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또 쌌어요? 누나랑 피박이에요!"

[2005 나만의 특종] 크리스마스 밤 신나는 우리 집 고스톱판

등록 2005.12.26 14:56수정 2005.12.2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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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처음에는 딸아이가 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딸아이가 따기 시작했습니다. ⓒ 한명라

크리스마스인 어제에도 우리 가게는 영업 중이었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가족들, 혹은 연인들과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게 앞 거리를 오고 갑니다. 그런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던 저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오늘 크리스마스인데 우리도 가게 문 닫고, 아이들이랑 외식도 하고 노래방도 갈까?"

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이 100원짜리 동전 3000원을 챙겨 주면서,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 오늘은 10시쯤 가게 문 닫고 들어가서 아이들과 고스톱이나 쳐야겠다"

"웬 고스톱?"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정신적으로 얼마나 성장이 되어 있는지 테스트도 할 겸…" 하고 남편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몇 해 전 아이들과 남편이 벌였던 고스톱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아들 딸에게 고스톱을 가르친 남편


2년 전인가? 우리 집 어느 곳에선가 화투를 찾아낸 딸아이가 남편에게 고스톱 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아이들에게 고스톱 치는 법과 점수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아이들과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장난처럼 시작하더니, 점에 100원씩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차차 판을 거듭할수록 돈에 대해서 남다른 욕심이 많은 아들아이가 돈을 잃어가면서 짜증을 내기도 하고, 억지를 부리더니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저로서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애하고 어른하고 똑같으냐고, 적당히 할 것이지 아들의 코 묻은 돈을 끝까지 따려고 하느냐는 저의 질책에 남편은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게임에 졌으면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공부야.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이기고만 살 수 있어? 아무리 고스톱이라지만 졌으면 남자답게 깨끗하게 패배도 인정을 해야지…."

"웬일이래, 내가 '고신' 들렸나봐"

예전의 고스톱과 관련된 일이 떠오른 순간, 아마 남편은 몇 해 전 아들아이가 보여 주었던 그 모습에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나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년 전인 2004년 9월 상업지역 안에서 마트를 개업하면서, 보통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가게 문을 닫는 남편입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 한 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밤 10시에 집에 들어온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저는 남편이 집에 들어서면 곧 바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저녁밥을 새로 안쳤습니다. 냉장고에 있던 상추도 씻고, 김치도 새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삼겹살도 구웠습니다.

아이들도 모처럼 아빠와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는 사실이 즐거운지 들뜬 표정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과 고등어 무 조림, 금방 구운 삼겹살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자, 저녁 설거지가 끝나기도 전에 거실 한가운데에는 고스톱 판이 벌어졌습니다.

a 슬슬 돈을 따기 시작한 딸아이는 양말과 슬리퍼까지 벗었습니다.

슬슬 돈을 따기 시작한 딸아이는 양말과 슬리퍼까지 벗었습니다. ⓒ 한명라

아이들은 2년 전에 배웠던 고스톱은 이미 잊어버렸기에, 아빠에게 다시 고스톱 치는 방법과 점수 계산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의 처음 판돈으로는 월요일에 받을 다음 주 용돈이 미리 지급되었습니다. 점에 100원씩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웬일인지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계속해서 돈을 땄습니다. 딸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 듯 연신 "엄마, 아빠 이게 웬일이래요? 제가 고신(고스톱신)이 들렸나봐요~"하고 즐거워합니다.

우리가 아빠 돈 땄어요!

a 어디보자...지금 내가 얼마를 잃은 거지? 아이들이 남은 돈을 헤아려봅니다.

어디보자...지금 내가 얼마를 잃은 거지? 아이들이 남은 돈을 헤아려봅니다. ⓒ 한명라

a 딸아이는 미리 받은 용돈 6000원에서 이만큼이나 땄습니다.

딸아이는 미리 받은 용돈 6000원에서 이만큼이나 땄습니다. ⓒ 한명라

2년 전 돈을 잃을 때마다 속이 상해서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아들아이는 이번에는 웬일인지 돈을 잃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표정이 밝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 본 남편은 "음, 이제는 나이를 더 먹어서인지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을 했구만" 하고 뿌듯해 합니다.

누나인 딸아이도 "엄마, 승완이가 이제는 옛날처럼 울지도 않고 떼도 안 쓰네요?" 하고 달라진 동생의 모습에 놀라워합니다.

잠시 후 아들아이는 그래도 자꾸만 돈을 잃자 도저히 안 되겠는지 누나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합니다. 누나가 자리를 바꾸어 주지 않자 결국 아빠와 자리를 바꿔 앉더니 서서히 그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a "자, 아빠 떼세요~" 모처럼 돈을 딴 아들아이의 표정이 밝습니다.

"자, 아빠 떼세요~" 모처럼 돈을 딴 아들아이의 표정이 밝습니다. ⓒ 한명라

a "또 한번 따 볼까?" 아들아이의 각오가 대단합니다.

"또 한번 따 볼까?" 아들아이의 각오가 대단합니다. ⓒ 한명라

홍단이니, 청단이니, 쌍피니… 가리지 않고 화투장을 쳐대는 누나와는 달리 아들아이는 광(光)으로만 단숨에 빨리 끝내려고 합니다.

흔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아들아이는 결국 저의 도움으로 3장짜리 화투를 흔든 후, 아빠가 싸놓은 두 무더기를 모두 거둬 오는 바람에 아빠와 누나는 동시에 피박까지 써야 했습니다. 아들아이는 그 한판으로 본전 회수는 물론이고 원금보다 몇 천 원은 더 벌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 시작된 아빠와 아들, 딸 사이의 고스톱 판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딸아이는 3000원을, 아들아이는 6000원을 땄다고 즐거워합니다.

"정말 대단한 가족이다. 아빠와 자식들이 서로 돈내기 고스톱을 치는 세상이라니…."

"아휴~ 엄마는… 아빠가 저희들에게 용돈을 주시려고 일부러 그러셨지, 설마 저희들 돈을 따려고 그러셨겠어요~"

"맞다, 맞아!"

누나의 이야기에 장단을 쳐대는 아들.

이렇게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a 새해에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은빈이. "은빈아~ 새해에도 몸 건강해야 한다~"

새해에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은빈이. "은빈아~ 새해에도 몸 건강해야 한다~" ⓒ 한명라

a 여전히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승완이. " 승완아~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새해에도 건강하고, 할아버지께 안부 전화 자주 하기다"

여전히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승완이. " 승완아~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새해에도 건강하고, 할아버지께 안부 전화 자주 하기다" ⓒ 한명라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얼굴을 대하고 살다 보니, 우리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철부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느 사이에 엄마 아빠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의 키가 훌쩍 자라 있었습니다.

아빠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왜 자신들과 함께 고스톱을 하자고 했는지 그 이유까지 헤아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올 한해에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 주어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a 또 한해가 아쉽게 저물어갑니다. 새해에도 모든 분들 하시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소원성취하시길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 한해가 아쉽게 저물어갑니다. 새해에도 모든 분들 하시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소원성취하시길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한명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5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모든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도 남은 한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여러분 가정마다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여러분 마음마다 이루고자하는 소원들이 새해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올해의 우리 가족의 특종을 뽑아 올린 현장에서
이상 한명라 시민기자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05, 나만의 특종"

덧붙이는 글 "2005, 나만의 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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