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감한 아이들장옥순
만약에 도시 학교 아이들에게 걸어서 집까지, 눈길에 1시간 반 동안 집에 가야 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아마도 학교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겠죠. 내가 어려서는 눈 속에 풍풍 빠지면서도 학교에 가는 일이 매우 당연했고 발이 시리고 옷이 얇아도 그런 건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우리 반 1학년 짜리 아이에게서 발견한 기쁨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서효야, 집에 도착하면 학교로 전화해. 장한 서효에게 포인트를 몽땅 줄 거야. 자. 가면서 이 사탕도 먹으면서 씩씩하게, 조심해서 잘 가렴. 전화 기다릴게."
"예,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은 집에 안 가세요? "
"응, 내일도 눈때문에 힘들까봐 학교에 있을 거야. 내일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전화 할테니 출발하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렴."
3년 동안 이렇게 눈이 많이 온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 있으면 같이 어울릴 친구조차 없으니 그래도 학교에 와야 좋다는 아이들입니다. 눈이 와서 아빠 차 대신 아빠 손을 잡고 미끄럼을 타며 학교에 와서 매우 신났다는 찬우는 볼까지 빨갛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정보화 시대라고들 하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가 봅니다. 어찌할 수 없다면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즐기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니, 비로소 걱정스럽게 쌓이는 눈이 하얀 쌀가루처럼 보입니다. 백설기를 해먹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집에 전화를 해 보니 무사히 잘 들어가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광주, 전남에 휴교령이 내려졌으니 혼자서 학교를 지켜야 할 모양입니다. 적막함 속에 가끔 짖어대는 까치소리가 머언 옛날 생각이 나게 합니다. 세상도 저렇게 포근하고 깨끗하면 참 좋겠지요?
덧붙이는 글 | 눈 속에 집으로 돌아가는 1학년 꼬마의 당당함이 자랑스럽습니다. 쌀가루가 가득한 교정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겨봅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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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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