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던 색색의 파도가 서서히 예송리 방파제로 몰려온다.조태용
어머니. 그 이름은 언제 불러도 서럽고 따뜻하다. 열아홉 살에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와서 다섯 아이들을 키워낸 어머니는 나이보다 서너 살은 더 늙어 보이신다.
주름진 얼굴에서 피어나는 환한 웃음이 때로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나이도 이제 곧 환갑이다.
그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겨우 집에서 한글과 셈하는 방법을 알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그 순한 마음씨와 무엇이든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가르침으로 아이들을 길러냈다. 아마 내가 조금이라도 사람 구실하면서 이렇게 자란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간섭하지 않았다. 자기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문제, 회사 문제 그리고 그 어떤 문제든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결정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말했다.
"네가 했다면 옳은 일이겠지."
그녀는 가난한 자의 소박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가난한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다. 모내기철에 간식으로 주던 빵을 먹지 않고 젖은 몸빼에 넣어두었다가 건네주시던 그 투박하고 배고픈 손.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기 대신 돼지비계로 만든 음식을 두고 "맛있지?"라고 그녀는 묻고 있었지만 내 맘속엔 눈물만 흘렀다. 그 비곗살과 살코기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가 느낀 가난한 자의 슬픔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방학 때면 보충수업을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공부하기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보충 수업비를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해서였음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대학교를 다니는 자식에게 집을 떠날 때마다 용돈을 챙겨 주시면서 받지 않겠다던 나와 실랑이 끝에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 주시던 만 원짜리 한 장에 흘렸던 눈물만큼 내 마음도 커 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것이 싫어 집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알고 있을까?
멀어져 가는 버스를 멀리서 바라보던 그 눈빛이 자취방에 들어설 때까지 나의 온 맘을 감싸고 휘감고 요동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용돈을 받지 않게 되고 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어머니의 힘든 노동의 대가를 내가 가져가지 않아도 됨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
대학 4년 내내 학생운동에 몰두하던 나에게 "사람은 나보다는 타인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한 어머니의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와 손을 잡고 걷는 보길도의 아침 바닷가 방파제에서 온갖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빠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