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뿔의 노래를 부르는 시인

권석창 시집 <쥐뿔의 노래>

등록 2005.12.21 10:36수정 2005.12.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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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권석창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쥐뿔의 노래>(모아드림·2005)를 펴냈다. 첫 시집 <눈물 반응>(둥지)을 펴낸 지 꼭 17년 만의 일이다. 보통 3-4년 마다 시집 한 권을 펴내는 우리 시단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과작(寡作)의 현상은 그가 시작(詩作)에 게을러서가 아니다. 시를 함부로 써서 발표하지 않는 시인 나름대로의 시적 염결성에 기인한 것이다.

'쥐뿔의 노래'가 무슨 말인가? 그렇다, '쥐뿔도 없는 놈'의 그 쥐뿔(권석창)의 노래(詩)라는 것이다. 권석창 시인의 별명이 '쥐뿔'인데, 이는 그가 80년대 우연히 '쥐뿔'이라는 시 한 편을 쓴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라고 고고한 선비연 하는 것이 아니라 쥐뿔도 없는 사람, 아니 쥐뿔이라고 자기를 한없이 낮춘다.


바로 그러한 자세로 그는 세상 속의 가슴 아리고 괴로운 우리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직히 노래한다. "잘려진 모가지 끌어안고 헝클어져 / 서러운 목숨 서러워하며 / 원망도 없이 원망도 없이 / 상여처럼 워어이 워어이"('풀짐') 울음 우는 풀은 민중의 상징일 것이다. 시집 <쥐뿔의 노래>는 이처럼 힘 없고 가난한 그래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 땅 민중의 삶을 따스하게 위무하는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자주 가던 소주 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은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고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를 따라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 성히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술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 성히 잘 있거라.

- '몸 성히 잘 있거라' 전문


시가 어렵지 않고 참 재미나고 쉽다. 그리고 따스한 감동을 잔잔히 불러일으킨다. '김성희→몸성희→몸 성히'로 변주되는 말의 웃음(fun)은 시집 맨 뒤편에 실린 '밥 사설辞説' '술사설辞説' '떡 사설辞説'에 오면 극에 달한다. 시집을 읽다가 몇 번이나 소리내어 웃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웃음 또한 우리 보통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건져낸 건강한 해학들이다.

'지난 여름' '몸의 소리 해례' '심야의 소주' '자화상' '어느 신부님의 강론' '똥은 향기롭다'와 같은 작품들은 쉽게 쓴 듯하지만 아무나 쓰기 어려운 명편들이다. 나는 그의 열렬한 독자로서 다음 시집이 세상에 좀더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또 십 몇 년간을 기다릴 수는 없다.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등불과 같은 그의 시편들은 소중하다.

쥐뿔의 노래

권석창 지음,
모아드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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