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경찰청장의 사퇴만으로는 부족하다

폭행가담자들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등록 2005.12.30 16:02수정 2005.12.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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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식(認識), 위험하다.

드디어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퇴했다.

불과 이틀 전에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할 때의 기세로 보아서는 다소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급격한 태도 변화다. 아마도 탄핵이 언급될 정도로 냉랭한 정치권의 분위기와 비등하는 여론의 사퇴압력이 그의 생각을 바꾸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러나는 마당에도 허 청장은 "(이번 농민사망이)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없다"며 기존의 소신을 유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농민들의 사망을 바라보는 허 청장의 시선이다. "(이번 농민사망이) 성난 농민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라는 그의 발언을 보면 그가 진정 적법하고 정당한 공권력의 상징이 맞는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허 청장은 지난 달 15일 여의도에서 열린 "성난 농민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로 농민사망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런 사태 인식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왜곡된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농민들이 경찰저지선을 돌파하고자 물리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일부 경찰버스를 불태운 것은 명백히 불법행위에 해당된다. 따라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력행위자나 방화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해서 수사를 하거나 시위가 종료된 후 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서는 것은 정당한 법 집행이다. 또한 수사 결과 이들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에 따라 처벌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 지휘부나 전·의경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혈기방장하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의경들은 자신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뻘인 농민들에게 야수적 폭력을 행사했으며, 경찰 간부들은 이를 방조했다.

심지어 이들은 농민들이 물러나 해산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장소로 돌진을 감행해 무수히 많은 농민들을 초주검으로 만들었다. 노인도, 여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집회에 참석했던 농민들 중 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중상을 입은 걸 보면 당시 혈기방장하고 고도로 훈련된 전·의경들의 시위진압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했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공권력의 행사, 그것도 사람의 신체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공권력의 행사는 법률의 규정에 따라 최대한 엄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군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물리적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대한 실정법의 규정이 매우 엄격한 것은 그래서다.

이에 관한 실정법상의 규정을 살펴보자!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 (경찰장비의 사용등) ③경찰장비를 임의로 개조하거나 임의의 장비를 부착하여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주어서는 아니된다.

제10조의2 (경찰장구의 사용<개정 1999.5.24>) ①경찰관은 현행범인인 경우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 <개정 1991.3.8, 1999.5.24>

②제1항의 "경찰장구"라 함은 경찰관이 휴대하여 범인검거와 범죄진압등 직무수행에 사용하는 수갑·포승·경찰봉·방패등을 말한다.<신설 1999.5.24>

제12조 (벌칙) 이 법에 규정된 경찰관의 의무에 위반하거나 직권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전문개정 1988.12.31>


농민 2명이 사망한 농민대회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진압에 나선 전·의경들은 단순히 농민들을 해산하는 수준을 넘어서 농민들을 맹렬히 공격했을 뿐 아니라 끝을 날카롭게 만든 방패를 이용해서 농민들의 목이나 상체를 공격했다. 심지어 농민들을 상대로 투석하는 전·의경들도 부지기수였다.

즉, 전·의경들은 필요한 한도를 넘어 경찰장구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조악하게나마 경찰장비를 임의로 개조하여 농민들을 공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들의 행위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저촉됨은 당연하다 하겠다.

결국 "성난 농민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라는 허 청장의 사태인식은 절반만 맞는 셈이다. 농민들이 불법 폭력시위를 한 것은 사실일지 모르나 공권력의 행사는 정당하지 않았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폭력가담자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필수적

시민들의 마음이 더욱 암담한 것은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높은 수준에 이른 오늘날에도 경찰의 시위진압방식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농민들의 죽음을 통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시위가 강경진압의 원인이라는 둥, 아들 같은 전·의경들을 어떻게 공격할 수 있는냐는 둥의 항변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공권력의 담지자인 경찰이 할 소리가 아니다. 실정법을 넘어서 행사되는 공권력은 조직폭력배들이 행사하는 폭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2명의 농민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중상을 입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경찰총수의 사퇴만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위 진압의 직접적이고도 실질적인 주체인 전·의경들의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 또한 향후 시위진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참극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농민들에게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폭력을 행사한 전·의경들에 대한 수사 및 처벌은 불가피하다.

익명과 집단의 방패 뒤에 숨어 불법적 폭력을 행사한 전·의경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수사를 거쳐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해 처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고, 사망한 농민들을 상대로(그 중 한 명은 60대의 노인이었다) 폭력을 사용한 전·의경들에 대해서는 살인죄의 적용을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동일한 복장을 하고 동일한 무장을 한 전·의경 가운데 폭행가담자들을 색출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가능한 모든 자료를 동원해서 이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차제에 시위진압 전·의경들을 익명의 무리가 아니라 낱낱의 개인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전·의경들이 착용하는 복장과 장비에 그들의 이름과 군번 등을 부착토록 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조차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전투복 입은 젊은이들을 제어할 방법이라고는, 자신들의 행위가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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