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연구는 '의학' 아닌 과학, 환상 버려라"

[해외리포트] 다시 만난 프랑스 보건의학연구소장 악셀 칸 박사

등록 2006.01.04 19:33수정 2006.01.0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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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황우석 사건'이 해를 넘긴 가운데 지난 3일 취재윤리 문제로 중단됐던 <문화방송(MBC)>의 <피디수첩>이 재개 첫 방송을 내보냈다. <피디수첩>이 제시한 황 교수팀의 논문 조작이 가능했던 몇 가지 이유 중에는 '국익을 앞세우는 분위기에 검증 없는 무분별한 언론과 무책임한 정부'도 포함돼 있었다.

이것은 지난 달 23일 교수직 사퇴의사를 밝힌 황 교수가 일주일 만인 30일 불교계 언론 <법보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황 교수는 "원천기술을 확실히 보유하고 있고, 이 기술은 오직 한국만이 독보적으로 갖고 있는 기술이며, 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해 말 이미 황우석 파문은 국경을 넘었고 전 세계 과학자와 언론은 그를 '사기꾼' '조작범'으로 단정 짓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황 교수의 연구에 반대하지만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중간발표가 있기 전까지도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유보 입장을 견지해 온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장 악셀 칸 박사가 대표적이다.

지난달에 이어 다시 한 번 악셀 칸 박사를 찾았다. 황우석 사건 초기부터 프랑스 언론이 가장 자주 인용한 프랑스의 유전학 권위자가 바로 악셀 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과 서울대 조사위의 활동에 경의를 표한 악셀 칸 박사는 그러나 황 교수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악셀 칸 박사에게 황 교수는 '조작극의 주범'에 불과했다. 칸 박사는 황 교수 사건을 국제적 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황 교수 연구의 영향이 국제적 규모였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 과학자인 악셀 칸은 줄기세포가 만병통치약이라는 환상을 버릴 것을 당부하며 지난 인터뷰에 이어 "치료를 위한 인간복제는 불확실하고 비현실적"이라며 줄기세포 실용화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다음은 악셀 칸 박사와 나눈 대화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인간복제 분야는 순수과학의 버뮤다 삼각지대"

- 황 교수 사건 초기부터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으로 아는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먼저 서울대 조사위원회와 한국 국민 그리고 한국의 언론에 진정한 경의를 표한다. 한국의 한 방송이 정당한 문제를 제기한 지 단 몇 주 만에 서울대 조사위는 숨김없이 정직하게 조사를 단행했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공개했다. 이것은 한국이 과학기술 분야의 성과뿐만 아니라 자국 국민의 과실마저 냉정하게 알려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한 나라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내 입장에서 황 교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정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한 조작극의 주범이지만 동시에 그 또한 희생자다. 인간 복제 분야는 이에 접근하고자 하는 이들을 광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매몰돼 길을 잃게 만드는 순수과학의 '버뮤다 삼각지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황 교수가 첫 희생자는 아니다.

a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장 악셀 칸 박사. 칸 박사는 황 교수 사건을 국제적 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황 교수 연구의 영향이 국제적 규모였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장 악셀 칸 박사. 칸 박사는 황 교수 사건을 국제적 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황 교수 연구의 영향이 국제적 규모였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박영신

뛰어한 생물학자이며 동물복제 전문가인 황 교수는 중국이나 대만, 싱가포르 등 다른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처럼 한국이 던진 도전에 응했다. 그 도전은 바로 생명공학의 한복판에 자리한 연구 임상용 인간 복제를 포함한 줄기세포다. 실제로 아시아 국가들은 과학 기술을 경쟁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이들 특유의 공동체 정신은 연구에 필요한 난자를 제공할 여성은 물론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를 용이하게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 같은 과학적 접근에 종교계 혹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제기들이 제동을 거는 반면 아시아 국가에는 장애가 거의 없었다. 황 교수의 연구 팀은 핵 이식을 통한 인간 배아 복제와 연구 임상에 불가결한 줄기세포 추출 정복 직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고 성공은 점차 멀어지는 듯했을 것이다. 그 정신적 압박감에 황 교수는 졌고 부정을 저질렀다. 끊임없이 획득하기를 시도한, 획득했으면 좋았을,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사라져 버린 과학적 성과를 그는 발표해 버린 것이다."

"국제적 규모, 국제적 차원의 조사는 당연"

- <사이언스>에 게재된 황 교수의 2005년 논문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2004년 논문뿐만 아니라 복제 개 스너피까지 도마에 올랐다.
"황 교수가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진위 여부에 관한 의혹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며 실제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논문발표 몇 달 뒤 영국의 '로열 소사이어티'는 2004년 논문에 발표된 1개의 줄기세포가 인공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경계할 것을 주장했다. 실제로 인간 복제 배아에서 나온 배아 줄기세포는 추출되지 않았을 수 있다.

스너피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는 쉽다. 간단한 생물학 실험만으로도 식별해낼 수 있다. 스너피를 복제할 당시 황 교수가 가졌을 심리적 압박은 인간 복제 연구 때와는 판이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황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스너피마저 조작한 것이 확인된다면 그것은 그의 심리 상태와 과학자적 태도가 총괄적으로 혼란스러웠음을 의미한다. 두고 볼 일이다."

-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이안 윌머트 외 7인의 복제 전문가들이 지난 달 황 교수 논문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조사를 서두를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사이언스>에 보냈다. 이미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그들의 요구를 이해한다. 서울대 조사위 활동의 정직성을 의심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황 교수의 영향은 이른바 국제적인 규모였고 정치적 종교적으로도 막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황 교수가 인간 배아 복제 기술을 다루게 된 사실은 전 세계 수많은 의회로 하여금 그들의 법을 수정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모여 선언문을 채택하는 등 UN 총회에서도 다뤄졌다. 이것은 결국 국제 차원의 사건이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음모론은 없다!"

a "음모는 없다. 연구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황 교수는 과학적 성과를 조작했다. 그뿐이다."

"음모는 없다. 연구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황 교수는 과학적 성과를 조작했다. 그뿐이다." ⓒ 박영신

- 지난 달 23일 황 교수는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하면서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대한민국의 기술'이라고 말해 여론을 갈라놓았다. 이와 관련해 '황우석 죽이기'라는 음모론도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과학적 성과에 관해서는 대중의 믿음이나 지지가 끼어들면 안 된다. 과학적 성과와 새로운 기술을 검증하는 것은 과학자 단체의 몫이다. 논문 조작이 밝혀진 지금까지도 황 교수가 지지자들을 선동한다면 그는 더 이상 과학자가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에 불과할 것이다. 심하게 말해 사이비 종교의 구루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를 끝내 믿고 싶어 하는 한국 국민의 반응은 이해한다. 현대사회에서 스스로가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며 불안감이나 욕구불만은 늘 존재한다. 음모론은 이처럼 인간의 나약함을 건드린다. 음모론을 부추기는 책들은 오늘날 세계적 베스트셀러이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좋은 예다.

프랑스에서는 '토리노의 수의'와 같이 예수의 유해를 감쌌던 유품의 잔재를 이용해 예수를 복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도 이 문제를 탐구한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됐다. 황 교수가 그의 경쟁자들, 특히 황 교수의 성공을 '질투하는 미국'이 조장한 음모의 피해자라는 억측이 한국인들을 동요케 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단순하다. 음모는 없다. 연구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황 교수는 과학적 성과를 조작했다. 그뿐이다."

과학 기술 위해 여성을 '도구화' 하지는 말아야

- 182개의 난자를 이용해 11개의 줄기세포를 얻었다고 한 2005년 <사이언스> 논문 발표 당시 황 교수는 연구용 난자가 자발적으로 제공됐다고 했으나 결국 매매 난자였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최근에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황 교수가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 게재를 위해 사용한 난자는 총 16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첫 질문에서 대답했다시피 줄기세포와 연구 임상용 복제 연구에 있어서 아시아 국가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유럽이나 미국 보다 연구용 난자를 쉽게 수급할 수 있는 여건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아시아 국가는 그들의 발전이 총체적으로 과학 기술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늙은 유럽과 미국의 위협 한가운데에서 국익을 위한다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아시아 국가에 널리 퍼져있다.

'성공'과 '발전'의 미명 아래 수천수만의 난자를 필요로 하는 연구는 현실적으로 윤리 문제를 야기한다. 남자가 정자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난자 추출 절차는 고통스러우며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생명공학에 기대를 거는 나라들이 연구용 난자를 수급할 때 가난한 젊은 여성들이 보잘것없는 보수를 받으며 생물학 재료의 생산자 즉 일종의 도구로 간주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환상을 버려라, 줄기세포 연구는 의학 아닌 과학"

a "환상을 버려야 한다. 치료를 위한 인간 복제의 전망은 불확실하고 비현실적이다. 황 교수의 연구가 정직하고 옳았다 하더라도 치료를 위한 복제를 실용화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환상을 버려야 한다. 치료를 위한 인간 복제의 전망은 불확실하고 비현실적이다. 황 교수의 연구가 정직하고 옳았다 하더라도 치료를 위한 복제를 실용화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박영신

- 윤리 문제를 앞세워 어쩌면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도 있을 모든 연구를 중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환상을 버려야 한다. 치료를 위한 인간 복제의 전망은 불확실하고 비현실적이다. 황 교수의 연구가 정직하고 옳았다 하더라도 치료를 위한 복제를 실용화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각각의 병을 치료하기 이전에 대략 15개, 어쩌면 수천만 개의 난자를 수급해야 하고 수급한 난자의 핵을 환자의 몸에서 추출한 배양 체세포의 핵으로 대체해야 한다. 배아를 얻어냈을 경우 배아줄기세포를 주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발암 위험이 있는지 치료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난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 이 모든 절차에 필요한 비용, 동원된 수많은 과학자들, 필요한 어마어마한 시간 등을 감안한다면 난치병 환자들에게 혜택을 돌릴 수 있는 의학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치료를 위한 복제는 진정한 의학적 희망이라기보다 차라리 로빙과 닮아 있다.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는데 더 현실적인 기술이 있으나 지금은 이것을 상세히 설명하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 연구 임상용 맞춤형 줄기세포를 생산하는 것은 과학이지 의학이 아니다. 사이비 종교 라엘리안이나 이탈리아의 안티노리, 미국의 자보스처럼 아기 복제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이 방법을 보급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지금 활성화 돼야할 논쟁은 바로 이것이다."

- 덧붙일 말이 있다면?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국이 보여준 신속한 대처에 존경과 함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 한 뛰어난 과학자가 느꼈을 엄청난 압박감이 논문 조작으로 이어진 것이 고통스럽다. 미래를 위한 교훈이라면 그것이 재정적이든 민족주의적이든 종교적, 환상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본질이든 간에 합리성과 규칙에 근거해 견딜 수 없는 압박감으로부터 과학 활동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내 희망에 그칠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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