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금지 위헌결정을 되돌아보면 (1)

[헌법재판 오디세이 11]헌재 교육을 말하다④

등록 2006.01.02 09:57수정 2006.01.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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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한국에 표류해 온 네덜란드인 헨드리크 하멜은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조선의 양반이나 잘사는 사람들은 자식들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며 아주 어릴 때부터 선생을 두어 글공부를 시키는데 이 민족이 매우 중시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읽는다."

공교육 기관이 일반화되기 이전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모 개인이 자식 교육을 오롯이 책임져야 했던 시절입니다. 교육 보편화는 근대 이후 일이지요. 공교육기관으로 학교가 자리 잡으며 비로소 교육수요에 부응하게 됩니다. 그럼 공교육제도 정착으로 사교육은 역사 속 유물이 되었을까요.

아시다시피 개인과외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액 수업료와 결합하며 사회병리현상으로 진단받기에 이르는데도 마땅한 해법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급기야 법을 동원해 강제로 금지하는 고강도 처방이 내려지게 되지요.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과외전면금지를 뼈대로 한 교육개혁조치를 단행하게 됩니다.

헌재, 과외금지기조를 깨다

세부적인 정책 변용은 있었지만 과외금지 기조는 계속 유지됩니다. 전면허용이라는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진원은 지금 보는 헌법재판소 결정입니다(2000.04.27. 98헌가16). 정책 패러다임을 뒤바꾸는 파장을 일으키며 논란에 휩싸이는 사례가 있는데 이 사건 역시 그러했지요. 찬반으로 나뉜 당시 미디어와 인터넷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재판관들도 견해 일치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위헌의견은 6인입니다. 반대의견 2인은 헌법불합치로, 1인은 합헌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합헌이라는 반대의견에 대해서는 다수의견 재판관 5인이 다시 반박의견을 이례적으로 표명하며 입장 차이를 재확인합니다. 뜨거운 공방을 주고받은 셈이지요.

위헌을 선언할 수 있는 6인을 충족했으므로 주문은 위헌. 개인과외를 금지하는 법 규정은 곧바로 효력을 잃어버립니다. 심판대상이 된 당시 법조문은 이러합니다.


학원의설립·운영에관한법률 제3조(과외교습) 누구든지 과외교습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학원 또는 교습소에서 기술·예능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과목에 관한 지식을 교습하는 경우
2.학원에서 고등학교·대학 또는 이에 준하는 학교에의 입학이나 이를 위한 학력인정에 관한 검정을 받을 목적으로 학습하는 수험준비생에게 교습하는 경우
3. 대학·교육대학·사범대학·전문대학·방송통신대학·개방대학·기술대학 또는 개별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대학 및 이에 준하는 학교에 재적중인 학생(대학원생을 포함한다)이 교습하는 경우


이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동법 제22조에서 형벌 조항도 두고 있습니다.


입법목적 정당성은 잠정적으로 인정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회에 해를 입히는 행위가 아닙니다. 도리어 장려해야 할 일이지요. 그럼에도 처벌까지 해가면서 과외금지 규정을 두어야 했던 고충을 헌법재판소가 아예 모른 체하지는 않았습니다. 배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네요.

우리나라에서 학력은 개인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고, 국민의 자녀에 대한 높은 교육열은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투자를 다해야 한다는 정서를 형성하였다. 한편, 국가의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과 불충분한 교육투자로 말미암아 학교교육의 질과 여건이 국민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이를 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사교육에의 관심과 열기를 유발하게 되었고,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한정된 고등교육의 기회를 얻기 위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져서 대학입시를 둘러싼 과외교습경쟁이 과도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 과외교습금지가 최초로 법제화된 1981년 당시의 상황이었다.

고액과외를 봉쇄해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기회 차별을 최소화하며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도 비정상적인 투자로 인한 인적 물적 낭비를 줄이자는 입법목적을 인정하게 하는 사회적 배경이지요. 잠정적이나마 목적의 정당성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상입니다.

사교육의 영역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불행하게도 이미 자정능력이나 자기조절능력을 현저히 상실했고, 이로 말미암아 국가가 부득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므로, 위와 같이 사회가 자율성을 상실한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고액과외교습을 방지하여 사교육에서의 과열경쟁으로 인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나아가 국민이 되도록 균등한 정도의 사교육을 받도록 하려는 법 제3조의 입법목적은 입법자가 '잠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공익이라고 하겠다.

헌법 제31조, 사교육제한 근거될 수는 없어

입법배경을 상술하고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용하는 분위기는 합헌으로 내닫는 듯하지만, 규제가 긴요한 상황에서 옳은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합헌성이 확보되지는 않습니다. 위헌 혐의를 벗기까지 검토해야 할 헌법상 논점은 더 남아있습니다.

과외교습을 금지하는 법 제3조에 의하여 제기되는 헌법적 문제는 교육의 영역에서의 자녀의 인격발현권·부모의 교육권과 국가의 교육책임의 경계설정에 관한 문제이고, 이로써 국가가 사적인 교육영역에서 자녀의 인격발현권·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학교교육에 관한 한, 국가는 교육제도의 형성에 관한 폭넓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과외교습과 같은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제한하는 경우에는 특히 자녀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과 부모의 교육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에 국가에 의한 규율의 한계가 있으므로, 법치국가적 요청인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우선 교육에 관한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교육책임의 경계를 설정하는 쟁점입니다. 향후 교육문제로 헌법상 다툼이 벌어졌을 때 참고할 만한 가치 있는 내용입니다. 부모의 교육권과 국가의 교육책임과의 관계, 헌법 제31조와 사교육과의 관계를 설명하지요.

학교교육에 관하여는 국가가 부모의 교육권과 함께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지만,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원칙적으로 부모의 교육권이 더 우위에 있다고 명백하게 밝힙니다. 헌법 제31조는 교육영역에서의 기회균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사교육을 제한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헌법 제31조의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국가에 의한 교육제도의 정비·개선 외에도 의무교육의 도입 및 확대, 교육비의 보조나 학자금의 융자 등 교육영역에서의 사회적 급부의 확대와 같은 국가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하여 사인간의 출발기회에서의 불평등을 완화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위 조항은 교육의 모든 영역, 특히 학교교육 밖에서의 사적인 교육영역에까지 균등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개인이 별도로 교육을 시키거나 받는 행위를 국가가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부여하는 수권규범이 아니다.

경제력의 차이 등으로 교육 기회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국가는 원칙적으로 적극적인 급부활동을 통하여 차별을 해소할 수 있을 뿐, 개인과외 금지나 제한의 형태로 기본권행사인 사교육을 억제함으로써 교육평등을 실현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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