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혼자 두고 구정 설 쇠러 한국 갑니다

가지 말라고 좀 붙잡아 주지...

등록 2005.12.24 12:11수정 2005.12.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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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무척 마음이 설렜다. 지난 추석때 너무 외롭게 보내서 그런지 구정 설에는 북적북적한 사람 기운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남편 회사 역시 구정 때만 한국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은 갈 수 없게 되었다.


아버님 첫 제사가 내년 5월인데 첫 제사 때는 온 가족이 다 참석하라는 아주버님의 말씀이 있었다. 구정 휴가를 쓰면, 분명 아버님 제사 때 휴가 얻기가 힘들 것이기에 구정휴가를 제사때 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나와 아이들만 가게 되었다.

a 크리스마스 트리앞에서 장난치고 신나하는 딸들과 남편, 헤어져있는동안 서로  많이 그리워할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앞에서 장난치고 신나하는 딸들과 남편, 헤어져있는동안 서로 많이 그리워할것 같습니다. ⓒ 전은화

이 결정을 내리는데 많은 시간 고민을 했다. 나는 혼자 아이들 데리고 나가는것이 힘들 것 같아 남편과 같이 구정때 나갔으면 했고, 남편은 형의 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아버님 제사 쪽을 택했다. 그 일로 적잖은 언쟁이 있었다. 그러던 며칠 전 밤, 둘이 심각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야, 분명히 제사 때 휴가는 엄청 짧게 줄 건데 그냥 구정때 가면 안돼? 그냥 당신이 제사 때는 힘들 것 같다고 아주버님께 잘 말씀 드려보면 되잖아."
"다 핑계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다. 나는 구정이나 제사 때나 다 가고 싶은데 회사가 그렇게 안 되니 어쩔 수 없잖아."
"…."

"은화야, 그냥 이번 구정때는 네가 고생스럽더라도 애들 데리고 나갔으면 좋겠다. 가서 제사때까지 한 3개월 지내면서 소연이 친구도 좀 사귀게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아."
"나도 가서 있으면 좋기는 한데 당신 혼자 지내는 게 걱정돼서 그러지. 애들도 이제 막 아빠 찾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남자가 혼자 너무 잘 사니까 그것도 좀 그렇구만."
"하하하, 걱정마~. 사실 나 아버지 제사 꼭 참석하고 싶다. 임종도 못봐서 그런지 이상하게 첫 제사 때 꼭 가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

나와 아이들 그리고 한국의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여 자꾸만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든다. 남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심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가지 말라고, 그냥 같이 지내자고 붙잡아 주길 바랐다. 이런 생각 하는 내가 참 이기적인것 같기도 하다.


이제 막 애들이 피우는 재롱에 즐거워하는 남편이 썰렁한 집에서 혼자 출퇴근할 것을 생각하니 혼자 두고 가는 발길이 참 무거울 것 같다. 유일하게 나의 억지스러운 투정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남편과 또 몇 개월씩 떨어져 살아야 한다니 이건 아마도 하늘이 우리 부부에게 또 다시 풋풋한 연애감정을 되살려주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억지스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제 결정했으니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몇 달 동안 식구들과 재미난 추억도 많이 만들고 우리 딸 소연이와 말 통하는 친구들과도 실컷 어울리게 해야겠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도 만나러 다니고, 동생들이랑 수다도 맘껏 떨어야겠다. 좋은 것만 생각하니 쓸쓸해 할 남편은 아랑곳없이 마음이 마구 들뜬다. 벌써부터 이런저런 계획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돈다. 이제 가는 날짜만 기다려진다.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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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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