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주세요"

고용안정센터에서 개별연장급여를 받고 있는 62세 실업급여대상자

등록 2005.12.22 19:11수정 2005.12.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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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까 행복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고 마음 속에 있더라고요. 최고에서 바닥까지 떨어져도 봤고 숱하게 좌절도 했지만 결국 행복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먹는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선생님 집에 혹시라도 전기가 고장 나거나 수도, 하수구, 보일러가 안 되면 전화주십시오. 언제든지 달려가 고쳐드리겠습니다."


그의 명함은 특별했습니다. 본인을 알리기 위한 이름 석자도 없었습니다. 단지 '전기, 수도, 하수구, 보일러 불편사항을 무료로 봉사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핸드폰번호가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a 자원봉사 명함입니다.

자원봉사 명함입니다. ⓒ 이명숙

그는 현재 광주종합고용안정센터에서 개별연장급여를 받고 있는 62세 실업급여대상자입니다. 개별연장급여란 취직이 특히 곤란하고 생활이 어려운 수급대상자 중에서 고용보험법상 요건이 충족될 경우 60일 이내까지 실업급여를 연장해 주는 제도입니다.

"선생님, 이 명함 좀 보세요. 제 실업급여 대상자이신데요. 본인도 어렵고 힘들면서 자원봉사를 해 주고 계세요.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사시는지 그 분이 오셨다 가시면 제 마음이 다 환해진다니까요."

실업급여 담당인 박 선생이 건네준 명함 속에는 62세 노년의 따스한 삶이 들어 있었습니다.

박 선생과 김아무개님과의 인연은 올해 5월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경비로 3년을 근무하다 회사 사정으로 이직을 한 후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 김아무개님은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여야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며, 부지런히 일자리를 알아보러 발품을 팔고 다녔습니다. 고령자 일자리들이 대부분 그렇듯, 경비도 나이제한이 55세이거나 많으면 60세까지라 62세면 사실상 취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매번 실패를 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수도나 전기를 고쳐주고, 보일러 수리를 해 주곤 하였습니다.

"형편이 넉넉할 때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어려움이 보이지 않더니, 물질적으로 힘들어지니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하지만 도와주고 싶어도 워낙 가진 것이 없으니 어디 도와줄 수가 있나요. 그러다 생각한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자는 것이었지요. 비록 작은 기술이지만 어려운 이웃이나 필요한 곳을 찾아가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그는 현재 보증금 1300만원인 11평 임대아파트에서 시각장애인 아들과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가장이기도 합니다. 노후대책이라는 말은 먼 나라이야기고 하루 세 끼 챙겨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인 그가 원래 가난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내에서 큰 모텔을 운영했던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주머니에는 가뭄이 들어도 자신의 주머니는 항상 넘칠 줄 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난은 한순간에 찾아왔습니다. 빚보증을 섰던 것이 잘못 돼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나이든 육신과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남루한 일상뿐이었습니다.

a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홍보용 X - 배너입니다.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홍보용 X - 배너입니다. ⓒ 이명숙

하지만 결코 좌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건강만 하면 언제든지 돈은 벌 수 있는 거라 여겼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구직활동 하기를 2개월째, 마침 저희 고용안정센터에서 고령자 구인구직 만남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박 선생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제한이 55세까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적극적이고 열심이니까 인사담당자가 채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 선생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62세에 어렵게 일자리를 찾았으니 이제 건강하게 오래오래 다닐 수만 있으면 좋겠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취업한 지 이틀 째 되던 날,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버렸습니다. 뇌 한쪽이 거의 망가지다시피 해서 수술이 잘 되면 언어상실이나 수족마비가 되고 실패를 하면 마음의 각오까지 해야 될 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도를 했습니다. 제발 깨어나게만 해 달라고. 다행스럽게도 수술 결과는 의사 말에 의하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서 하늘이 도와 준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차츰차츰 호전이 되어가는 것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병원비였습니다. 가해자 측에서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하는 바람에 병원비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주변의 도움으로 처음부터 다시 현장검증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해자의 잘못으로 판정이 났지만 병간호를 할 사람이 없어 결국 그는 취업한 지 이틀만에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관두게 되었습니다. 병원비는 보험회사에서 나온다 치더라도 당장 급한 것이 생계비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인 아들까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실업급여가 종료되면, 생계유지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a 실업급여를 담당했던 박선생입니다.

실업급여를 담당했던 박선생입니다. ⓒ 이명숙


그의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박 선생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자원봉사 명함까지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며 봉사를 실천하는 그 삶이 존귀해 보였습니다. 박 선생은 그 분을 통해 왜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 아무개님과 함께 웃고 울었던 7개월간의 인연이 끝나갑니다. 개별연장급여도 이제 한번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아셨죠. 서울에서는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고용안정센터가 이 곳이거든요. 꼭 찾아가 보세요."

당분간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가는 그 분에게 가까운 고용안정센터를 안내해 드리며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박 선생의 마음은 아프기만 한가 봅니다.

'사고로 누워 있는 아내도 어서 빨리 회복이 되고, 희망을 잃지 않은 김아무개님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되는데... 그래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요'라며 명함을 만지작거리는 박 선생의 눈가가 어느새 젖어 있었습니다.

고령자 일자리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갈수록 노후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대책이 없는 노년의 삶은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고령자에게도 일자리를, 일 할 수 있는 노년을 위해, 저희 직업상담원들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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