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내린 월출산에서 사랑을 추억하다

[나의 사랑, 나의 남도4 ] 월출산 눈꽃산행

등록 2005.12.27 12:07수정 2005.12.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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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황사지 약수터에서 등산객이 물을 떠마시려 하고 있다

천황사지 약수터에서 등산객이 물을 떠마시려 하고 있다 ⓒ 김정수

2002년 12월 영암의 처갓집에서 1박을 하고 해남지역으로 취재를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튿날 영암에 첫눈이 내렸는데, 함박눈이 내린 후라 운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가까운 월출산으로 일정을 변경한 것이다. 4륜구동이라 체인없이도 운전을 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눈길을 조심스럽게 달리며 20여 분만에 매표소에 도착했다. 월출산은 높이 809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으로 산 전체가 수석 전시장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이 곳곳에 솟아있어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백제의 왕인박사와 신라 말 도선국사의 탄생지로 유명하며, 호남의 소금강산이라 불리는 명산이다.


a 등산로와 이어지는 철계단 주변의 설경

등산로와 이어지는 철계단 주변의 설경 ⓒ 김정수

이곳은 또한 작가에게 각별한 추억이 있는 산이다. 영암은 지금의 아내의 고향으로 작가가 연애시절 마산에서 약 240km를 달려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찾아갔던 곳이다. 도갑사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찾아갔던 곳이며, 무위사와 월출산강진차밭, 경포대에도 다녀왔다.

월출산 천황사 지구의 구름다리도 함께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시간을 못 내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혼자서 산행을 하게 되었다. 월출산 천황사 지구는 고산윤선도 월출산시비, 영암아리랑 노래비, 조각공원, 구름다리 등 많은 명소가 자리한 곳이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에는 영암아리랑 노래비며, 고산윤선도 월출산시비를 찾지 못했다. 온통 새하얗게 뒤덮인 눈에 시선을 빼앗겨 못 찾고 지나친 것이다.

a 월출산 아래의 눈으로 뒤덮힌 논밭

월출산 아래의 눈으로 뒤덮힌 논밭 ⓒ 김정수

눈덮힌 산길을 20여분 올라가자 천황사다. 아니 천황사터다. 주차장에서 400m 거리인데 눈길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허허벌판에 눈만 수북이 쌓여 있다. 알고 보니 2001년 4월에 화재로 인해 불에 타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약수터만 남아있고, 한켠에는 토종벌을 키우는 벌통이 나란히 서있다.

물을 한모금 마셨다. 시원하고 깔끔한 물맛이 참 좋다. 이후에 식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물을 받아두어야 산행이 한결 수월하다. 천황사터를 지나자 본격적인 눈꽃산행이 시작되었다. 눈꽃을 뒤집어선 나무며, 등산로의 풍경이 눈이 부시다. 발아래 펼쳐진 하얀 들판의 모습 또한 정겨움이 넘친다. 멀리 보이는 4차선 국도는 주말마다 아내를 만나기 위해 달려왔던 길이다.

a 월출산 설화

월출산 설화 ⓒ 김정수

월출산 설경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미처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메라가방까지 메고 올라오기가 어려웠다. 눈덮힌 겨울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탓에 부담감이 크다. 하지만 수동카메라와 망원렌즈를 차에 두고 온 게 큰 아쉬움이었다. 마산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영암은 눈이 안 온 상태였는데다, 원래 일정에는 산행이 없다보니 아이젠은 생각도 못했다. 아침 일찍 월출산천황사지구에 도착했을 때는 문을 연 가게가 없어 이곳에서도 아이젠을 구할 수가 없었다.


디지털카메라로만 촬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렌즈교환식인 SLR 디카를 사용하지만 당시만해도 400만 화소급의 자동식 디카였다. 저 멋진 풍경들을 망원렌즈로 당겨서 찍어야 더욱 더 생생하게 와 닿을텐데... 다시 내려가서 카메라를 가져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등산로의 상태로 봐서는 역시 무리다.

a 월출산의 설화

월출산의 설화 ⓒ 김정수

철계단을 여러 차례 지나서야 구름다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약 1.5km거리이다. 등산정보를 살펴보면 대부분 40분~1시간 정도면 구름다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 전문등산인을 제외하면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난코스가 많다. 겨울철에는 특히나 아이젠없이 오르기가 어려운 구간이다. 거의 2시간 만에 올랐다.


역시나 구름다리는 장관 그 자체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곳, 월출산에 여러 차례 왔으면서도 이제야 오게 된 것이다. 이제껏 보아오던 월출산의 다른 풍경들과는 역시 비교가 안된다.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내내 어린아이처럼 “와, 와” 하는 함성을 질러댔다. 원래 눈 덮인 겨울산을 제일 좋아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우리라.

a 월출산 구름다리의 설경. 구름다리는 영화 [엄마]의 촬영지였던 곳이다.

월출산 구름다리의 설경. 구름다리는 영화 [엄마]의 촬영지였던 곳이다. ⓒ 김정수

건너가면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암봉 역시 하얀 눈으로 덮혀 있어 눈부신 풍경을 만들어낸다. 구름다리를 다시 돌아오면서는 아래의 협곡을 바라보며 건넜다. 다리의 높이가 120m지만 많은 산행경험 덕분인지 어지럽지는 않다. 협곡 사이에는 수많은 철계단이 바람폭포가 있는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는데, 역시나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구름다리를 한차례 왕복한 후에야 카메라를 꺼냈다.

다시 구름다리를 건너며 암봉의 설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구름다리 위쪽에는 가파른 철계단이 계속 이어져 있는데, 이곳에 올라 바라보는 구름다리의 풍경이 더 장관이다. 구름다리의 주변의 설경을 카메라로 제대로 담아내기에는 역시 이곳이 좋다. 이곳에 서니 역시 수동카메라에 대한 아쉬움이 더해진다.더구나 첫눈이 내린 직후라 더없이 맑은 눈의 빛깔이 너무나 좋다. 수동카메라의 슬라이드 필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상황인데, 이토록 눈이 시린 비경 앞에서 400만 화소 디카로는 아무래도 2% 부족한 사진이다.

a 월출산 구름다리의 설경

월출산 구름다리의 설경 ⓒ 김정수

생각 같아서는 천황봉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구름다리 위쪽의 철계단은 더 위험하다.참고로 구름다리에서 천황봉까지는 1km 거리이다. 예전에 지리산에서 무리하게 겨울산행을 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내가 준비된 여행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해야지만 즐거운 여행이 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고,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1996년의 지리산 겨울야간산행(필자의 기사 ‘야간산행에 길을 잃고, 유서를 쓰다’ 참고) 이후 작가는 한동안 등산을 멀리하게 되었으며, 거의 3년 동안 겨울에는 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사실 여행작가로 데뷔하고 2년이 지나서야 산청 황매산의 설경을 촬영하러 다녀온 것을 제외하곤 겨울산에는 거의 간적이 없다. 등산광이었던 필자가 여행작가가 되면서 오히려 산행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a 구름다리 아래로 보이는 협곡과 철계단이 눈에 뒤덮혀 있다

구름다리 아래로 보이는 협곡과 철계단이 눈에 뒤덮혀 있다 ⓒ 김정수

천왕봉 정상의 설경도 담고 싶었지만 아이젠이 없는 관계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다시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아래의 협곡을 카메라에 담았다. 출렁대는 다리의 난간에 기대어 90도 각도 아래의 협곡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은 생각 외로 어렵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댄다. 한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셔터를 눌려다 보니 나중에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예전에 내가 활동하던 산악회에서 이곳에 갔을 때 몇몇 여성회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건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설마 했는데, 그 심정을 알거 같다. 지금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거리감이나 입체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을 한결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구름다리에서 눈을 감고 간신히 건너는 사람도 많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절대로 장난삼아 다리를 흔들거나 하는 장난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구름다리는 지상에서의 높이가 120m, 길이는 52m, 폭이 60cm이다. 폭이 좁아 양방향으로 한꺼번에 통행하지 못한다. 반대편에서 사람이 건너오면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하며, 안전을 위해 한꺼번에 10명 이상의 인원이 구름다리 위에 올라가서도 안 된다. 사고방지를 위해 꼭 지켜야하는 안전수칙임을 잊지 말자.

a 하산길에 찾은 월출산 윤선도시비

하산길에 찾은 월출산 윤선도시비 ⓒ 김정수

내려오는 길은 눈이 일부 녹아 등산로가 질퍽질퍽하기 때문에 미끄럽고 더 위험했다. 올라갈 적에는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내려갈 적에는 같은 경남의 사천에서 단체로 등산을 오신 분들을 만나서 반가웠다. 주차장에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왼쪽에 자리한 고산윤선도 월출산시비와 영암아리랑 노래비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눈이 거의 다 녹아서 글씨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 시비와 노래비는 1986년에 건립된 것이라 한다. 월출산 국립공원의 제일 위쪽에 자리한 주차장에서 천황사 방면으로 등산로를 따라 50m 쯤 올라가면 왼쪽에 시비와 노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마지막으로 주차장 약간 아래쪽에 위치한 조각공원에 들렀다. 국립공원 월출산 조각공원은 문화관광부 시책사업으로 조성된 곳이다. 총사업비 4억원을 투입하여 1,387평에 이르는 잔디밭에 20점의 예술성이 높은 조각작품을 설치하였다. 첫눈이 내린 후에 찾아간 산이라 사람들의 발자국이 별로 남겨져 있지 않아 순수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산행이었다. 역시 산은 겨울산이 최고인 것 같다.

이 산행을 통해 겨울산의 두려움을 조금씩 떨치게 되면서 2주후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해남두류산 정상에 오르는 등 다시 겨울 산행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지리산 겨울산행은 시도를 못했는데, 사고 10년이 되는 내년에는 지리산 눈꽃산행에 재도전할 생각이다.

여행정보

▲ 맛있는집

월출산 음식문화원 1층에 자리한 ‘묵을수록 좋다’(061-471-9274)는 매운탕과 추어탕을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월출산 천황사매표소에서 약 50m 거리. 월출산산장식당(061-473-4900)은 삼계탕과 천동오리불고기를 잘하는 집으로 소문나 있다. 민박집도 운영중인데 130명을 수용한다. 민박문의 061-471-3734. 천황사매표소 지나서 100m 거리.

▲ 교통정보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광산IC를 빠져나온다. 13번 국도를 타고 나주를 거쳐 영암으로 간다. 영암읍에서 강진,해남 방면으로 1km를 달리다 천황사 이정표가 보이면 우회전한다. 직진해서 2km를 더 가면 천황매표소가 나온다.

대중교통

영암터미널에서 천황사행 버스가 1일5회 운행된다. 약 5분 소요.


덧붙이는 글 | # 인터넷 여행사 넥스투어(www.nextour.co.kr)에 연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기사화하였습니다.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며, CJ케이블넷 경남방송 리포터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여행사 넥스투어(www.nextour.co.kr)에 연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기사화하였습니다.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며, CJ케이블넷 경남방송 리포터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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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로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금오산 자락에서 하동사랑초펜션(www.sarangcho.kr)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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