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울려퍼진 사랑의 '메아리'

사랑을 실천하는 창원지방법원 목련회

등록 2005.12.24 19:34수정 2005.12.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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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책상 앞에는 어제 재판한 기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마음이 바빠 급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데, 눈이 침침합니다. 아직 노안이 올 나이는 아닌데, 이것이 직업병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a '사랑의 찻집' 입구

'사랑의 찻집' 입구 ⓒ 한성수

그런데 낭랑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옵니다.

"지금 식당에서 '사랑의 찻집'이 열리고 있으니, 잠시 동안 오셔서 편안한 휴식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바쁜 업무로 잊고 있었는데, 우리법원 목련회에서 '사랑의 찻집'을 연다는 그날인가 봅니다. 조금 있으니, 산타모자를 쓴 다섯 명의 직원이 각 사무실을 돌면서 참여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찻집으로 오십시오! 차도 있습니다! 떡도 있습니다! 귤도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세 명의 줌마와 두 명의 남성 도우미는 멋있는 하트를 두 손으로 연출합니다. 직원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를 합니다.


a 메뉴-정성껏 준비했어요

메뉴-정성껏 준비했어요 ⓒ 한성수

기록을 대충 정리하고, 나는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입구는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장식을 해서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와 어깨를 들썩이게 합니다. 풍선은 계단을 따라 찻집까지 이어집니다. 입구에는 역시 빨간 산타모자를 쓴 '줌마 산타'들이 공손히 인사를 합니다. 나는 쑥스러워서 손사래를 칩니다.

안내한 자리에 앉으니 메모판을 든 줌마 산타가 다가섭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뭘 드시겠습니까?"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너무나 화사하게 웃는 그녀는 미경님입니다. 나는 메뉴판을 보고 유자차를 주문합니다. 상위에는 떡과 귤이 놓여 있습니다. 차가 나오기 전에 떡을 입에 넣는데, 사랑이 담겨있어서인지 맛이 고소하면서 달콤합니다.

a 찻집안을 들여다 보니

찻집안을 들여다 보니 ⓒ 한성수

영광스럽게도 회장님이 직접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는 회장님께 궁금한 것을 몇 가지 물어봅니다.

"창원지방법원 목련회(회장 최현미)는 24년 전인 1982년에 만들었어요. 우리법원 여직원들의 모임인데, 현재는 모두 55명입니다. 우리는 매년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우리지역에 있는 동보보육원, 양로원인 성심원, 홍익재활원을 격년으로 방문하며 도와왔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수십 년 동안 봉사를 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올해 이런 행사를 개최한 계기에 대해 묻자 회장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저희 창원지방법원장님의 권유와 격려가 계기가 되고, 큰 힘이 되었어요. 매년 빠듯한 살림살이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행사로 적지 않은 성금이 마련될 것 같아 가슴이 설레네요."

a 모금함- 얼마나 들었을까

모금함- 얼마나 들었을까 ⓒ 한성수

회장님은 홍조를 띄며 웃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예상 모금액에 대해 물어봅니다.

"티켓 수입하고, 모금함에 든 돈을 계산해봐야 알겠지만 행사경비를 빼면 200여만 원은 넘을 것 같아요. 그 돈으로 장애시설에 가습기 10대 정도를 기증하고, 수녀 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 신마산에 있는데, 그곳에도 도울 생각이에요."

모금함 안을 살펴보니, 제법 많은 지폐가 쌓여있고 봉투도 몇 보입니다.

"사실, 저희들이 처음 시작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회원들이 얼마나 열성적인지,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마 좋은 일을 해서 몸을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총무(김정희)님에게 손짓을 합니다. 우리는 같은 과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자리이웃입니다.

"오매, 죽겄네. 나는 오늘 12시 반부터 여섯시까지 주방에서 뛰어 다녔어요. 내 34년 살면서 이리 오랫동안 부엌일 하기는 처음이네. 우리는 주문담당, 써빙담당, 주방담당으로 역할을 분담했어요. 또 주방담당은 대추차는 누구, 유자차는 또 누구로 해서 세분화했어요. 그런데 어찌나 손발이 척척 맞는지 일하는 것이 고되면서도 재미있어 죽겠어요."

그녀는 박수를 치면서 깔깔 웃습니다.

"풍선은 정희언니가 아는 분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고, 제가 시장을 보았어요. 행사경비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신경을 썼어요. 또 행사 도우미는 손님과 구분하기 위해 모두 산타 모자를 썼어요."

말을 하다가 총무님은 '정리를 해야한다'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사실 저희들이 행사는 주관하지만 직원들이나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원장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우리노조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어요.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회원들이 모두 '보람을 느낀다'며 적극적이어서 여건만 허락한다면 매년 계속할 생각이에요. 올해는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했지만 이제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년에는 좀 더 익숙해져서 잘 할 수 있겠죠."

a 마무리도 깔끔하게

마무리도 깔끔하게 ⓒ 한성수

회장님의 말을 듣고 문을 나서자, 다시 '산타 줌마'들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배웅을 합니다. 아마 오늘 법원을 찾은 민원인들은 낯선 법원의 모습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타 줌마'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알고, 그녀들에게 매료되어서 따스한 감동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a 우리법원 뜰 앞의 수줍은 목련(작년 봄에 찍은 사진임)

우리법원 뜰 앞의 수줍은 목련(작년 봄에 찍은 사진임) ⓒ 한성수

바깥날씨가 차가워서인지 창원법원 목련회의 '사랑의 찻집'은 더 따스했습니다. 목련회의 이름처럼 그녀들은, 차가운 겨울을 깨치고 가장 먼저 찾는 하얀 목련을 꼭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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