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도 그의 책을 뺏을 수 없었다

오스네사이에르스타드의 <카불의 책장수>

등록 2005.12.27 10:36수정 2005.12.27 11:35
0
원고료로 응원
a

<카불의 책장수> 표지 ⓒ 아름드리미디어

우리에게 70, 80년대는 끊임없는 민주화 투쟁으로 피의 역사나 다름 없었다. 대학생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독재적인 정권에 대항하며 데모를 했다. 이에 정부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하여 대중매체를 검열하거나 이용해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선동하는 등 자유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이를 반증하듯 드라마와 음악, 영화 등은 여러 가지로 제재를 받으며 금지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침이슬>을 부른 양희은의 대부분 노래는 금지곡으로 그 당시 저항 가요로 유명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으로 시작되는 '아침이슬'은 정치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재 시절이던 1975년에 금지 사유 없이 금지곡이 되어 대학가에서는 저항 가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영화도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공정보도를 해야 하는 언론이 검열을 받으며 정부가 원하는 대로만 굴러갔으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그 시기를 거쳐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렸으니 참으로 많은 발전이라 할 수 있겠다. 질적인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중이 주인이 아닌 나라들이 있다. 우리 한민족 북한을 보더라도 아직도 독재정권 하에 식량 부족으로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그나마 전쟁으로 얼룩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

미국은 평화주의를 외치며 자신들의 이익에 해당하는 곳에서만 평화지원군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평화지원군일까 의심스럽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공포의 땅, 저주의 땅이라 불리는 곳, 아프가니스탄. 기근에 허덕이는 난민,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지옥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곳 가운데 위험을 무릅쓰며 책을 파는 책장수가 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술탄 칸'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술탄 칸의 가족 이야기 <카불의 책장수>다.

이 책은 노르웨이 출신 여성 종군기자 오스네사이에르스타드(35)가 썼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고, 그 해 10월 미국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테러 비호 세력으로 지목해 대대적인 공습을 때린다. 그녀는 2002년 봄 카불에서 책장수로 살아가는 술탄 칸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무른다.

저자는 아비규환인 그곳에서 신념으로 똘똘 뭉친 '자유 사상가' 술탄 칸을 조명하면서 아프칸의 실상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그리고 있다. 저자는 아프간의 정치적 격동과 국가의 재건, 이스람 문화의 바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빈곤, 여성 문제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카불의 방 네 칸짜리 아파트에서 홀어머니와 두 아내, 다섯 아이 그리고 피붙이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거느린 책장수 술탄 칸. 격변의 한 가운데서도 가혹한 시련을 견뎌내면서 이 일가족은 여전히 일하고, 쉬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혼례를 치르고, 갈등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일상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술탄 칸은 30년간 서적 일을 하고 있다. 책을 뺏기고 불태움을 당하면서도 책 파는 것을 멈출 수가 없던 그는 여러 정권의 검열과 맞서 싸우며, 감옥까지 가야 했다. 정말 대단한 책장수였던 것이다.

심지어 탈레반 최고 지도층의 협박에도, 문화부장관에게까지 불려가면서도 그는 책을 향한 집념을 굽히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도 책을 구해다 주며 탈레반의 출판물까지도 판매한다. 코란 이외에는 모든 출판물의 필요성이 배제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책장수 술탄 칸은 누구나 알고,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모든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고 싶어 했다.

"당신네들은 내 책을 불태우고 내 삶을 짓밟고 내 목숨을 앗아 갈수는 있을지 몰라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만은 절대 파괴하지 못 할 거요"
- 본문 중


그가 이렇게 책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은 가난한 학창 시절 때문이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배우지 못한 게 한이었던 부모는 술탄을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를 보내기 위해 일했고 술탄 또한 벽돌을 구우며 돈을 벌어 공부했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실제 받는 임금의 반만 받는다고 속였다. 책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술탄은 1970년대에 작은 책방을 열었고 무자헤딘과 공산주의자의 간행물을 똑같이 판매했다. 수집광인 그는 악착 같이 책을 모았고, 고객이 원하는 책은 꼭 구비해 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금지된 책은 숨겨서라도 갖추었다. 9·11 테러가 일어나 탈레반이 힘없이 무너지자 그는 원하는 책을 마음껏 판매하게 됐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앞서 이야기한 독재정권 시대의 우리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의 기쁨도, 슬픔도 하나가 된다. 그래서 더욱 더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소설 형식을 빌리고는 있지만 저자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담아 책장수 가족을 둘러싼 일상의 세계를 속도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여성과 빈곤 문제, 이와 더불어 전통과 현대의 갈등,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대립, 광적인 종교 근본주의, 위선적이고 잔학한 군벌들과 무능한 위정자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야욕 같은 더 큰 범주의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속박하고 있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사랑은 금기다. 지하에서 펴내는 시집에는 이런 피어린 절규가 담겨 있다.

"손을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우리 함께 초원에 숨어요/ 사랑하거나 칼 아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이 책은 단순한 감동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다른 나라의 이웃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제 개인적인 소견을 올리기 위해 가입을 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판도라의 상자' 만지작거리는 교육부... 감당 가능한가
  2. 2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3. 3 쌍방울이 이재명 위해 돈 보냈다? 다른 정황 나왔다
  4. 4 복숭아·포도 풍년 예상되지만 농가는 '기대반, 걱정반' 왜냐면
  5. 5 환경부도 "지켜달라"는데 멈추지 않는 표범장지뱀 강제 이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