일 오후 2시 경, 플로리다 마이애미국제공항 올랜도발 아메리칸 에어라인(AA) 소속 여객기 924편의 탑승로에서 승객 리고베르토 알피자르(Rigoberto Alpizar, 44)가 사복을 입은 두 명의 연방항공보안관들에 의해 총 7발을 맞고 사망했다. 당시 승객 전원은 곧바로 출동한 경찰 특수요원들에 의해 머리를 손을 얹은 채 비행기에서 내려 조사를 받은 후 풀려났다.

연방항공보안관들은 알피자르가 폭탄 위협을 했기 때문에 총을 쐈다고 증언했지만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플로리다 경찰당국의 조사결과 테러와도 무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연방항공보안관들의 정체와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총격의 정당성 논란과 함께 항공보안관제도에 대한 재검토 여론이 일고 있다.

승객들 '폭탄' 이라는 단어조차 듣지 못했다

<뉴욕타임스>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코스타리카 출신인 알피자르는 몇 년 전 미국시민이 된 사람으로, 아내 부체너와 함께 플로리다 올랜도 교외의 메이트렌드에 거주했다. 그는 10여 마일 인근의 홈디포에서 일했으며, 아내는 장애인 재활활동을 돕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다.

알피자르는 에콰도르에서 선교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내와 함께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올랜도 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항공보안관들은 그가 '폭탄을 가지고 있다'고 위협했기 때문에 총을 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목격자들의 증언은 이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당시 주변에서 이를 지켜봤던 승객들은 사건 당시 주위에 있었지만 알피자르가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폭탄"이라는 단어조차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a 언론에 공개된 알피자르 부부의 사진.

언론에 공개된 알피자르 부부의 사진.

당시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몇 줄 앞좌석에 앉았던 맥알하니(44)는 <올랜도 센티널>과의 인터뷰에서 "알피자르가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그는 통로로 나가면서 나와 부딪쳤고 다른 스튜어디스들과도 부딪쳤다"며 "그는 단지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알피자르가 폭탄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는 것. 맥알하니는 <세인트피터스버그>와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내용을 증언했다.

"처음으로 '폭탄'이란 단어를 듣게 된 것은 FBI와 인터뷰를 할 때였다. FBI는 계속해서 '소란 중 'B'로 시작하는 들어간 단어를 듣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자 ''Bomb'(폭탄)이란 단어를 듣지 못했냐?'고 물었다. 내가 못 들었다고 하자 '확실하냐?'고 되물었다."


또 다른 승객 메리 가드너도 "나는 그가 폭탄을 가졌다고 소리 지르는 것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연방관리들의 공식발표는 이와 크게 달랐다. 알피자르가 제트여객기의 꼬리 측에 위치한 자신의 좌석에서 일어나 통로로 달려 나갔을 때 기내 보안관이 정지명령을 내렸으나 그가 배낭에 손을 가져가며 폭탄위협을 했다는 것.

자세한 진상은 경찰당국의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지만, 탑승객들의 증언으로 봤을 때 연방항공보안관들은 폭탄위협보다는 알피자르의 이상행동에 테러혐의를 두고 발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행기 안에서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자 알피자르의 부인 부체너는 "알피자르는 조울증 환자다, 약을 먹지 않았다"라고 소리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마이애미 헤럴드>는 알피자르가 선교지에서 상당액의 돈이 들어 있는 지갑과 귀중품을 도둑맞은 이후로 크게 기분이 상해 있었다고 한다.

"비극이지만 승객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이 사건을 두고 보안요원들의 과잉행동이라며 부시행정부의 책임에 대한 비난이 잇따르자 백악관과 관련당국 모두 '적법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a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 NBC > 뉴스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 NBC > 뉴스

스콧 맥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7일 <세인트피터스버그 타임스>에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은 유감이지만 보안관들은 적절한 행동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토안보부 또한 "보안관이 알피자르의 실제 의도를 확인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토안보부 대변인 브라이언 도일은 <에이피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알피자르는 공격적이었고 배낭에 폭탄을 가지고 있다고 협박했다"면서 "보안관들은 소속을 밝힌 후 그에게 엎드리라고 명령했으나 그는 오히려 배낭 쪽으로 접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은 비극이지만 승객들의 안전이 더욱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마이애미 주재 항공보안관 아멧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면 보안요원들이 저격수급의 사격솜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면서 "우리들은 매우 긴장된 상황에서 일하고 있고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보안요원은 알피자르가 보안요원과 승객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믿었던 게 틀림없다"고 보안요원들을 옹호했다.

항공여행연합(ATA)의 데이비드 스템플러 의장은 이번 총격사건이 여행객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보다는 위안을 줬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승객들은 보안관들이 그들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에 거주하는 알피자르의 동생은 <올랜도 센티널> 12월 8일자에 "모든 보안검사를 통과한 그를 그런 식으로 억누를 필요가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항공보안관이 꼭 발포할 필요가 있었는지가 의아스럽다"고 주장했다.

"비행기 안에서 싸울 게 아니라 정보에서 이겨야"

전문가들도 연방 항공보안관 제도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보안관들은 911 테러 이전에는 33명에 불과했으나 그 후 수 천 명으로 늘어났으며 1년에 6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보안책임자로 일했던 더글러스 레어드는 이 제도가 효과에 비해 너무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3만6천 불에서 8만6천 불에 이르는 보안관의 급여를 차라리 정보수집 등에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비행기를 다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테러리스트와 싸울 것이 아니라 정보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항공보안관(Air Marshals)이란?

연방항공보안관은 무장한 채 사복차림으로 승객과 함께 항공기에 탑승하는 안전요원이다. 지원자들은 미국 시민권자여야 하며 심리검사와 의료검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일주일에 네 차례씩 비행하며 한 비행기에 두 명의 보안관이 탑승한다. 그들의 수가 모두 얼마인지도 비밀에 부쳐져 있다.

보안관들은 대부분 군대나 경찰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뉴멕시코 주와 뉴저지 주의 훈련소에서 14주간 훈련과정을 거친 후 미 전역의 21개 장소에서 총기사용법, 사격술, 행위관찰, 위협전술, 접근전 보호술, 비상사태 처리방법 등에 대한 훈련을 받는다.

그들은 시그 사우어(.357 Sig Sauer) 자동권총을 소지하며 비행도중에도 비행기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총격을 가할 수 있도록 훈련돼 있다.

탑승 후에는 오직 승무원들이나 다른 경찰관들만 그들의 신원을 알게 되어 있으며 미 전체 여객기의 5%정도의 여객기에 탑승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근무 중 술을 마실 수 없으며 12시간 국제항공노선을 제외하고는 잠을 잘 수 없다.
연방항공보안관 제도는 196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911 테러이후 항공보안을 위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2년에는 6개월 동안 19만 명의 지원자가 몰렸을 정도. 지원자격은 애국심과 총기사용 능력 여부였다. 지원서는 '임무 수행 중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총기를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할 것을 요구한다.

이번 승객 총격 사망사건은 연방항공보안관 제도가 생긴 이래 보안관이 승객을 향해 발포해서 사망하게 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번 사건 이전에 발생했던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는 2002년 8월, 명령에 응하지 않았던 승객에게 보안관이 총을 겨누었던 사건이었다. 레이크 워스의 의사였던 그 승객은 미국자유인권협회(ACLU)의 도움으로 교통안전국에 소송을 제기해 5만 불의 보상금을 받았으며 정부는 이 사건 후 새로운 고용정책 및 훈련정책을 도입했다.

<조종사에게 물어라>(Ask the Pilot)의 저자이자 '살롱닷컴'에 같은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는 패트릭 스미스는 이번 사건이 연방항공보안관 제도를 처음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고 말한다. 이 제도가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며 연방항공보안관제도에 들어가는 경비를 화물 검색 등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

패트릭 스미스는 여객기 납치범들이 승무원, 조종사, 승객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했던 911과 같은 경우의 테러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크루 드라이버를 들고 서 있는 테러리스트를 상상해 보라, 그는 다른 승객에 의해 바로 제압될 것이다." 또 더글러스 레어드도 "조종실 문 강화장치가 모든 테러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부시행정부와 연방항공보안관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이번 사건을 911 테러 이후 생겨난 미국사회의 피해의식이 가져온 비극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알피자르가 비무장인데다가 혼자인 점을 들어 항공보안관들의 실수였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미국정신과협회는 항공보안관들에게 정신질환 등 이상행동자들을 다루는 법에 대한 훈련을 추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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