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8개월간의 신혼여행, 그 기록

다카하시 아유무의 <러브앤프리>를 읽고

등록 2005.12.24 11:50수정 2005.12.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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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면 여행을 하지 마라!"

책장을 넘기다가 이 짧은 문장에 '흡' 하고 숨을 멈추고 한동안 서 있었다. 짜릿한 전율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한 마디의 말에 살맛을 느끼고, 누군가의 한 마디에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고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비관적으로 생각해오던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삶을 긍정하며 누군가의 그 말 한 마디에 절망으로 죽는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사랑을 하며, 누군가의 한 마디에 미움과 증오를 품으며 누군가의 한 마디에 기적처럼 살아간다.


a 책표지

책표지 ⓒ 동아시아펴냄

<러브 앤 프리(Love&Free/다카하시 아유무/차수연옮김/동아시아 펴냄)는 일본 명문대학을 중퇴한 다카하시 아유무는, 록가수와 바를 경영하며 쓴 글을 모아 책을 낼 출판사를 찾았으나, 마땅한 출판사를 만나지 못하자 아예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가 잘 돌아가자 손을 떼고 사랑하는 여자와 연애 끝에 26살에 결혼을 했고 오대양육대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 기간은 1년 8개월, 바로 그 기록을 책으로 담아 펴냈다.

바로 그 책이 '자기를 찾아 떠나는 젊음의 세계 방랑기'라는 부제가 붙은 <러브 앤 프리(love&free)>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 10만 부 넘게 팔렸다 한다. 갓 결혼식을 마친 다카하시 아유무는 그의 새 신부와 발길 닿는 대로 세계 곳곳을 누볐다.

세계 이곳 저곳의 카페, 해변, 버스정류장, 싸구려 민박집 등에서 그는 '마음의 우물을 파는 기분으로' 시를 노래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온 책이다.

여행에 관한 내용이지만 친절한 여행에 관한 정보는 없다. 작가의 내면적인 여행기록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둘이 여행하며 적은 '둘의 자유'라는 글이 재미있다. 그리고 부럽다.

"내가 하품을 하면 그녀에게 옮을 확률은 80%, 내가 방귀를 뀌면 그녀가 화낼 확률은 90%. 그만큼의 거리로 우리 둘은 긴 여행을 계속 하고 있다. 둘이서 신나게 떠들고 싶은 밤이 있으면 혼자 조용하게 취하고 싶은 밤도 있다. 둘이서 어깨를 기대고 싶은 밤이 있으면 혼자 차가운 바람을 맞고 싶은 밤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혼자의 자유'가 아닌 '둘의 자유'를 찾기 시작한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영원한 여행'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진실로 마주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둘이면서 하나로, 둘이 함께 하는 여행. 아름답다. 흑백사진과 짧고 감성적인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흑백사진 아래 감성적인 그의 글에서 쉼표처럼 여백이 느껴져서 좋다. 화려한 수사도, 지적이고 탄탄한 문장이 아니라 여행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끄적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책을 펼쳐 든 사람의 마음의 우물에 소리 없이 용해된다. 가볍고 편안하다. 하지만 오래오래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다. 손 안에 들어오는 책, 볼에 보조개가 패일 정도로 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한 여자아이가 노란 표지에서 웃고 있는 이 책은 여행갈 때 가볍게 들고 가면 좋을 듯하다. 읽고 나중에 다시 꺼내어 읽어도 기분이 왠지 좋아질 것 같은 책이다.

책 리뷰를 쓰기보다는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된다면 직접 사서 손에 들려주고 싶은 선물하기 좋은 책인 것 같다. 26살의 한 젊은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용기있게 밀어붙이고 자기의 직관에 따라 행동하는 그가 부럽다.

'어릴적, 자전거를 갖고 나서 온 동네가 내 놀이터였다. 열여덟, 바이크를 갖고나서 온 도시가 내 놀이터였다. 지금, 나는 '시간'을 갖고 나서 온 세계를 내 놀이터로 삼으려 한다. 어릴 적부터 새로운 놀이터를 찾아내고 새로운 놀이를 만드는 것은 내 특기였다. 변한 것은 없다. 도구가 바뀌고 나이를 먹어가며 노는 것이 더 넓어졌을 뿐, '어이, 친구 오늘은 뭐하고 놀지?' 이 말처럼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자극하는 말은 없다.'


'잔재주를 부리는 기교는 필요 없다. 과장된 비평이나 해설도 필요 없다. 사는 것이 예술이다. 죽을 때 '나'라는 작품에 감동하고 싶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마음에 쉼표를 찍고 싶어지는 순간순간, 손 안에 들어오는 이 책을 꺼내보며 내면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 끝으로 책 속에 실린 짧고 아름다운 글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며 마침표를 찍을까 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어루만지기보다 한 사람의 가슴을 도려내듯 절절한 표현을 하고 싶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향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슬로우 볼을 던지는 것보다 오직 거기에 있는 당신을 향해 광속구를 던지고 싶다. 보편적인 작품으로 밀리언셀러를 만들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코무로 같은 보편성이 아니라 레논 같은 보편성을 찾고 싶다. '한 사람'에 대한 깊고 강렬한 사랑이 가져다주는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싶다. 인간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뜨거운 것은 오늘도 어제도, 동양도 서양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Love & Free 러브 앤 프리 - 스무 살, 세상의 길목에서 나와 마주하다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이동희 옮김,
에이지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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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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