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승강장 난간에 설치된 칸막이가 내겐 감옥 같았다.전희식
전철 승강장을 가로막고 선 칸막이를 발견하고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안전장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칸막이가 무엇으로부터의 안전일까를 생각했다. 자살하는 사람. 복잡한 군중에 떠밀려 철로로 떨어지는 사람. 부주의한 실족. 어린 아이의 추락. 대충 이런 것일 것이다.
내 눈에는 승강장 칸막이가 '안전'으로 보이지가 않고 '더 큰 불안'으로 보였다. 삶을 포기하여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들을 이제 우리는 저 완고한 칸막이로 막겠다는 것이구나. 인구과밀의 서울 교통재난을 수도이전은 반대하며 저 칸막이로 막아보겠다는 것이구나. 서울이라는 동네는 아이 손을 놓치거나 잠깐 실수하면 목숨이 날아 갈 수도 있다는 것이구나. 문제의 근원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이런 대증요법(원인을 두고 증세에만 실시하는 치료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하는구나.
정전이라도 되면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중의 문을 부수고 나와야 하니 빠삐용의 스티브 멕퀸이 되어야겠구나.
전철이 도착하고 계단을 향해서 내 달리는 서울의 시민들은 신도림역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그 넓은 계단을 다 점령하고는 밀물처럼 쏠려 내려가자 올라오던 사람들은 자기가 탈 전철을 코앞에 둔 채 뒤로 떠밀려 내려갔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압사사고 날 것 같았다. 이런 데서는 테레사 수녀님 아니라 그 할애비라도 어린이나 늙은 노인을 살피고 돌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건장한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었다.
송정역으로 가는 전철에서는 자리를 잡았는데 시각장애를 가진 노파가 조악한 유인물을 나눠주며 구걸을 했다. 책을 보던 내 무릎에도 삐뚤빼뚤 복사된 글자들이 초라하게 놓여졌다. 전철 안의 시민들은 누구도 걸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속된 말로 개념 없는 얼굴로 무료 광고신문을 뒤적이거나 손전화 문자판을 두드려댔다. 옆자리의 젊잖게 생긴 할아버지가 그냥 일어서서 전철을 내리자 할아버지의 무릎에 놓였던 눈 먼 노파의 생명줄은 볼품없이 전철바닥에 나뒹굴었다. 내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걸 주워서는 내 것이랑 포개서 천 원짜리를 얹어 노파에게 주었다.
서울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만나는데 어찌 다 적선하겠냐고. 그 말만 하면서 1년 내내 단 한 사람에게도 적선하지 않는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