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국밥, 아사삭 씹히니 청소골도 놀라!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104] 전주남문시장 콩나물국밥

등록 2006.01.02 18:08수정 2006.01.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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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비빔밥은 막걸리, 콩나물국밥으로 진화 중


a 콩나물국밥에 김을 싸서 먹어보세요. 전주 남문시장에 가실 땐 김을 사가지고 가야 합니다. 일품입니다.

콩나물국밥에 김을 싸서 먹어보세요. 전주 남문시장에 가실 땐 김을 사가지고 가야 합니다. 일품입니다. ⓒ sigoli 고향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 있는 전주는 비빔밥 고장이다. 오래 전 전주와 비빔밥이 하나로 통일되어 전주비빔밥이라는 말을 만들었을 정도니 그 명성 하나로 전주식 비빔밥은 일반명사, 보통명사가 되었다. 비빔밥하면 으레 전주, 전주하면 비빔밥으로 통하는 세상이니 음식 하나가 발휘하는 힘은 무궁무진하다. '김치=대한민국'이라는 등식보다 위력이 더하다.

전주는 비빔밥 고장을 이제 넘어섰다. 밤이 되면 효자동 삼천동 일대를 환하게 밝히는 즐비한 막걸리집이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서민들 가벼운 주머니를 슬며시 열도록 대단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막걸리 값만 내면 제철에 나는 산해진미 안주가 스무 가지나 차려지니 이 또한 최근에 자리 잡은 전주 명물이다.

이뿐이면 서럽다. 또 하나 쟁쟁한 친구가 있다. 바로 '남문시장 콩나물국밥'이다. 무슨 '새발에 피'밖에 되지 않은 콩나물국밥 하나 가지고 이렇게 거창하게 덤빌까 싶으리라. 맛을 본 사람 그 맛에 흠뻑 빠지고 만다. 주당들은 다음날 곧바로 해장을 위해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지만 낙찰을 전주콩나물국밥으로 낙찰되고 만다.

고만고만한 음식으로 전락한 퓨전비빔밥에 든 콩나물보다도 국밥에 들어 있는 알짜배기 콩나물을 청소골이 공활하게 씹히는 소리를 경험하기 위해 몇 시간을 마다않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급기야 해장국하면 남문시장을 떠올리니 허름한 재래시장을 찾지 않은 사람들도 전주에 가면 꼭 한번 들러 원조를 먹어보리라 다짐한다.

전주콩나물 뭔가 다르다는데...


a 허름한 국밥집 앞에서 준비되지 않은 사진 한장

허름한 국밥집 앞에서 준비되지 않은 사진 한장 ⓒ sigoli 고향

여기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먼저, 전주비빔밥과 전주콩나물국밥은 같은 콩나물을 쓴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이 맛있는 건 이 콩나물에 있다. 배부른 콩나물도, 그렇다고 잔뿌리가 성한 콩나물도 아니다. 빼빼하면서도 실하다.

가느다라면서도 씹히는 맛이 아삭아삭 살아 있다. 길이가 짧지만 알차다. 질기지도 않다. 그러니 전국에 산재한 콩나물국밥집 주인은 전주 현지에서 기른 콩나물을 구하려고 안달이다. 이른 새벽 전주고속터미널은 콩나물박스를 곳곳으로 부치기 위해 분주하기만 하다.


이 콩나물은 키가 작고 통통하지만 시중에 떠도는 공장콩나물에 비하면 훨씬 가늘다. 예전 투박한 질 시루에 기른 듯 맵시가 있다.

이 비밀은 두 곳에서 비롯한다. 한 가지는 콩나물 콩이 여타 지역과 다르다는 점이다. 임실 주변 산간 출신인 쥐눈이콩, 서목태(鼠目太)로 부르는 까만 콩이다.

a 전주에서 콩나물만 알아도 전주 음식의 기본은 파악하게 됩니다.

전주에서 콩나물만 알아도 전주 음식의 기본은 파악하게 됩니다. ⓒ sigoli 고향

또한 물에 있다. 전주 시내를 남과 동에서 북쪽을 향하여 관통하는 만경강 상류인 삼천천과 전주천의 석회석 물이 검정콩을 만나서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문 듯 다시 태어난다. 웬만한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쯤은 물론 잔뿌리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며 성장을 적절히 조절하여 매끈하고 볼품 있는 그야말로 씹는 맛까지 끝내주는 콩나물이 탄생한다.

같은 콩으로 콩나물을 길렀다고 하자. 흔히 쓰는 콩나물콩 대두(大豆)로 길러도 그게 아니며 거꾸로 자란 콩나물이랬자 원하는 나물을 구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한들 전주에서 하던 대로 하지 않으면 결과물은 뻔하다.

선조들 말씀에 '사방 백리 즉 40km 밖의 농산물을 먹지 않는다'고 한 이치는 제철 농산물 못지않게 산지에서 먹는 것이 얼마나 몸에 이로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허름한 전주남문시장 주인아줌마와 실랑이

a 손님과 주인이 움직이는 주방이 구분되지 않고 훤히 뚫린 식당 내부. 이런 데서 깊은 맛이 나오는 비결은 뭘까요?

손님과 주인이 움직이는 주방이 구분되지 않고 훤히 뚫린 식당 내부. 이런 데서 깊은 맛이 나오는 비결은 뭘까요? ⓒ sigoli 고향

전날 거나하게 마셨다. 주차를 하고는 곧바로 해장국집으로 가지 않았다. 속이 쓰려 죽겠는데 무슨 위인이기에 서울서 온 손님을 바로 안내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던지 속으로 얄미워 죽는 줄 알았다.

맛있는 걸 먹으려면 한두 끼 굶으며 기다릴 줄 아는 아량을 갖추지 못한 내게 그가 가게에 들렀다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김이었다. 그저 그런 김 두 봉지를 사서는 주머니에 넣고 허름하고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간다.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졸졸 따랐다. 행여 옷에 먼지가 묻을까 조심스럽기만 했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서니 서너 집이 몰려 있다. 늦은 아침 시간인데 복작거린다. 분명 어제 어디선가 세상을 논하며 한잔씩 걸쳤던 사람들이 분명하다.

활짝 열린 주방 겸 식당으로 들어가자 손님과 주인이 어울려 장사진이다. 콩나물을 삶아 건지느라 김이 서려 있고 한 아주머니는 삶은 꼴뚜기를 잘게 썰고 있다. 여기에 땡초 청양고추를 다진다.

일찍 온 사람들은 거의 다 비워 그 맛이 대체 어떨까 궁금했다. 10여 분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은가. 사진기를 꺼내 한방 찍으려고 하자. 욕쟁이는 어디나 있게 마련 현대옥 사장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그 명성 그대로였다.

"호랭이 물어갈…. 뭣땜시 자꾸 찍었싸?"
"그만 찍으라고!"

a 육수는 꼴뚜기에서 나온답니다. 이걸 느긋하게 해동해서 삶는다는 군요. 잘게 썰어야 제맛이 난답니다.

육수는 꼴뚜기에서 나온답니다. 이걸 느긋하게 해동해서 삶는다는 군요. 잘게 썰어야 제맛이 난답니다. ⓒ sigoli 고향

이런 무안은 처음이다. 대개 사진 찍지 말라는 식당은 음식 실력이 없거나 세금을 포탈했거나 욕쟁이다. 묵묵히 하던 일을 하던 나는 깡마른 욕쟁이 할머니를 빛내기 위해 거들어 동참하는 수밖에 없었다.

찍소리 못하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성미가 아닌지라 "지금 뭐시라고 했소? 내가 좋아하는 음식 가지고 사진 한 장 못 찍는대서야 원. 쫓아낼라믄 쫓아내시오" 했다.

같이 간 전주 사람은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지 끼어들지를 않고 허허 웃고 있을 뿐이다. 평소에 이런 일이 잦은가 보다.

"형님, 원래 저러요?"
"그런갑다 하시게. 그렇지 뭐."

수란이 빠지면?

a 깜박하여 수란을 찍는 걸 잊고 말았는데 전주남문시장식 콩나물국밥집에도 수란이 있습니다. 맛이 원조에서 조금 멀어진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벌써 아래 국밥과 뭔가 다르지요?

깜박하여 수란을 찍는 걸 잊고 말았는데 전주남문시장식 콩나물국밥집에도 수란이 있습니다. 맛이 원조에서 조금 멀어진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벌써 아래 국밥과 뭔가 다르지요? ⓒ sigoli 고향

다른 해장국집엘 가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얼른 먹고 떠나라는 듯 물, 밑반찬에 새우젓이 차려지고 나면 곧바로 바글바글 끓고 있는 뚝배기가 나온다. 무조건 뜨거운 걸 좋아하는 나는 국물을 한번 떠먹어보고 최대한 간단하게 간을 맞추고 나서 한눈 팔지 않고 음식을 먹어치우곤 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복이 있게 생겼다고들 하고 정도 많을 거라 한다.

이미 다른 데서 전주남문시장식 콩나물국밥을 먹어보았던지라 매 한가지로 여기고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어서 뜨거운 국물을 내 몸으로 들여보낼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낼 즈음 괴상한 것이 나왔다.

한 개는 정 없다고 핀잔 들을까봐선지 두 개는 먹어도 괜찮다는 건지 익다만 달걀 두개였다. 수란(水卵), 물처럼 흐를 성 싶은 끓이다만 달걀! 차라리 생 달걀 두 개를 줄 것이지 요리하다만 달걀이라니. 도통 첫 대면 자체가 매끄럽지가 않았다. 수프 후후룩 먹고 돈가스 다 먹었다고 자리를 털고 나오는 촌놈은 되고 싶지 않았다.

참기름 고소하게 타 약간 엉기며 굳어가고 있다. 이것을 먼저 먹으면 독한 술 마시기 전 위벽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듯 이바지는 충분할 것 같지만 여기서 난 어디까지나 촌뜨기고 초보자다. 돌다리도 두들겨보라 했다. 어떤 맛일까 자못 궁금했지만 참는 게 약이다.

한동안 옆을 쳐다보았다. 김을 부셔 넣고 숟가락으로 바닥을 긁어 휘휘 젓더니 술술 떠 넣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꼭두각시처럼 같은 행동을 하며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비릿하지도 않다. 탱탱 불은 간까지 마사지 하듯 목 넘김과 속이 편안하다.

미지근한 국밥이 속까지 후련하게 한 비결이 따로 있다

a 맑은 국밥에 파만 곁들이면 되는데 감히 흉내나 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반찬도 여기 보이는 게 다랍니다.

맑은 국밥에 파만 곁들이면 되는데 감히 흉내나 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반찬도 여기 보이는 게 다랍니다. ⓒ sigoli 고향

이어 뜨겁지도 않은 국밥이 나왔다. 국물을 두어 숟가락 퍼 넣어 떠먹기 좋게 했다. 해장(解酲)은 응당 지글지글 끓는 국물이어야 속이 후련하다는 단순한 진리에 속박된 내게 또 밍밍한 국물이라니! 여기 안엔 뜨뜻미지근한 국물에 콩나물과 밥에 다지듯 잘게 썬 꼴뚜기, 주름이 확실하게 팬 진짜 청양고추가 들어가 있다.

이토록 늦게 대령한 이유가 뭘까? 음식을 대충 내놓는 집이나 따로국밥이 아닌 경우엔 밥이 내게 오는 동안 탱탱 불어서 퍼져 있게 마련인데 이 집은 이미 김을 죄다 빼서 꼬들꼬들 식혀놓은 밥을 따뜻한 국물에 대여섯 차례 헹군다.

헹구다 보면 오히려 불지 않고 오히려 코팅이 되듯 겉은 말끔해진다. 밥알 안쪽은 혀끝 느낌이 좋도록 알맞은 상태로 데워진다. 여기에 준비된 재료를 고명 올리듯 넣고 마지막 한 번 더 씻어서 내왔다.

a 국밥 드시고 연말연시 속풀이 화끈하게 하시고 새롭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국밥 드시고 연말연시 속풀이 화끈하게 하시고 새롭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 sigoli 고향

아사삭 콩나물 씹히는 기분 좋은 소리와 단물이 보태졌다. 보드랍게 녹는 꼴뚜기, 알싸하면서도 깔끔한 맛이다. 잡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멍하던 청소골이 열렸다. 내 여태껏 미지근한 국물을 떠먹고 땀을 뻘뻘 흘려보기는 처음이다. 고춧가루도 전혀 탁하지 않고 매운맛만 더했다. 여기에 통깨마저 함께 하니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김이 이제 제 소임을 다할 때다. 국밥을 한 숟가락 뜨고 위에 한 장을 올려 국밥을 싸먹는다. 맥주 집 마른안주 차림에 빠지지 않는 김이 육지 속풀이 대명사와 만났으니 설명해서 무얼 하겠는가.

어렸을 적 어머니처럼 그릇을 국물로 두르고 나서 담아선지 생각보다 오래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 다 비울 때까지 맛이 전혀 변함이 없었다. 외곽에서 이곳까지 온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후련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땀까지 싹 빠져나가니 개운했다. 밤새 먹은 독기가 슬슬 꽁무니를 감추며 내 몸은 다시 깨어났다. 모주까지 한잔 걸치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밥 한번 먹으면서 상식을 몇 번이나 고쳤다. 그래 이런 맛에 여길 그토록 찾는 건가 보다. 숭늉까지 한 그릇 마셨더니 고향 생각이 더 간절했고 후회 없는 아침 식사 덕분에 하루가 너끈했다.

a 모주는 막걸리에 흑설탕, 계피,등을 넣고 끓인 술인데 속이 부드러워지며 해장에 좋다고 합니다.

모주는 막걸리에 흑설탕, 계피,등을 넣고 끓인 술인데 속이 부드러워지며 해장에 좋다고 합니다. ⓒ sigoli 고향


a 솥단지에서 숭늉 한 그릇 떠먹으면 뒤끝이 개운합니다. 이런 걸 먹게해주신 사장님 고맙습니다.

솥단지에서 숭늉 한 그릇 떠먹으면 뒤끝이 개운합니다. 이런 걸 먹게해주신 사장님 고맙습니다. ⓒ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맛있는 이야기는 2006년 개띠 해에도 계속됩니다. 부지런히 맛난 정보를 올릴 계획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 이후 sigoli고향에 오시면 특색있는 건강한 음식과 고향이야기를 맘껏 만날 수 있답니다. www.sigoli.com

덧붙이는 글 맛있는 이야기는 2006년 개띠 해에도 계속됩니다. 부지런히 맛난 정보를 올릴 계획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 이후 sigoli고향에 오시면 특색있는 건강한 음식과 고향이야기를 맘껏 만날 수 있답니다. www.sigol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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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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