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 주문진에서 희망을 심다

<바위나리와 떠난 여행 26>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등록 2006.01.03 15:41수정 2006.01.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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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동해 주문진에서 맞았습니다. 난생 처음 해돋이도 보았고 막 건져 올린 그물 사이로 펄떡이는 싱싱한 물고기처럼 생기 넘치는 주문진항의 활기도 느껴보았습니다.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짐을 꾸려 트렁크에 싣고 아이들과 소돌 해수욕장에 서서 겨울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닷물이 엄청 차겠죠?”
“당근이지. 겨울인데.”
“확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어요.”

2006년 1월 1일 주문진 바닷가, 준수
2006년 1월 1일 주문진 바닷가, 준수이기원
준수의 말입니다. 재활에 성공한 뒤 준수는 많이 변했습니다. 소극적이고 절망적이던 성격에서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한계는 있습니다. 일상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재활은 이루었지만 발바닥으로 자전거 페달을 감아 돌릴 정도로 신경이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준수 소원 들어주려면 여름에도 와야겠네.”
“정말이요?”
“그래.”

준수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광수도 덩달아 좋아했습니다. 하반신 마비에서 재활에 성공하기까지 변화를 거듭했던 준수는 그간 소홀히 했던 공부도 열심히 할 거라고 새해 포부를 밝힙니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고비 넘기고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녀석을 보니 문득 예전에 읽었던 시 한 수가 떠오릅니다.

썩지 않기 위해
제 몸에 소금을 뿌리고
움직이는 바다를 보아라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
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치고
출렁이는 바다를 보아라.
그런 자만이 마침내
뜨거운 해를 낳는다


- 이도윤, 바다3 전문


“아빠 카메라 줘보세요.”
“그래.”


광수
광수이기원
광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뿐인 카메라를 늘 아빠 혼자 들고 다니니 마음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게 불만입니다. 그래도 이따금 카메라를 달라고 해서 제 형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나이가 들어 형식과 틀에 얽매인 내 사진보다 광수가 찍은 사진이 훨씬 자연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광수가 관심을 가지고 찍은 것은 갈매기입니다. 바닷가에 떼 지어 앉아 있다가도 사람이 다가가면 하얗게 날아오르는 갈매기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애를 씁니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바닷물이 밀려들어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목을 적시는 갈매기지만 사람이 다가설 기미만 보이면 파도처럼 하얗게 날아오릅니다.

광수가 찍은 사진 1
광수가 찍은 사진 1이기원
카메라 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아이들을 지켜보았습니다. 멀리 사라진 아이들은 넘실거리는 바다와 더불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새해 소망 하나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광수가 찍은 사진 2
광수가 찍은 사진 2이기원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 신경림, 동해 바다 일부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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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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