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의 길고 긴 불황 터널, '여성'이 살렸다?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김별아·박완서·공지영·한강씨 등 여성 작가 싹쓸이

등록 2005.12.22 12:25수정 2005.12.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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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독특한 여성감수성에 독자들 큰 호응… 전체 순위선 번역본에 밀려 아쉬워


위기가 아니었던 순간이 있었는가. 출판계는 올해 역시 만성적인 위기론에 시달렸다. 독서문화의 퇴조와 출판정책의 부재로 인한 위기가 계속된 것. 하지만 여성의 힘은 강했다. 여성작가의 작품과 여성 관련 도서가 올해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에 등록되고, 육아 관련 도서와 여성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내는 책이 나오는 등 2005년은 출판시장의 핵심에 '여성' 코드가 확고하게 자리잡기 시작한 해였다.

올해 역시 국내의 소설계는 여성이 장악했다. 최근 교보문고가 발표한 '2005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따르면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국내소설은 김별아씨의 <미실>이었다. 이외에도 박완서씨의 <그 남자네 집>이 2위,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3위를 기록했다. 한강씨의 대상작이 수록된 <이상문학상 수상소설집>이 6위, 전경린씨의 <황진이>가 10위를 차지했다.

올 한해도 국내 소설계는 여성작가들의 맹활약이 돋보이는 한해였다. 또 다른 의미의 육아를 강조하는 육아지침서와 인문서 시장에서도 여성바람이 거셌다. 사진위 박완서 작가와 김별아 작가.
올 한해도 국내 소설계는 여성작가들의 맹활약이 돋보이는 한해였다. 또 다른 의미의 육아를 강조하는 육아지침서와 인문서 시장에서도 여성바람이 거셌다. 사진위 박완서 작가와 김별아 작가.우먼타임스
매년 여성작가의 소설은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하고 있다. 여성작가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배어 있는 소설이 출판계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출판계의 주요 소비층인 여성독자들의 독서취향도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대목은 국내소설이 국외소설 번역본에 비해 약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전체소설 1위부터 7위를 차지한 소설은 모두 외국소설이다. 국내 여성작가의 소설도 <다빈치코드> <모모> <연금술사> 등의 번역본의 위세에 눌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출판계 안팎으로 들려오고 있다.

비소설 분야에서도 여성 코드를 읽을 수 있다. 2위를 기록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와 3위를 기록한 한비야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그 예. 여성테마와 여성에세이가 출판계에서 속된 말로 '잘 팔리는' 분야라는 것이 올해도 어김없이 증명된 것이다.


<아이 안에 숨어 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 <평생 성적 초등4학년에 결정된다> 등의 책도 베스트셀러로 꼽혔다. 엄마들의 교육열과 입소문이 교육 및 육아 관련 출판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는 또 다른 의미의 육아를 강조하는 책이 나와 많은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독서를 통해 육아의 지혜를 발견하는 <아이 읽기, 책 읽기>, 딸 키우는 아빠들의 생생육아 지침서 <아버지가 나서면 딸의 인생이 바뀐다>는 성적 위주의 교육·육아 관련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책이다.


여성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실용서들도 한 해 동안 많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부자엄마, 부자아내> <여보! 재테크를 부탁해> 등의 책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잡아낸 실용경제서로 여성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아울러 올해는 여성의 문제를 통해 평등을 이야기하는 문제작들이 출판계의 눈길을 끌었다. 사악함의 대명사였던 요부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한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 엄마에 대한 환상과 모성신화를 부추기는 사회를 비판한 <엄마는 미친 짓이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경계없는 페미니즘> 등의 책은 양성평등 감수성을 담아낸 인문서로 출판계의 여성바람을 이끌었다.

최희영 기자 chy@iwomantimes.com

◆공연계

가족공연물 풍년…복합관 개관도 잇따라

2005년은 가족을 테마로 한, 가족단위의 관객을 겨냥한 공연이 많이 나온 해였다. 가족공연이 방학기간 등을 활용한 한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보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획 공연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가족공연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전문배우와 장애우, 구세군악대와 함께 무대를 만드는 뮤지컬 <크리스마스캐롤>, 가족단위 관객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하는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이 그 예.

가족애를 강조하는 공연은 방학시즌용 이벤트가 아니다. 올해 내내 가족을 소재로 한 공연이 지속적으로 열렸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공연은 연극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였다.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가족애를 강조했기 때문.

올해 5월과 7월 공연된 이 연극은 억척스런 아내와 투병중인 아들, 무능력한 듯하지만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지닌 아빠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굽은 등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세대와 가족을 잇는 <낮은 아비>의 모습은 권위가 아닌 사랑으로 가족구성원과 교류하는 새로운 아빠상을 제시했다.

여성의 문제를 통해 우리네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공연도 눈길을 끌었다. 완경을 맞은 여자들의 유쾌한 수다를 통해 엄마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뮤지컬 <메노포즈>, 다른 직업과 나이지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연극 <토킹위드>는 여성의 행복이 곧 가족의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관객들의 가슴에 새겼다.

방학시즌에 집중적으로 열리던 가족공연물이 연중내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사진 위는 ‘완희와 털복숭이 괴물’와 사진아래 왼쪽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와 ‘가족왈츠’.
방학시즌에 집중적으로 열리던 가족공연물이 연중내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사진 위는 ‘완희와 털복숭이 괴물’와 사진아래 왼쪽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와 ‘가족왈츠’.우먼타임스
가족단위의 관객이 무리 없이 무난하게 감상할 수 있는 소재의 공연도 인기를 끌었다. 모자간의 훈훈한 마음을 전하는 휴먼뮤지컬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베스트셀러 소설의 난해함을 알기 쉽게 풀어낸 <연금술사>,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는 <가족왈츠>, 왕따를 당한 소년이 용기와 희망을 찾게 되는 내용의 <넌 특별하단다> 등이 세대를 뛰어넘는 공연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6월, 어린이 중심의 복합문화예술공간 사다리아트센터가 개관한 것도 가족단위 관객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어린이의 눈높이와 활동성을 고려한 무대 설계로 어린이 관객에게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한 이 센터는 교육연극 <완희와 털북숭이 괴물>, 놀이연극 <니꼬리보까리좌> 등을 공연해 문화예술로 가족애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아이를 봐주는 소극장 '씨어터디아더'가 개관해 가족의 공연감상 기회를 더욱 넓혀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곳은 가족카페와 놀이방 등을 마련해놓은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가족의 권리를 채워줬다. 내년에도 공연을 통해 가족의 행복을 되새길 수 있는 참신한 시도가 계속 이어질지 주목된다.

최희영 기자 chy@iwoma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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